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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육 년 전만 해도 여름에 에어컨을 거의 켜지 않고 지냈다. 손님이 방문하지 않으면 선풍기만 돌렸다. 적당한 더위는 여름의 특징으로 받아들이자는 주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성한 열기를 내뿜는 초등학생 둘과 살아가는 4인 가족으로서 '에어컨 안 쓰기'를 지난해부터 포기했다. 윤리적 문제로 에어컨을 쓰지 않기에는 폭염이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왔기 때문이다.

에어컨이 없으면 생존이 힘든 환경이 되었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에어컨은 개인을 구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전기를 화석연료에 의존할 경우 지구를 더 뜨겁게 하는 역설을 낳는다. 앞으로 폭염은 해마다 무한 반복되는 재앙이 될 것이다. 우리 가족은 장기전에 대비하는 심정으로 '여름 나기'를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좌절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지만,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이것만은 꽤 좋았습니다!'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허벅지가 장판에 쩍쩍 달라붙던 날, 결단을 내렸다

 여름 나들이는 그늘이 있는 곳으로!
▲여름 나들이는 그늘이 있는 곳으로! ⓒ 이준수

거실 바닥에 허벅지가 쩍쩍 달라붙는 날이었다. 작은 아이는 냉동실 문을 수시로 열며 머리를 집어넣으려 했다. 선풍기는 강풍에, 회전 반경은 최대였다. 가족들의 몸이 반사적으로 선풍기 바람을 따라 움직였다. 모두 말이 없었다. 큰 아이는 땀을 삐질 흘리며 만화책을 넘겼다. 파란색 면 티셔츠 등 부위가 땀에 달라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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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맞바람이 통하도록 창문을 열어두고, 선풍기를 돌리면 어지간한 더위는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습도가 심한 날은 소용이 없었다. 땀은 피부에서 증발해야 열이 빠져나간다. 습한 날에는 땀이 덜 마른다. 땀이 나도 증발하지 않으니 티셔츠만 젖을 뿐이었다. 큰 결심을 했다.

"안 되겠다. 모든 방 커튼 치고 에어컨 켜자."

온 가족이 진심 어린 환호성을 지르며 커튼을 쳤다. 우리 집은 남서향이라 오후의 햇볕이 그대로 쏟아진다. 우리는 열의 근원인 뜨거운 태양빛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창에 커튼과 블라인드를 달았다. 집이 어두워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커튼의 효과는 강력하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효율적으로 열 공급을 막아준다.

에어컨을 가동하면 모든 가족이 거실에서 모여 생활한다. 작은 방과 안방 문은 아예 닫아둔다. 집의 냉방공간을 압축하는 것이다. 집을 좁게 쓰게 된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냉방 속도는 훨씬 빠르다. 전기료가 적게 나오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가 냉방 공간 압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열대야 경험 때문이었다. 열대야가 심하던 날 모든 창문을 열어두고 잤다. 새벽이면 기온이 떨어질 거라 믿고 별다른 냉방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면의 질이 영 좋지 못했다. 나와 아내도 밤잠을 설쳤고, 아이들은 개운하지 못한 느낌으로 잠에서 깼다. 짜증이 늘고, 집안 분위기가 별로였다. 뜨거운 밤에는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했다.

열대야에는 전기 절약보다 수면의 질이 중요하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모여 자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다. 아직 자녀들이 초등학생이라 부모와 함께 자도 싫어하지 않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냉방이 되는 방에서 함께 자면 적은 에너지를 사용하고도 푹 잘 수 있다. 가까이 붙어 지낼수록 시원해지는 여름의 마법이다.

 여름 식재료는 맛있다.
▲여름 식재료는 맛있다. ⓒ 이준수
 로컬 푸드로 차린 여름 간식
▲로컬 푸드로 차린 여름 간식 ⓒ 이준수

요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집은 거실과 부엌이 연결되어 있다. 제철 재료를 이용한 집밥을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여름에는 불 쓰기가 두렵다. 전기 인덕션이 아니라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불을 붙이면 열이 바로 퍼진다. 불 앞에서 요리할 때마다 땀범벅이 되는 경험 이후 우리 집의 여름 요리 방향은 확고해졌다. 최소한의 불 쓰기다.

일단, 한 번 밥을 지을 때 넉넉히 짓는다. 남은 밥은 냉동 보관하였다가 필요할 때 전자레인지로 돌려 먹는다. 차게 식힌 밥은 데워 먹더라도 갓 지은 밥보다 혈당이 덜 오른다. 두부는 우리 집 식탁의 단골손님이다. 여름에는 모두부를 그득하게 삶아다가 냉장고에 둔다. 찬 두부는 고소한 크림처럼 담백하고 부드럽다. 짧게 요리하고 길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여름 메뉴의 조건이다.

여름 간식으로 제철 과일은 어떨까. 토마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가격이 저렴할 뿐더러 단맛과 짠맛이 조화롭다. 더구나 푸드마일리지(식재료 이동 거리)가 짧아 환경적으로도 훌륭한 소비다.

특식으로는 지역 블루베리를 먹는다. 내가 거주하는 강릉시 인근에도 블루베리 농장이 많다. 가까운 농협 마트에 가면 '로컬 푸드' 매장에서 쉽게 블루베리를 구할 수 있다. 얼린 블루베리는 그 자체로 구슬 아이스크림이다. 그대로 먹어도 좋고, 요구르트 위에 올려 먹어도 근사한 토핑이 된다.

여름 폭염의 근본적인 원인인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데 '채식'은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일주일에 하루, 또는 세 끼 중 한 끼를 채식으로 먹는 방식은 어렵지 않다. 우리 가족도 불완전하더라도, 지속가능한 채식을 지향한다.

작은 행동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외출을 대비해 수시로 얼음을 얼린다. 운동할 때에도 휴대용 물병을 챙긴다.
▲외출을 대비해 수시로 얼음을 얼린다. 운동할 때에도 휴대용 물병을 챙긴다. ⓒ 이준수
 좋아하는 달리기도 여름에는 숲에서 한다.
▲좋아하는 달리기도 여름에는 숲에서 한다. ⓒ 이준수

집안의 빨래 담당자인 나는 베란다 건조대만 보아도 여름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다. 추운 겨울에는 빨랫감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세탁기를 돌린다. 자원을 아끼기 위해서다. 그러나 여름에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

운동을 좋아하는 네 가족이 땀 흘린 옷은 이틀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냄새가 날뿐더러 곰팡이에도 취약하다. 이럴 때 쓰는 방법은 속건성 의류를 간단하게 손빨래하는 것이다. 면 티셔츠는 손세탁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기능성 스포츠 옷은 세탁이 단순하고 건조도 빠르다. 여름의 손빨래는 '그때그때 해치우기'로 접근하고 있다.

매년 여름이 내 남은 인생의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다. 이 문장을 떠올리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커튼을 치고, 한방에 모여 자고, 불을 적게 쓰는 음식을 먹고, 물병을 챙기는 일. 하나하나는 작고 평범하지만 우리 가족이 폭염에 대응하는 생활 기술이다. 대단히 완벽하지도 않다. 에어컨을 켜면서 전기 사용을 걱정하고, 채식을 이야기하다가도 치킨을 주문한다.

물론 개인이 아등바등 여름 나기를 한다고 해서 폭염이 멈추지는 않는다. 가정의 노력만 강조하다 보면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전력 체계와 부족한 기후 재난 대책이라는 근본 문제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생활의 실천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작은 행동이 모든 것을 해결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를 일상에서 먼저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에도 우리는 네 식구가 모여 앉아 얼린 블루베리를 나눠 먹을 것이다. 바깥은 뜨겁겠지만, 적어도 서로를 살피는 그 자리는 조금 시원할 것이다.

#폭염#더위#여름#에어컨#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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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글쓰기와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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