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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이라는 긴 세월을 교육 현장에서 보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대부분은 학생들과 함께였다. 아침 일찍 출근해 아이들을 맞이하고, 수업을 준비하고, 시험을 치르고, 상담을 하고, 때로는 야간 자율학습까지 챙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간 세월 끝에 마침내 퇴직이라는 이름의 쉼표를 맞이하게 되었다.
퇴직을 앞두고 나는 제법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먹고 사는 일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으니 이제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리라 다짐했다. 읽지 못했던 책들을 마음껏 읽고, 가고 싶었던 곳을 여행하며, 꾸준히 운동도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오랜 시간 손에서 멀리했던 악기도 연습하고, 틈틈이 글도 쓰면서 살아가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오직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지내는 삶. 그것은 퇴직을 앞둔 내게 가장 큰 기대이자 설렘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퇴직 후 처음 며칠은 해방감에 젖어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고, 수업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시험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사라지니 몸도 마음도 느슨해졌다. 하고 싶었던 일들은 생각만큼 손에 잡히지 않았다. 책을 읽어도 오래 집중하기 어려웠고, 여행은 준비만 하다가 미뤄지기 일쑤였다. 악기 연습도 며칠 하다가 흐지부지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는 느낌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평생 누군가를 가르치고 돕는 일을 해왔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물론 시험을 앞둔 몇몇 학생들을 과외 형식으로 지도해 주기도 했고, 기관 설립과 관련된 일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루는 길고, 해야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시간이 남아도는 것이 처음에는 축복처럼 느껴졌지만 점차 그것이 또 다른 고민이 되었다.
로컬 코디네이터가 되다
그러던 지난 겨울이었다. 우연히 노인 일자리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눈길이 머물렀다. 모집 분야를 살펴보던 중 '로컬 코디네이터'라는 낯선 이름이 보였다.
'이건 무슨 일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울림이 일어났다.
'그래, 이거다.'
시간을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활동량도 늘릴 수 있으며 지역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일 아닌가.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망설임 끝에 원서를 제출했고, 얼마 후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 순간의 기쁨은 생각보다 컸다. 퇴직 후 처음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다시 선 듯한 기분이었다.
관광 재단에서 교육을 받은 뒤 '군산 말랭이 마을' 안내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걱정도 있었다. 낯선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도 충분히 숙지해야 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 보니 오랫동안 교단에서 쌓아온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는 일은 익숙했고,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멀리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설명을 듣고, 안내를 받은 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건넬 때면 마음이 뿌듯해졌다. 특히 나이 든 관광객들이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다", "설명을 들으니 훨씬 이해가 잘 된다"고 말씀해 주실 때면 작은 보람이 가슴속에 차올랐다.
돌이켜보면 교사 시절에도 나는 늘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길을 보여주는 일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설명했다면, 이제는 관광객들에게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주고, 이야기를 전하고, 따뜻한 인사를 나누는 일 . ⓒ soymeraki on Unsplash
퇴직은 끝이 아니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예전에는 그 말이 다소 상투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인생의 한 장이 끝나면 또 다른 장이 시작된다. 다만 그 시작이 젊은 시절처럼 화려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조용하고 소박하지만 그 안에도 분명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나는 이제 말랭이 마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른 교실을 만들어 가고 있다. 교단은 떠났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무언가를 설명하고, 함께 웃는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40년의 교직 생활이 내 인생의 전반부였다면, 지금의 시간은 후반부를 채워 가는 과정일 것이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주는 일
퇴직 후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했던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작은 광고 하나가 내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제 나는 안다. 삶의 보람은 거창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주고, 이야기를 전하고, 따뜻한 인사를 나누는 일 속에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말랭이 마을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길잡이로 살아가고 있다."
나와 같은 조를 이루어 매일 같은 시간에 수고하는 송 코디님과 방 코디님께 "함께 하게 되어 즐겁습니다"라는 인사를 드린다.
끝으로 내가 근무하고 있는 말랭이 마을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군산 말랭이 마을'은 전북 특별자치도 군산시 신흥동, 월명산 자락의 경사면에 자리 잡은 아기자기한 옛 골목 마을이다. 군산의 대표적인 근대 역사 문화 공간이다. '말랭이'라는 말은 '산비탈' 혹은 '산봉우리'를 뜻하는 전라도 방언으로, 이름 그대로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의 역사를 살펴보면 1930~194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항구 주변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고, 6.25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산비탈 바위 위에 판자집을 짓고 정착하면서 지금의 마을 형태가 만들어졌다. 근대기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라 할 수 있다.
주요 볼거리는 골목길과 벽화다. 옛 정취가 가득한 좁은 골목길마다 1970~1980년대 추억을 소환하는 정겨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 사진 찍기에 좋다.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추억전시관과 주말에 막걸리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신흥양조장도 운영되고 있다.
방문 팁을 드리자면, 마을 규모가 크지 않아 30분에서 1시간 정도면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다. 다만 이름처럼 계단과 비탈길이 많으니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근처에 있는 유명 관광지인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이나 1998년에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유명한 '초원 사진관'도 도보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서 함께 묶어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