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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4.16 14:30 수정 2019.04.16 15:27
박정훈님은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빨간소금)의 저자입니다.[편집자말]
2019년 4월 11일은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역사적 결정이 있었던 날이다. 같은 날 그보다는 작지만 의미 있는 또 다른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배달을 하는 라이더 10여 명이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라이더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처음엔 해고당한 4명이 '부릉' 본사 앞에 주뼛주뼛 섰다. 이들은 자신이 라이더로 일하던 부릉 지점의 지점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영문도 모른 채 해고 통보를 받았다.

플래카드도 구호도 어색해 보였던 이들 앞에, '우우웅' 오토바이의 엔진소리가 울리더니 3대의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해고된 동료들을 응원하기 위해 일을 접고 달려온 3명의 라이더들이었다. 이들은 살아남았지만, 지점장이 바뀐 이후 배달료가 500원 삭감되고 배달료 할증의 기준이 되는 배달 거리가 늘어난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늦게 온 3명은 그 자리에서 노동조합 가입서를 썼다.

라이더들이 모인 '부릉'은 월 매출 100억 원을 기록하고 있는 배달대행플랫폼회사다. 부릉은 지역의 배달대행업체와 위탁계약을 맺고 음식점과 기사를 연결하는 배달앱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지역의 배달대행업체인 부릉OO지점은 배달기사들과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배달알선계약을 맺는다.

이 순간 라이더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가 아니라 특수한 노동자가 된다. 이들은 플랫폼기업인 부릉의 로고가 적힌 유니폼과 배달가방과 배달통과 프로그램을 이용해 일을 하지만, 부릉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배달대행 라이더들은 하루 12시간씩 주 6일 일해서 300만 원에서 400만원 정도를 벌기도 한다. ⓒ 라이더유니온

 CU 편의점 본사가 점주와 가맹계약을 맺고 가맹점주가 편의점 알바와 근로계약을 맺으면, CU는 알바노동자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도 CU유니폼을 입힐 수 있는 것과 같은 구조다. 알바에 대한 근로기준법의 책임은 본사가 아니라 점주만 진다. 차이가 있다면, 배달 라이더들과는 달리 알바노동자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수고용형태노동자인 배달대행라이더들이 부당한 해고, 근무조건의 후퇴, 위탁배달대행업체의 횡포에 맞서 '플랫폼 본사'의 책임을 묻는 것은 현행법을 넘어서는 주장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을 하지만 신분은 사장님이라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은 약 210만 명, 플랫폼노동자로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특수고용노동자는 55만 명이다.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라이더들의 집단 행동은 앞으로의 전개과정에 따라 배달산업전체와 플랫폼노동전반에 미칠 영향이 큰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사건을 보도한 언론기사에 달린 댓글은 매우 진부했다.
 
"철가방주제에 좋은 일자리 운운하고 자빠졋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 공부도 착실히 잘하고 학교도 괜찮은 곳 나왔다면 정장 입고 짤릴 위험도 없는 직장에서 편하게 일하겠지... 모든 사회가 못배운 사람들을 다 케어할 수는 없는 거다. 스스로 살아남아라 아니면 한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본인들을 탓해야 한다."
 

 

4월 11일 부릉 본사앞에서 라이더들이 최초의 공동행동을 벌이고 있다. ⓒ 라이더유니온

공부를 잘하는 능력의 차이가 공동체의 보호를 받을 자격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수능시험성적은 대학입학자격을 가를 뿐이다. 우리는 종종 수능시험점수를 '인권점수'로 오독한다. 만약 당신이 세상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는 정도를 수능 언어능력 점수로 측정하겠다고 한다면 동의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실도 아니다. 공부 잘 한다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시대는 끝났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돈의 힘이 학력의 힘을 이용해왔을 뿐이다.

이는 육체노동자에 대한 오래된 혐오와도 연결되어 있다. 얼마 전 머니투데이는 대리기사 월수입이 대기업과장급인 월 최고 534만 원이라는 보도를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일부의 사례일 뿐만 아니라 장시간노동과 야간노동에 시달리는 대리기사가 그 정도 돈을 버는 게 뭐가 문제냐는 지적이 불거졌다.

배달대행 라이더들도 하루 12시간씩 주 6일 일해서 300만 원에서 400만원 정도를 벌기도 한다. 이게 많이 버는 것인가? 이것만큼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는 직업이 또 어디있을까. 사람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얻은 일자리라고 믿는 의사, 변호사들에게 왜 이리 높은 연봉을 가져가냐고 묻지는 않는다. 심지어 투기를 통해 수십억의 불로소득을 가져가는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 부자들에겐 '능력이 있다'고 한다. 노른자 땅의 땅값이 올라가는 게 도대체 노력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11일 라이더유니온의 공동행동에는 해고 외에도 다양한 사연을 가진 라이더들이 함께 했다. 포항에서는 4만 Km 이상 주행한 낡은 오토바이를 주고 사고가 나자 중고시세인 60~70만원보다 훨씬 비싼 136만 원의 수리비를 청구하는가 하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라이더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인천에서는 중고오토바이로 일하다 사고가 나서 받은 보험료 250만원을 사장이 가져가고, 사장이 아는 업체의 460만 원짜리 새 오토바이를 사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사고당한 라이더가 오히려 210만원을 쓴 셈이 됐다. 우리는 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안한 네 탓이라고 말할 것인가?
 

부릉은 월 매출 100억의 배달대행플랫폼 회사다. ⓒ 라이더유니온

 
12일 중소기업중앙회는 '괜찮은 청년 일자리'의 모범사례로 부릉에 상을 줬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KBS기자가 라이더 해고문제에 대해 묻자 "그거까지는 모르겠고 우리가 그 업체를 선정한 것은 낙후업종과 IT가 결합해서..."라고 답했다.

낙후된 마을에 크고 멋진 플랫폼을 만든다고 해서 역전 주변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정거장)에는 역사를 청소하는 청소노동자들과 매일 아침 출퇴근 전쟁을 치르는 직장인들, 억척같은 역전 장사꾼들과 차가운 밤공기를 피하고 싶은 홈리스들이 모여들고 떠나기를 반복한다. 우리가 핸드폰으로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플랫폼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바뀌지 않는 한, IT기술과 플랫폼은 해고당한 라이더의 피켓 문구처럼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박정훈 ⓒ 봉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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