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과 새역사국민운동(공동대표 이영훈)이 공동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이 13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새역사국민운동 이영훈 공동대표 발표 도중 5.18단체 회원들의 항의가 벌어지자 이진숙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8월 13일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이 국회에서 공동주최한 5·18 토론회에서 이영훈 새역사국민운동 대표는 1980년 5월 광주를 "소요 사태"라고 불렀다. 토론회에서는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광주정신을 폄훼하거나 전두환을 옹호하는 취지의 주장도 나왔다.
이진숙 의원은 기본 통념과 다른 주장이나 불편한 질문도 학술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며 5·18을 더 많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한 영역으로 설명하고, 이를 성역화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5·18을 다시 '폭동'과 '소요사태'로 부르는 것은 새로운 역사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1980년 광주시민을 적으로 만들고 국가폭력을 정당화했던 언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언어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안에서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현역 국회의원이 그 공간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온 '소요'와 '폭동' 등의 주장을 잘못된 발언으로 선을 긋기보다 '불편한 질문', '학술적 접근', '더 많은 토론'이라는 논리로 방어했다.
국가폭력의 언어가 국회에서 다시 등장할 공간을 마련하고, 이를 새로운 역사 토론의 하나로 두둔했다는 것. 이것이 이번 논란에서 가장 심각하게 보아야 할 지점이다.
시민을 '폭도'로 만들어 국가폭력을 정당화했다
군이 자국의 시민을 상대로 공수부대를 투입하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더구나 시민들을 구타하고 연행하고 결국 총까지 사용하려면, 그 행동을 수행하는 군인들에게 상대방을 평범한 국민이 아닌 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설명이 필요하다.
1980년 당시 계엄 당국과 군 지휘부가 사용한 것이 '폭도', '불순분자', '고첩', '적'과 같은 언어였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서도 군 상층부의 이러한 인식과 지침이 현장 공수부대원들에게 영향을 미쳐 시위를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시위 참가자들을 '적'으로 인식하게 했고, 이것이 시민들에 대한 과격 진압의 한 배경이 된 것으로 조사됐다.
평범한 시민이라고 생각하면 곤봉을 휘두르기 어렵다. 학생이라고 생각하면 군홧발로 짓밟기 어렵다. 자신과 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하면 총을 겨누기 어렵다.
그러나 그 사람이 '폭도'가 되고 '불순분자'가 되고 국가를 위협하는 '적'이 되는 순간, 폭력은 정당화된다. 시민을 때리는 것은 '폭도 진압'이 된다. 군대를 투입하는 것은 '질서 회복'이 된다. 총을 사용하는 것까지 국가를 지키기 위한 행위로 포장된다.
국가폭력은 곤봉과 총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을 행사할 대상을 '폭도', '불순분자', '적'으로 바꾸어 놓는 언어에서 시작된다. 5·18에서 '폭동'과 '소요'는 단순한 역사 해석의 언어가 아니라 국가폭력을 정당화했던 언어였다.
5·18 '폭동·소요사태' 여부는 아직도 검증되지 않은 가설인가

▲민주당, 이진숙 징계안 제출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통합특별시당위원장인 안도걸 의원과 원내대변인인 이주희 의원이 21일 국회 의안과에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새로운 국가기록이 발견된다면 연구해야 한다. 새로운 증거가 기존 결론과 배치된다면 다시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다.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정의하는 것은 많은 조사와 연구의 산물이다. 1988년 국회의 5·18 진상규명 청문회 이후 약 40년 가까이 수사와 재판, 국가기관의 조사와 학계의 연구, 피해자와 당시 진압에 참여한 공수부대원들의 증언이 쌓여서 나온 결론이다.
검찰의 수사와 재판이 있었다. 국방부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12·12와 5·17, 5·18을 조사했다. 이후 특별법에 따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다시 대규모 조사를 실시했다. 이 위원회에는 여야 추천 위원들이 함께 참여했고, 북한군 개입 여부 역시 공식 조사 대상이 됐다.
국가기관이 수차례 조사했고 법원이 판단했다. 연구자들이 검증했고, 피해자뿐 아니라 당시 진압 작전에 참여한 군인들도 조사했다.
새로운 증거도 없이 이 모든 축적을 무시하고 다시 5·18을 '폭동'과 '소요 사태'로 규정하는 것은 연구의 확대가 아니다. 이미 확인된 국가폭력을 부정하고 피해자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일이다.
독일은 왜 과거 청산의 모범국이 되었나
1970년 12월 7일 당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봉기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브란트는 나치에 저항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독일 총리로서 독일이 저지른 역사적 범죄와 희생자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늘날까지 이 장면은 독일의 과거 반성과 화해를 상징한다. 독일의 과거청산은 사과에서 끝나지 않았다.
독일은 공공의 평화를 해칠 수 있는 방식으로 나치 지배 아래 자행된 집단학살을 공개적으로 승인·부인·축소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으로 처벌한다.
피해자의 존엄을 침해하며 나치의 폭력적·자의적 지배를 승인·찬양·정당화해 공공의 평화를 해치는 행위도 처벌한다. 독일은 역사를 연구하고 토론하면서도 연구와 국가범죄의 부인·미화 사이에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국가범죄를 부정하는 것을 단순한 '또 하나의 의견'으로 방치하지 않았다.
만약 독일 연방의회 의원이 의회에서 홀로코스트와 나치 국가범죄를 다시 원점에서 논쟁하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이를 '더 많은 연구와 토론'이라고 두둔했다면 독일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가당착에 빠진 국민의힘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이 13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새역사국민운동(공동대표 이영훈)과 공동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행사 전 취소를 요청하고 토론회 내용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도 찬성해 왔다. 5·18 정신을 대한민국 헌정질서가 계승해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당 소속 현역 국회의원이 국회에 5·18을 다시 '소요·폭동'으로 규정하는 주장이 등장할 공간을 마련했고, 당 지도부 스스로 그 행사를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정치적 책임은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헌법 전문에 새겨야 할 민주주의의 정신이라고 말하면서, 그 역사적 의미를 뒤집는 국가폭력의 언어에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결국 같은 언어가 다시 반복될 공간을 남기는 셈이다.
보수 언론도 진보 언론과 비판의 강도는 다르지만 이진숙 의원의 언행을 문제 삼고 있다.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는 문제는 이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20년 전 공수부대 관계자들을 직접 조사했다
약 20년 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12·12와 5·17, 5·18 사건을 직접 조사했다.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부대 지휘관과 간부 등 군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당시 상황을 들었다. 위원회는 실제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들도 조사했다. 국방부 과거사위는 7공수부대원들을 직접 면담해 시민들을 진압봉과 총 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하는 등 과격 진압이 있었다는 증언을 확인했다.
11공수여단 62대대 소속 한 병사는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에서 광주관광호텔 옥상에 4명이 1조로 올라가 조준경이 달린 총으로 시위대를 조준사격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만 듣고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다. 당시 진압에 참여한 군인들도 직접 조사했다. 군 기록과 기존 수사 자료를 확인하고 피해자들의 증언과 대조했다.
아직 밝혀야 할 사실은 있을 수 있다. 새로운 증거가 나온다면 앞으로도 조사하고 연구하면 된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 연구와, 이미 확인된 국가폭력을 다시 '폭동'과 '소요'라는 언어로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더구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이를 '더 많은 연구와 토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독일이 걸어온 길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독일은 과거를 덮지 않았다. 국가가 잘못을 인정했고 역사적 국가범죄를 부인하거나 미화하는 행위에는 법적·사회적 책임을 물었다. 독일이 과거 청산의 모범국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5·18에 새로운 자료와 증거가 있다면 앞으로도 연구하고 조사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근거도 없이 약 40년간 이어진 수사와 재판, 국가기관의 조사와 학계의 연구, 피해자와 공수부대원들의 증언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힘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이번 일을 '토론의 자유'라는 말로 넘겨서도 안 된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국가폭력을 정당화했던 '폭동'과 '소요'라는 언어가 다시 등장했을 때 민주 사회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다. 5·18 '폭동'은 역사 논쟁이 아니다. 1980년 시민을 적으로 만들고 국가폭력을 정당화했던 언어다. 과거 청산은 진실을 한 번 밝혀 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밝혀진 진실이 다시 뒤집히고 피해자가 다시 '폭도'가 되는 것을 막는 것까지 과거 청산이다. 국가폭력의 언어가 국민의 대표기관에서 다시 반복됐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정영훈 변호사는 헌법학 박사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2국장을 지냈다. 현재 법무법인 정세에서 국가폭력·과거사 및 형사사건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