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종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세종 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해소하겠다는 방향성은 좋지만, 문제의 해법을 다루는 정부의 어프로치를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왜 묵직한 '수도 이전'이라는 본질적인 표현은 꺼내지 못한 채, 고작 '집무실 이전'이라는 지엽적인 수준에 머무는 것인가. 겨우 제2집무실 하나 더 만든다고 수도권 과밀화가 개선될 리 없다.
물론 정부가 '수도 이전'이라는 표현을 피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이라며 신행정수도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판결 이후 정부는 절충안으로 세종을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해 국무총리실과 여러 부처를 이전시켰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는 여전히 서울에 남아 있고, 오늘 발표된 것 역시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의 '제2집무실' 개념을 벗어나지 못한다. 절반의 이전이 20년째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관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허약한 근거인지는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드러난다. 고조선과 고구려는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다시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고, 백제는 한성(지금의 서울)에서 웅진과 사비로 두 차례나 천도했다. 신라의 수도는 경주였고, 고려는 개경이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서울=대한민국의 수도'라는 등식은 조선 건국 이후 약 600년, 그것도 한 왕조가 군사·풍수적 이유로 정한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시대마다 권력의 중심이 바뀌면 수도도 함께 옮겨졌다는 것이 한반도 역사의 실제 문법이다. 그런데 유독 21세기 대한민국만은 이 관성을 '관습헌법'이라는 이름으로 절대화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지금의 서울이 놓인 위치 자체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은 원래 경기도 양주(楊州)에 속한 작은 고을이었다가, 태조 이성계가 한반도 전체를 국토로 삼은 조선의 도읍으로 낙점하면서 비로소 수도가 된 곳이다. 당시로서는 국토의 중심에 가깝고 한강을 낀 요충지였기에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분단 이후 이 전제는 근본적으로 무너졌다. 서울은 휴전선에서 불과 수십 km 떨어진, 사실상 국경 도시다. 안보적으로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수도가 적성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다는 뜻이고, 국토 균형이라는 관점에서도 남한 영토만 놓고 보면 서울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니라 북쪽으로 치우친 변두리에 가깝다.
조선의 지도 위에서 합리적이었던 좌표가 대한민국의 지도 위에서는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관습헌법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가장 불편한 진실이다. 관습은 시대의 필요에 따라 재구성되어 온 것이지, 특정 시점에 영구히 박제되어야 할 신성불가침의 원리가 아니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요체는 결국 '수도권 아파트값 안정'에 맞춰져 있다. 지금 이 난리통에도 지방에서는 빈집과 미분양 주택이 속출하고 집이 남아도는데, 왜 수도권 집값만 기형적으로 오르는 것인가. 정부는 정확히 수도권이라는 좁은 판을 기준으로 공급 부족을 진단하고, 그래서 3기 신도시든 재건축이든 결국 '수도권 안에서' 공급을 더 늘리는 처방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 처방은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수도 이전 전략의 실효성수도 이전은 부동산 안정화 이외에도 다양한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 박성호
수도권의 공급을 아무리 늘려도, 전국의 자원과 인구와 투기 자본이 수도권이라는 블랙홀로 계속 빨려 들어오는 한 수요는 공급보다 항상 한 걸음 앞서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급을 늘릴 때마다 그 공급분을 흡수할 새로운 수요가 전국에서 끝없이 유입되는 구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도권 부동산 문제는 수도권 내부의 수급 문제가 아니라, 전국의 자원이 수도권 하나로만 쏠리는 국토 구조 자체의 문제인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공급 대책 자체가 수도권 일극 구조를 고착화한다는 점이다. 3기 신도시는 수도권 안에 새로운 주거지와 직장, 인프라를 추가로 짓는 사업이다. 단기적으로는 공급을 늘리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수도권의 흡인력을 한층 강화해 지방의 인구와 자본을 한 번 더 수도권으로 끌어당긴다. 집값을 잡겠다는 공급 대책이 역설적으로 수도권 일극 구조를 완화하기는커녕 더 단단하게 굳히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는 세제와 금융 규제라는 무기를 소총에서 자동소총, 중화기로 끝없이 업그레이드하며 수도권 아파트값 잡기에만 매달려 왔다. 묻고 싶다. 이런 방식의 끝은 어디인가. 이번 정책마저 효과가 없다면 다음에는 대체 어떤 무기를 꺼내 들 것인가.
실제로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정책 일관성 문제를 스스로 드러냈다. 정부는 지난 5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종료하겠다며 서둘러 매도를 종용했고, 이 신호를 믿고 집을 처분한 다주택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석 달도 지나지 않은 8월, 정부는 2027~2028년 양도세 중과세율을 절반 이하로 낮추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법적 의미의 사기는 아니지만, 정부 스스로 정한 원칙을 몇 달 만에 뒤집었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한 '말 바꾸기'다. 그 사이 정부 말을 믿고 서둘러 판 사람들은 중과세는 피했을지언정, 이후 이어진 가격 상승분이라는 잠재적 이익은 고스란히 놓쳤다.
게다가 체감되는 정책 성과도 의문이다. 초고가 대형 아파트 일부는 세 부담 강화와 급매로 가격이 꺾였지만, 정작 서민들이 실거주하는 중소형 아파트는 그 시점에도 여전히 가격이 오르고 있었다. 결국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유층의 초고가 자산만 건드렸을 뿐, 다수 서민의 체감 주거비 부담은 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수도권 아파트값이라는 '결과'만 잡으려 할 것이 아니라, 수도권 일극 구조라는 '원인'을 건드려야 한다. 그 근본적인 해법이 바로 '수도 이전'일 수 있다.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투기 자본의 물리적 공간을 해체하고, 권력과 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만이 수도권 아파트값의 과열을 근본적으로 식힐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사실 수도 이전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국토 균형 발전과 국가 경쟁력을 위해 치열하게 숙의되어 온 아젠다다. 이미 행정수도로 한 걸음 나아가 있는 만큼, 우리는 그때보다 훨씬 진일보한 단계에서 논의를 재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논의에는 이제 관습헌법이라는 벽을 넘어서기 위한 개헌 공론화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뒤집는 일은 우회로가 아니라 정면 돌파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틀 뒤인 8월 13일, 세종시청 여민실에서는 '행정수도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창립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지난달 29일 비상연석회의에서 이미 확정된 일정이지만, 오늘 대통령의 발언과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시민사회는 이 창립대회를 시작으로 연내 특별법 제정을 위한 입법 총력전에 본격 나선다. 정부가 '집무실 이전'이라는 안전한 캠페인에 머무는 사이, 시민사회는 이미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단순히 집무실을 세종에 둔다는 캠페인 수준을 넘어, 이제는 대한민국 '수도 이전'이라는 본질적인 논의를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려보면 어떨까 싶다. 무기를 업그레이드하는 헛심 쓰는 어프로치에서 벗어나 국토의 판을 다시 짜는 대담한 논의를 시작한다면, 다음과 같은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첫째,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투기 자본의 욕망을 물리적으로 분산시켜, 기존의 규제 정책으로는 잡지 못했던 수도권 아파트값을 근본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
둘째, 서울에 집중된 권력과 인프라를 지방으로 과감히 옮겨 강력한 지방 분산 효과를 유도함으로써, 가속화되는 지역 소멸 위기를 돌파하고 실질적인 국토 균형 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
결국 수도 이전은 부동산 안정화와 지역 소멸 대응이라는 난제를 동시에 해결할 가장 확실한 '1타 쌍피'의 결단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드가의 다큐맨터리 이야기>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