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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2.24 08:53 수정 2020.02.24 08:53
오늘의 뉴스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기상천외한 사건사고를 보면 이 사회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자주 비관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사는 오늘의 비관을 발판 삼아 조금씩 진보해왔습니다. 때때로 퇴행을 반복했을지라도요. <오마이뉴스>가 20년 전 사건을 지금 되돌아본 이유입니다. 오늘은 비관하되, 내일을 낙관하려는 의지는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편집자말]

문화일보 2000년 7월 27일자 뉴스.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문화일보

 
학생인권 관련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래도 요즘 학교는 많이 좋아지지 않았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물론 20년 전과 비교하면 학교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2020년의 교실에서는 '가위 공포증'이란 말이 회자되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 7월 27일 <문화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자. 당시 방학을 맞은 학생 10여 명은 '가위를 들고 달려드는 선생님이 무섭다'며 거리로 나섰다. 남학생은 스포츠형 머리, 여학생은 귀밑 3cm를 조금만 벗어나도 체벌을 당하거나 머리를 잘리거나 하는 시절이었다. 그들이 명동 한복판에서 외친 "두발규제 폐지"라는 구호는 기본적인 자유마저 억압하는 사회를 향한 절박한 호소나 다름없었다.

어디 두발 규제뿐이랴. 2000년대까지의 중·고등학교는 강제 이발, 0교시 강제 학습, 성적에 따른 우열반, 체벌과 단체 기합 등 매일같이 인권 침해가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느닷없이 이루어지는 소지품 검사와 압수, 복장 단속 또한 당시 학생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기억일 것이다.

학교나 교육청에 신고하거나 문제제기를 하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일명 '학교에 찍혀서' 반성문을 쓰거나 심하면 징계를 당할 수도 있었다. 때문에 학교에 불만이 있더라도 이야기조차 꺼내기 힘든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척박한 현실을 딛고 학교와 사회에 저항하며 청소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비로소 일상적으로 존재하던 많은 학생인권 침해들이 의미 있는 이슈로 등장했다.
 

2005년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보통신부앞에서 열린 '학생인권보장 청소년축제'에서 참가 학생들은 자율발언 등을 통해 두발단속, 야간자율학습 강요, 학생회 간섭, 교문앞 용의검사, 인터넷 글쓰기 금지, 단체기합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두발단속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마지막 바리깡' 퍼포먼스를 위해 참가자들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두발제한 폐지요구하는 학생들 2005년 5월 14일 오후 광화문거리에서 학생인권수호전국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두발제한 폐지를 위한 거리축제에 한 고교의 두발제한 규정과 사진이 붙어있다. ⓒ 연합뉴스

 
2000년에는 본격적으로 '노컷(두발자유)운동'이 불붙기 시작했다. '노컷 운동'은 청소년인권 문제를 온라인 서명운동의 방식으로 제기한 최초의 캠페인이자 이슈화 운동이었다. 웹 연대 '위드'는 인터넷을 통해 두발 규제 반대 온라인 캠페인을 펼쳤고 '전국 중·고등학생연합'은 그해 여름부터 오프라인으로 직접 나오기 시작했다. 위의 기사에 소개된 명동 시위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후에도 독립적 학생회 보장, 체벌 금지, 소지품 압수/검사 금지, 입시경쟁교육 반대 등 학생인권과 교육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행동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결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요즘 학교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 전라북도 지역에 제정된 '학생인권조례'일 것이다. 학교 안팎의 청소년 인권운동은 꾸준히 일어났지만 청소년 인권 침해를 제기하고 문제점을 바꿀 수 있는 장치나 제도가 없던 시절이었다. 문제의식을 가진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활동을 해보려고 하면 학교의 탄압을 받아 지속적인 활동이 어려웠다.

청소년들은 학생인권의 제도화를 요구하며 2006년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 발의) 제정 운동을 펼쳤다. 학생인권조례는 이러한 학생인권법 제정 운동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었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든 변화, 체벌 금지와 두발 규제 완화
 

당시 민주진보진영 수도권 교육감 예비후보인 김상곤(경기도), 곽노현(서울), 이청연(인천) 후보가 2010년 5월 10일 오후 종로구 건강연대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제정 등 학생인권신장 정책협약 체결식'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차별, 억압, 경쟁, 폭력을 극복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전국 최초로 통과되고 시행된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경기도를 비롯해 광주, 서울, 전북에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학교 현장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청소년들의 인권이 존중되고 보장될 수 있도록 구체적 권리들을 조항으로 명시했다.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을 명문화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해당 지역의 학생인권 상황을 나아지게 했다. 2014년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에서 진행한 전국 '학생인권 실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머리카락 길이에 대한 규제를 겪는지" 물은 항목에서 서울, 전북, 경기, 광주가 가장 적은 응답을 기록하는 등 학생인권조례 시행 여부가 상당한 차이를 만들어 냈다.
 

2005년 5월 14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열린 '청소년 행동의 날' 행사에서 두발규제와 학생인권 침해상황을 묘사한 연극이 진행됐다. ⓒ 오마이뉴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사이에서 학생인권 현황과 인식 차이가 드러났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학교생활에서 학생의 인권 보장 실태조사'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 학생들의 두발 규제나 체벌 경험이 다른 곳보다 10~30%p 정도 적게 나왔다. 그런 점에서 학생인권조례 시행이 분명 학생인권 상황을 개선시킨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학생인권 상황이 천차만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각 지역의 학생인권조례는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만들어졌다는 인식도 있지만, 청소년들의 참여와 활동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성과였다. 청소년운동은 더 많은 청소년들에게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과 내용을 알리기 위해 캠페인을 진행했고,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서명과 엽서 등을 모아 교육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서울의 경우 교육청의 관여 없이 주민발의 운동을 통해 제정됐다.
 

김상곤 당시 경기도교육감이 2010년 10월 5일 오전 경기도 수원 청명고에서 열린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공포식 및 학생인권의 날 선포식'에서 학생대표들과 함께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공포를 선언하고 있다. ⓒ 권우성

 
2009년 당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열린 공청회에서 불거진 조례안의 주요 쟁점은 두발자유와 체벌금지 조항이었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두발자유화가 되면 학생들이 공부도 안 하고 탈선할 것" "체벌이 금지되면 교실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내곤 했다. 당시 언론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에 주목하며 학생인권이 마치 우리 사회를 위험하게 할 거라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사회적 쟁점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 논리는 조금씩 달라졌다. 10여 년 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때는 두발 및 복장의 자유와 체벌 금지 조항이 중요한 쟁점이었다. 이는 학교에서 너무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대표적 학생인권 침해였기 때문에 더욱 포기할 수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수많은 반대 논리를 넘어 결국 여러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적어도 "머리카락 길이는 자유롭게" "때리면 안 된다"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전통적 인권이라고 할 수 있는 '신체의 자유'는 어느 정도 보장받게 된 것이자, 학생인권운동이 만든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용모, 복장, 신체는 그 사람의 것이고 아무리 어린 사람이라고 해도 함부로 건드리거나 고통을 가할 수 없다는 원칙이 확인된 것이다.

학생인권을 가로막는 새로운 논리의 등장
 

'조례만드는청소년'이 2019년 11월 3일 오후 창원 분수광장에서 '경남청소년인권문화제'를 열었다. ⓒ 윤성효

 
학생인권 현실이 조금이나마 나아진 지금,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운동은 이제는 새로운 반대에 맞닥뜨리고 있다. 학생인권에 반대하는 논리가 20년,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다.

최근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부딪힌 큰 반대는 '혐오 세력'의 목소리였다. 이들은 경남 학생인권조례안의 내용 중 차별금지 조항을 주로 문제 삼으며,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임신·출산'을 이유로 학생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했다. '성평등'을 위해 '성인권교육'을 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내용을 공격했고, 성소수자를 향한 사회적 혐오의 힘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저지하려 들었다.

결국 경남도의회 제1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이들의 반대 주장을 받아들이며 2019년 학생인권조례를 부결시켰다. 경남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그렇게 좌절됐다. 이러한 모습이 최근에야 나타난 것은 아니다. 2011년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당시에도 차별금지 조항을 두고 공격하는 모습이 불거졌던 바 있다. 다만 당시에는 그에 만만찮게 체벌 금지나 두발자유화 문제 등을 향한 반발도 컸을 뿐이다.
 

2008년 5월 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교복을 입고 참가한 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2005년,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내 문제들을 교육청에 신고한 학생이 퇴학당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며 시작된 촛불집회에는 교육청 장학사들이 교복을 입고 나와 참여한 청소년들을 감시했으며, 각 지역 교육청에서는 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2011년,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피켓을 부러뜨리며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공포 이후 발생한 일이라 더욱 비판을 받았던 일이다.

2013년에는 "안녕들 하십니까?" 운동의 영향으로 중·고등학교에서도 학내 민주주의와 학칙 개정 등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2018년에는 서울 용화여고의 '창문 미투'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스쿨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여전히 학교의 변화는 더디고 학생들의 요구가 묵살당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학교 안팎의 청소년운동을 탄압하는 정도가 조금은 약해졌다는 것이다. 2005년에는 인터넷에 글만 올려도 퇴학을 당했지만 지금은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학생을 퇴학시키는 일을 상상하기 어렵다. 학교에서도 청소년들이 사회 문제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참여하는 일을 어느 정도 권장하기도 한다. 청소년의 참여할 권리, 표현의 자유도 한 발짝 나아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경남 김해 분성여자고등학교에 2013년 12월 17일 붙었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로, 이 학교 3학년 학생들이 써서 붙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학교측은 바로 떼어내 지금은 없는 상태다. ⓒ 오마이뉴스 독자 제공

 
그럼에도 아쉬운 면은 있다. 2016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한참 공부해야 할 어린 학생들이 나오는 걸 보니 부끄럽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예전처럼 집회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을 내쫓고 징계해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여전히 청소년들의 참여를 '특수한 현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결국 청소년들은 학교에 머물러야 하고, 교내에서는 공부만 해야 하며, 교실이 정치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부의 입장과 이어지곤 한다. 청소년운동을 통해 나아진 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지 않은 현실도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저절로 변하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바뀌고 교육부 장관도 잘 임명하면 이런 건 바로 해결될 겁니다."

박근혜 정부 때, 어느 학교에서 벌어진 체벌 사건을 고발하는 글에 이런 댓글이 달린 적 있다. 그러나 지금은 문재인 정부 4년째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초기에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학생인권법 제정과 같은 제도적 변화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2018년 9월 27일 두발 자유화를 선언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현재 학교 공론화를 통해 교복과 두발 자유화를 추진 중이다. ⓒ 연합뉴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저절로 우리가 원하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 20년을 돌아보아도 청소년운동 없이 만들어진 학생인권 변화는 없었다. 2000년대, 2010년대를 통과하며 운동은 많은 변화를 만들어왔다. 우리 사회에서 학생인권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고, 청소년 또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한 시민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인식이 많아졌다. 사람들의 인식과 실제 현장의 간극은 우리가 바꿔야 할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전국적으로 모든 청소년들이 학교 안에서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서는 학생인권법 제정이 시급하다. 인권은 지역이나 학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도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을 보편적 기준으로 삼은 기본적인 법률이 없다. 청소년 시기는 학교에서만 보내는 게 아니므로 모든 어린이·청소년의 인권 보장을 위한 기본법도 만들어져야 한다. 보호라는 명분으로 청소년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각종 규제와 지침들도 개정되어야 한다.

2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아주 오랜 시간도 아니다. 그만큼 학생인권과 학교민주화, 청소년운동의 남은 과제가 많다는 것은 우리가 마주할 변화의 기쁨도 여전히 많다는 뜻일 것이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 청소년인권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의미 있는 변화의 걸음을 쌓아갈 수 있기를, 20년 후에 지금을 돌아봤을 때 뿌듯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난다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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