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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3.27 18:24 수정 2019.03.27 18:24
'버선발'은 고통받는 노동자 민중의 곁을 지키고, 한평생 평화와 통일의 길을 걸어온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자신의 삶과 철학, 민중예술과 사상의 실체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책 <버선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버선발'은 '맨발, 벗은 발'이라는 의미인데요, 백 선생님 책 출간에 부쳐 사회 각계에서 '버선발'을 자처하는 이들의 글을 '우리가 버선발이다'라는 이름으로 묶어 차례로 싣습니다. 이 글은 두번째 순서로, 명진 스님이 보내왔습니다.[편집자말]
봄이 왔건만 뿌연 미세먼지 때문에 앞산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숨이 턱턱 막히고 봄이 도통 반갑지 않다. 봄이, 봄이 봄답지 않기 때문이다. 봄이 봄답지 못한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우리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촛불로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정부를 세웠지만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답답하고 갑갑한 것이 미세먼지 못지않다. 희망의 봄을 기대하던 한반도의 진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답답해하던 즈음, 백기완 선생님의 <버선발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서울대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김병기

   
일생을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그 무도한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오신 백 선생님은 어느 언론에서 다룬 일대기처럼 '불쌈꾼(혁명가)'으로서의 한 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일제 시대로부터 군사독재 시대를 거쳐 오늘까지 세 치 혀나 잔망한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그 불덩이 같은 현대사를 껴안으셨다.

백 선생님은 역사 속을 살다간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민주 역사의 산증인이고 실체다. 선각자이자 이정표셨던 백 선생님의 삶을 통해 우리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비록 그 삶을 다 따르지는 못해도 적어도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고 답답할 때 길을 물어야 할 분이 있다면, 나는 단연코, 백기완 선생님 같은 분을 통해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백 선생님의 결기 어린 말씀을 단지 비현실적이고 과격한 주장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반면 무슨 무슨 대학에서 교수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거나 여러 공직을 거친 인사들에게는 국정자문을 받는다거나 국가의 중요 사안에 대해 고문을 맡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켜켜이 쌓인 70년, 아니 조선조로부터 이어진 몇 백년 기득권 적폐 앞에서 얼마간의 지식이나 공직 사회의 경험만으로 길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더군다나 국익을 앞세운 열강이 한반도를 포위하고 있는 이 땅의 현실 속에서 머리 속의 몇 가지 구상만으로 우리 운명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적 정부의 주요 구성원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이들 중 과연 백 선생님 같이 재야에서 목숨 걸고 불의에 부딪히며 우리의 역사를 개척해오신 분들께 국가의 미래에 대해 자문받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겉으로 아무리 번드르르하고 학식이 아무리 높다고 한들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면 어떻게 존경을 표할 수 있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역사와 양심의 법정은 늘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불의한 시대, 고통받은 민중들이 있을 때 과연 무엇을 했느냐고? 그 심판을 맨 먼저 받아야할 부류가 종교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위해 하는 일은 없으면서 사회적 존경과 대접을 받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다. 백 선생님께서는 평소 우리들에게 "역사가 거울이야, 거기에 자기 자신을 비춰봐야 해"라고 말씀해 오셨다. 그리고 그 역사의 부름에 자신의 삶이 고달플지라도 한 번도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해오셨다. 노구를 이끌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촛불혁명에 참가하시기도 했다.
 
올해 87세이신 백기완 선생님은 1933년생이다. 군사독재 시절 무지막지한 고문으로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기도 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딛고 일어나셨다. 늘 백발을 휘날리며 우리의 움츠린 마음을 펴게 만들어주시던 백 선생님. 그러나 지난해 10시간 가까이 심장수술을 받으셔야 했다.

죽음의 경각에서도 당신은 <버선발 이야기>를 놓지 못하고 계셨다가 몸을 추스르시자마자 육필로 이 이야기를 써내려가셨다고 한다. 대체 왜 백 선생님은 <버선발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걸까? <버선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죽음의 경각에서도 놓지 않았던 <버선발 이야기>
 

<버선발 이야기> 백기완 지음. ⓒ 오마이북

 
소설 <버선발 이야기>는 첫눈이 오기 전까지 맨발(버선발)로 살아야 했던 우리네 민중들의 이야기다. 백 선생님께서는 민중을 '니나'라고 부른다. "니나노 니나노 닐리리아 닐리리아 니나노" 할 때의 '니나'가 민중인 셈이다.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옛날 우리에게는 입을 것도 변변치 않았고 봄이면 주린 배를 움켜잡고 넘어야할 보릿고개가 있었다.

의식주가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 무슨 신발이 제대로 있었겠는가. 짚신을 삼아 신으면 다행이었으나 '니나'는 그마저도 없으면 맨발로 살아야했다. 헐벗고 가난한 시절은 1970년대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절집도 마찬가지여서 1970년대 무렵엔 국수가 특식일 정도였다. 어쩌다 카스텔라가 대중공양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바닥에 붙은 종이마저 긁어 먹곤 했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 세속이나 절집이나 모두 먹을 것이 넘쳐나고 풍요롭지만, 우리의 삶이 더 나아졌다고 행복해졌다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버선발 이야기>의 결말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머슴으로 성도 갖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버선발'이 자라나 땅을 얻게 된다는 것은 흔히 소설이나 사회에서 보는 '성공스토리'일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버선발은 그 성공의 과실을 혼자 누리지 않고 이웃들과 함께 나눈다.

이 결말을 통해 백기완 선생님이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은 당신의 소신인 '노나메기'이지 않았을까. 노나메기란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 사는 벗나래(세상)'을 뜻한다. 누군가는 이 결말과 '노나메기'에 대한 꿈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은 모종 하나도 관심을 갖고 거름을 주고 키우면 알찬 열매를 맺지만 신경도 안 쓰고 내버려두면 말라비틀어져 버린다. 생각도 무엇이 다르지 않다. 이상적이라는 건 바르고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을 좇아야지 왜 외면해야 하는 것인가? 길이 멀고 쉽지 않아보여도 옳은 길이라면 그 길을 향해 어떻게든 나아가려고 해야 제대로 된 세상이 되는 것이다. 꿈과 이상을 포기한 인생이 그저 그런 인생이 되듯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버선발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영어와 한자가 거의 없이 순우리말로 썼다는 것이다. 백 선생님과 함께 하는 자리는 '박수'라는 말 대신 어김없이 '손뼉'이라는 말을 쓴다. 오래 전부터 우리말 운동을 해오신 백 선생님의 노력으로 '새내기' '동아리' 같은 순우리말이 당연스럽게 우리 언어 생활에 자리잡게 되었다.

지금은 낯설지만 '니나(민중)' '갈마(역사)' '하제(희망)' 같은 말도 언젠가 우리의 입에서 줄줄 나오는 현실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백 선생님께서 <버선발 이야기>를 우리말로만 쓴 것은 이 이야기가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니나(민중)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쓴 말을 그대로 써야만 그들의 정신과 삶이 제대로 전달이 된다는 뜻에서라고 한다.

간곡한 당부
 
책 앞머리 '글쓴이의 한마디'에 다음과 같은 간곡한 당부도 달아두셨다.
 
"우리 낱말이라 어렵다고만 하지 마시고 찬찬히 한 글자 한 글자 빈 땅에 콩을 심듯 새겨서 읽어주시면 어떨까요."

그런데 "우리 낱말이라 어렵다고만 하지 마시고"라는 구절에서 나는 그만 쇠뭉치로 머리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외국어로 쓴 글도 아니고 우리말로 쓴 건데 어렵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간 우리는 똑같은 건축물을 낮은 것은 그냥 '건물'이라 부르고 높고 커다란 것은 '빌딩'이라 무심코 불러왔다. '여인숙'이나 '여관'은 규모도 작고 별볼일 없지만 '호텔' 하면 최고급 숙박 시설로 여긴다.

화장실을 일컬을 때도 '변소'나 '뒷간'이라고 하면 왠지 냄새나고 불결하게 생각하는데 영어식으로 '토일렛'이라고 하면 깨끗하고 세련되게 느껴진다. 무심코 우리의 언어 속에 이런 의식이 들어 차 있는 것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어떤 언어를 쓰느냐는 정체성은 물론 세계관과도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자기 발로 살아가야 하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언어로 말해야 하는 것은 한 인간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언어생활만 주객이 전도된 것은 아닐 것이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라고 한다. 지나온 10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100년을 내다보게 되는 시점이기에 백 선생님의 삶과 <버선발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특히 우리는 지금 100년 전과 같이 열강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의 힘이 그때만큼 약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굴하고 나약한 현실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듯싶다. 그래서는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때일수록 백 선생님께서 삶으로 보여준 담대한 기백과 담당한 기상이 절실하지 않을까 싶다.
 
산 물고기는 거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갈 때, 죽은 물고기는 두둥 물에 떠내려간다고 한다. 우리는 산 자가 될 것인가? 죽은 자가 될 것인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군부독재의 어두컴컴한 고문실,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던 그 순간, 백 선생님께서 지은 노래처럼 우리가 '산 자'라면, '산 자'라면 어떤 길을 가야할까? 답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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