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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4.24 08:56 수정 2019.04.24 08:56
'똑경제'는 똑똑한 경제필진 4명과 함께 매주 수요일 찾아가는 똑똑한 경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편집자말]
정책에는 눈이 있다. 사회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관점'이 들어있는 것이다. 최근 현 정부가 내놓은 청년 정책을 보면 바로 그 관점을 볼 수 있다.

"청년(또는 청소년)은 학교를 졸업한 뒤 최대한 빠르게 '첫 직장'에 들어가서 중도에 그만두지 말고 장기근속해야 한다. 청년들은 누구나 그렇게 하고 싶지만 정보가 부족해서, 혹은 선입견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첫 직장'을 찾지 못 하고 있다. 어느 직장이건 일단 들어가서 견디면 곧 다닐 만해질텐 데도, 그 고비를 넘지 못 하고 그만두는 것도 문제다."

이러한 시각은 정부의 대표적인 청년 정책인 '청년구직활동지원금', '내일채움공제' 제도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은 졸업·중퇴 후 2년 이내인 사람만이 대상이다. 최장 6개월까지 월 50만 원을 지급한다. 그런데 '6개월이나' 받으려 하는 것은 부적절했던 모양인지, 6개월째 되기 전에 취업한 사람에게만 취업성공금을 주고, 예비교육 시간에 '꼭 취업하겠습니다'라는 서약을 받는다.

내일채움공제는 간단히 말해 청년이 중소·중견 기업에 취업한 뒤 3년을 근속하면서 600만 원을 저축하면 정부와 기업이 2400만 원을 보태서 목돈 3000만 원을 만들어 준다는 제도다. 최종 학교 졸업 후 취업 경력이 없거나 있더라도 1년 미만(3년형 기준·2년형은 전 직장 실직 후 6개월 이상인 사람도 가능)인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이 정책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설문조사 결과 청년들이 중소·중견 기업을 기피하는 것은 대기업과의 임금 차이 때문이었다"면서 이를 보완해주기 위해 제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너는 비정상이니 어서 정상이 되라'는 정책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왜 스스로 꽃을 못 피우는지 꾸짖지만 그것이 가능한 여건은 갖춰지지 않았다. ⓒ Pixabay


정책에 깔린 관점이 중요한 것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기 때문이다. 최종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이유로건 2년간 취업하지 않았고(혹은 못 했고), 직장에 들어갔어도 3년 이내에 그만둔 사람, 일자리를 자주 옮기는 사람, 구직활동을 중단하고 알바 정도만 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는 비정상이다. 이들은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낮고, 국민연금 가입 기간도 짧을 것이니 사회 전체로 볼 때는 부담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이들을 어서 정상 단계로 넘어가도록 해야 하고, 그래서 이런 제도들을 만들어 지원하는 것이다. 이들이 어떤 직장에 들어가는지는 별로 상관없다. 고용율에 반영만 되면 된다. 이런 시각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정책은 곧 사회에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관점과 메시지가 현재 20~30대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 이 세대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일채움공제 제도가 발표됐을 때 30대 초 나이의 지인에게 이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코웃음을 치면서 "그 돈 받자고 인생의 중요한 시기 3년을 자기와 맞지도 않는 직장에서 버틸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이미 좋은 직장 찾아 들어갔고 어차피 계속 다니려고 했던 사람들을 위한 제도네요"라고 말했다.

한국은 이미 OECD 국가 평균을 훨씬 웃도는 '초단기근속 국가'다. 2016년 기준으로 3년 이내에 직장을 옮기는 비율은 31.9%나 되고, 10년 이상 장기근속하는 비율은 20.1%에 불과하다. 희망제작소의 2017년 조사에서 "현재 일을 포함해 총 몇 곳의 직장을 경험했나?"라고 물었을 때 '3곳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이 20대는 48.6%, 30대는 71.6%였다.

또, 취업하는 청년 중 6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한국노동연구원, 2015). 비정규직으로 열심히 일한다고 정규직이 될 수도 없다. 기업들은 계속해서 정규직 비율을 줄이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수 있던 경로를 없애왔다. '처음부터 정규직'인 공채 선발 인원도 줄이는 마당이다.

위의 정부 정책들이 이런 현상을 모르고 짜인 것은 아닐 것이다. 현상을 단순하게만 보는 것이 문제다. 청년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원인을 설문조사 했을 때 그 1위가 '임금 차이'로 나왔다고 해서 비단 그 점만이 문제일까? 2위, 3위의 다른 원인들과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1990년대만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거의 없었다는데, 이토록 커진 원인은 무엇일까? 이러한 원인들이 계속 작동해서 그 격차를 더 커지게 만들지 않을까? 입사 당시의 임금 차이는 5년, 10년, 20년을 일하면 얼마나 벌어지게 되는가? 아니, 5년 10년, 20년을 다닐 수는 있는가? 이런 점들을 따져보지 않고 단지 입사 후 3년간의 임금 차이를 보전해주기만 하면 청년들이 중소·중견기업으로 가게 될까?

퇴사가 하나의 문화가 된 청년 세대
 

청년 취업·임금 실태. 첫 취직까지 평균 1년, 근속기간은 18개월 남짓이다. ⓒ 중소기업뉴스

 
조금만 눈을 돌려서 바로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면 다른 측면들이 보인다. 이미 청년 세대에게 '퇴사'는 하나의 문화다. 퇴사의 시기를 결정하는 법, 잘 퇴사하는 법, 퇴사 이후의 시간을 잘 쓰는 법에 대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직장 안의 문화에 순응하고 순종하는 사람보다는 자기만의 전문성, 독특한 경력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탐색하고 옮겨가는 사람을 롤모델로 삼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힘들어도 꾹 참고 버티는 것은 이제 미덕이 아니다.

퇴사 이후도 중요하다. 쫓기듯이 다른 직장을 찾기보다는 '직장에 다니지 않는 기간'을 알차게, 의미 있고 행복하게 써야 한다. 그런 기간을 충분히 가진 이후에도 다시 일할 수 있는 사람,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높이 평가된다. 그런 사람을 두고 청년 세대는 '자기만의 안정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런 경향은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90년대 말 IMF 구제금융 사태,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기업들이 위기를 맞으면 가장 먼저 노동자들을 내보낸다는 것, 정부도 이들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린 청소년 시기부터 목도한 것이 지금의 청년 세대다. 이들이 느꼈던 불안은 어쩌면 부모 세대보다 더 컸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청년들은 아무리 좋은 직장에 들어간들 그 자체로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한 직장을 오래 다니며 그 조직만의 문화에 젖어있던 사람일수록 다른 직장을 찾기 어렵다는 것, 밀려나듯 퇴직한 뒤에 창업해봐야 퇴직금만 날린다는 것도 안다.

따라서 그런 직장에서의 안정성은 진짜가 아니다. 직장을 떠나서도, 옮겨 가면서도 자기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안정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은 직장에서의 불필요한 관행이나 회식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니는 동안 배울 것은 빨리 배워 놓고 다음 행로를 고민하거나, 이 직장은 생계수단 정도로만 여기고 퇴근 후의 활동이나 학습 등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의 인식은 정확하고, 또 빠르게 달라지는 사회와 더 잘 맞는다. 기술의 발전, 산업의 변화와 함께 노동의 형태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그에 따라 삶의 방식도 지향점도 다양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의 청년 세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싫은 일을 참고 하는' 인생을 살고자 하지 않는다. 얼마전 발표된 통계청 조사만 봐도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60대는 70% 이상인 반면 20~30대는 30%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가족 부양'을 미끼로 원치도 않는 일자리에 밀어넣고 계속 다니게 할 수 없는 세대다.

2030세대에게 권한을 넘겨라

이는 어쩌면 사회 전체를 위해 더 나은 방향이다. 개인들이 각자 원하는 대로 살아가 볼 수 있고, 그러는 동안 나름대로의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을 수 있다면, 정해진 길 위를 다 같이 달려가면서 등수를 매기고, 1등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위에 처져있는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가, 정부가, 부모 세대가 계속해서 '한 직장에서 장기근속' 해야만 '정상'이라고 한다면 청년들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장기근속할 수 있는 직장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없애온 것이 기성세대이고 정부다. 그런데도 사회 지도층들은 그 희소해진 일자리를 놓고 '내 자식만 들어가면 된다'고 서로 다투고 있으면서, 청년 세대를 보고는 '네가 노력해서 들어가라'고 압력을 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 가운데 사회 제도는 여전히 한 직장에 장기근속하는 사람만이 4대 보험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고, 국민연금 수령액이 커짐에 따라 노후도 안전해지며, 심지어 (법이 보장하는 최저 수준의) 연차휴가도 점점 더 많이 쓸 수 있게 돼 있다.

각자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보겠다고 하면 아무런 사회 보장, 정부 지원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사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굴뚝같아도 용기를 내지 못 하는, 공무원-공기업-대기업 시험 행렬에 서 있거나 퇴사를 꿈꾸기만 하는 청년들은 각종 지표에 잡히지 않으므로 정부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청년들에게 필요한 정책은, 또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계속해서 "네가 몰라서 그렇지…"라는 식의 메시지를 줄 것인가? 아니면 이 시대에 맞는, 2030세대가 살고 싶은 삶에 부합하는 제도를 만드는 방법을 큰 틀에서 다시 고민해 봐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과 제도를 만들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안정성, 좋은 직장의 개념이, 그 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는 것을 말이다. 덧붙이자면, 사실은 그 '권한'을 진작부터 2030세대에게 넘겨왔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 결과가 지금 이 현실이고, 기성 정당 어느 곳도 청년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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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기자,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홍보팀장으로 일했고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에서 사회적경제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희망제작소 연구원으로 ‘좋은 일, 공정한 노동’ 기획 연구, 보드게임 ‘좋은 일을 찾아라!’ 개발을 담당했다. 현재 LAB2050 연구실장으로 일하며 고용위기 시그널 분석, 지역 일자리 구조 전환 연구 등을 진행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