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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27 13:37최종 업데이트 11.06.27 13:37

'데모스'라는 바다의 첫 항해 일지

한국 최초 급진민주주의리뷰 <데모스> 창간

급진민주주의는 비판의 운명을 타고났다. 한 편에서는 너무 급진적이라고, 다른 편에서는 덜 급진적이라고 욕먹기 쉬운 자리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수용하고 이를 급진화하여 체제 변혁으로 나아간다'라는 전략은,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의 입장에서도, 맑스주의나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입장에서도 흔쾌히 동의하기 어려운 정치 기획이다.

반면에 '민주주의의 급진화'라는 표어는 상식적이다. 굳이 급진화라고 하지 않더라도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나은 민주주의'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지향이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실천하고 있는 바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의 개선을 주장하고, 여성들이 성차별에 항의하고, 청소년들이 동등한 인권을 요구할 때, 여기에는 현실의 민주주의가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이상적인 민주주의에 근접하기를 바라는 염원과 행위가 담겨 있다.

한국 최초의 급진민주주의 리뷰

 급진민주주의리뷰 <데모스>
급진민주주의리뷰 <데모스> ⓒ 한울
이와 같은 비판과 상식 사이에서, 급진민주주의의 첫 항해를 알리는 급진민주주의리뷰 <데모스>가 지난 5월 창간됐다. 한국에서 최초로 급진민주주의에 관한 본격적인 이론적, 실천적 탐구의 장이 열린 것이다.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근본이자 뿌리인 데모스(demos)를 "존재하지만 의미 없는 자들"로 명명하고, 그들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온 모든 지배양식에 대항하는 "우정과 연대의 기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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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듯이, 지난 10년 동안 민주정부들은 한국 사회의 낡은 구체제를 혁파하는 수단으로서 자본주의의 '혁명성'을 이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했고, 그 효과 가운에 하나는 국가 개입을 통한 시장권력의 강화였다. 하지만 사실상 과거 주요 기득권 세력이 신자유주의의 수혜자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구체제는 사라졌어도 그 정점의 권력자들은 더 부강해지는 기이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또한 시장의 자율성 확대가 노동의 시민권을 축소시키는 한에서 그것은 (민주정부들의 선의와는 무관하게) 민주주의의 절차를 준수하면서도 사회 전체를 탈민주화하는 역설로 귀결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탈민주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은, 한국 사회를 '민주주의인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기묘한 상태로 얽어 놓았다.

이런 기이하고 기묘한 상황을 '보수적 민주화'로 규정하고 '좋은 정당'(또는 '좋은 정치 지도자')의 출현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최장집 학파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쁜 정당체제 속에서 좋은 정당을 구축해야 하는 이율배반의 전략이었고, 사회운동의 힘을 정당에 집중시키자는 요청은 사회운동과 정당을 상호 배제적으로 분리하는 논리를 고착시켰다.

따라서 <데모스>의 저자들이 "민주주의는 절차적으로 더욱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지만", "(인)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최장집 학파의 담론과는 대조적으로 "운동과 정당의 새로운 형태의 결합"(또는 다른 식으로 말해서 사회적 좌파와 당 좌파의 연대)을 '민주주의의 급진화' 전략으로 제시하는 데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급진민주주의의 취약한 토대

하지만 현시점에서 급진민주주의의 전망은 밝지 않다. 무엇보다 급진민주주의의 토양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운동이 가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강력했던 노동운동은 헤게모니를 상실했고, 한때 주목받은 사회운동들은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데모스>의 저자들은 '대항헤게모니의 창출'과 '차이를 인정하는 연대'를 요청하고 있지만 반향 없는 메아리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 생태, 여성의 '적녹보 연대', '신자유주의 반대와 사회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무지개 신평등연합' 등 다차원적인 전략들을 제안하고 있지만, 대체로 원론적인 원칙 확인에 머물고 있는 이유도 궁극적으로 급진민주주의의 토대가 너무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급진민주주의의 대의를 천명하는 논문들보다 우리의 관점을 이동시키는 글들이 신선하게 읽힌다. 예컨대 현대 자본주의의 쓰레기로 버려지는 잉여인간들이 불안한 삶 속에서 타자의 추방에 동조하는 구경꾼이 되었다는 비판("시민에서 비시민으로"), 새로운 소비 문화가 '쉬지 못하는 자들'을 양산하고 있으며, 소비에서의 소외를 벗어나 편안한 쉼을 회복해야 한다는 성찰("신자유주의 소비문화적 쉼에 대한 반성적 성찰"), 도시의 공적 공간과 격리된 노숙인들이 이미 '내부 난민'을 구성하고 있으며, 전복적인 노숙인운동이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홈리스, 추방된 자들의 전복적 주체화")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 이동과 사고의 전환은 급진민주주의의 급진성을 배가하는 중요한 실험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을 실험하라

아닌 게 아니라 <데모스>의 저자들은 "모든 것을 실험하고 그 실험으로부터 자유롭게 떠나라"고 명시하고 있다. 어쩌면 여기에 희망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탐색하는 반복적인 실험 자체가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제도적 설립이 아닌 상태의 변화"라는 명제를 현실에서 입증하려는 중요한 실천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안전한 영토를 버리고 데모스라는 (인)민의 바다를 낮게 항해하는 일지가 되겠다는 저자들의 각오는 사뭇 감동적이다. 부디, 서로의 이론적, 정치적 입장들이 때로 상충하고 모순적일지라도 열린 토론 속에서 보다 더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심해(深海)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란다. 지금은 비록 지도도 나침반도 없을지라도 <데모스>가 꾸준히 발간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중요한 지적 거름으로 기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정한님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입니다.



#데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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