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 사업가 제임스 최씨가 하와이보다 아름답다고 극찬한 여수 안도해수욕장 모습 ⓒ 심명남
'대한민국 최고의 해수욕장입니다. 하와이보다 아름답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사업가 최 제임스(47)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첫문장이다.
2년 만에 한국을 찾은 최씨는 지난 25일 와이프와 자녀, 처가와 본가 부모님 8명을 모시고 서울에서 여수까지 내려와 다시 배를 타고 여수시 남면 안도를 찾았다. 이번이 벌써 여섯 번째 방문인데 2년 전 가족여행을 다시 오기로 약속한 안도해수욕장을 찾은 것.
하와이보다 아름다운 안도해수욕장, 화장실은 잠김?

▲재미 사업가 제임스 최씨는 하와이보다 아름답다고 극찬한 여수 안도해수욕장을 소개하면서 "세계에서 자랑할 아름다운 자연만큼, 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행정도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 심명남
그러나 가족을 기다린 것은 낙원 같은 해변이 아니라 시설물 폐쇄를 알리는 '잠긴 화장실'이었다.
올해 안도해수욕장은 안전요원이 배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개장조차 못했고 입수도 전면 통제됐다. 해수욕장에는 이날 사람들이 하나둘씩 계속 불어났지만 공중화장실 출입문에는 굳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안전을 이유로 입수를 제한하는 조치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관광객과 주민이 이용해야 할 공중화장실까지 폐쇄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바다에 들어가지 않아도 화장실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최소한의 공공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재미 사업가 제임스 최씨가 하와이보다 아름답다고 극찬한 여수 안도해수욕장 화장실이 개장을 못했다는 이유로 시설물 폐쇄라고 적혀있다 ⓒ 심명남
가장 큰 불편은 거동이 불편한 노모(78세)에게 돌아갔다.
다리 수술 후 회복 중이던 최씨의 어머니는 소변이 급한 상황에서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고, 결국 화장실 건물 뒤편에 서서 볼일을 해결해야 했다. 아픈 다리를 쉽게 구부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소변에 옷까지 젖는 상황이 벌어졌다. 해수욕을 하던 최씨 자녀들 역시 용변을 해결하기 위해 마을 숙소까지 급히 차량으로 이동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같은 일을 겪은 최씨는 "기억에 남은 것은 아름다운 바다가 아니라 어머니의 참담한 모습이었다"며 "해수욕과 무관한 화장실까지 폐쇄한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과 존엄을 외면한 행정"이라고 개탄했다. 덧붙여 "미국같으면 국가배상 소송감으로 해외 토픽감"이라고 설명했다.
안도 주민 "관광객들 화장실 잠겨 발길 돌려... 해수욕장 통제로 올 여름 장사 망쳐"

▲재미 사업가 제임스 최씨가 하와이보다 아름답다고 극찬한 여수 안도해수욕장 샤워실도 쇄쇄된 모습 ⓒ 심명남
이날 현장을 찾은 해양경찰과 국립공원 관계자도 관광객들의 항의를 받자 "공중화장실은 개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개방 권한은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여수시는 관리 책임과 해수욕장 미개장에 따른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개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지 주민들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장에서 만난 안도 주민 A씨는 "관광객들이 화장실이 잠겨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자주 본다. 해수욕장 통제로 올 여름장사는 다 망쳤다"라면서 "장사는 둘째치고 화장실까지 막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안도 이미지만 나빠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관광객의 불편을 넘어 '공공시설 운영 기본 원칙'을 되묻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공중화장실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국민과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공공시설이다. 시설 고장이나 단수 등 특별한 사유가 아니라면 이용을 제한할 경우 그 필요성과 사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대체 시설을 안내하는 것이 행정의 기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제해양관광도시를 표방한 여수시는 9월 초 열리는 2026여수세계섬박람회를 준비하고 있다. 시는 관광 인프라 확충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편의시설조차 운영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해수욕장 화장실 잠그는 여수, 세계섬박람회 개최지 맞나?

▲재미 사업가 제임스 최씨가 하와이보다 아름답다고 극찬한 여수 안도해수욕장에서 몸이 불편한 최씨 부모님이 빠진 가운데 한컷 ⓒ 심명남
더 큰 문제는 화장실 책임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섬 지역 해수욕장은 여수시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화장실의 실질적인 운영자다. 하지만 두 행정기관 사이에서 책임이 오가는 동안 불편은 고스란히 관광객과 주민들의 몫이 됐다. 관광객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시설이 아니다. 깨끗한 화장실에서 볼일을 편히 볼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면 족하다.
최씨는 "안도의 자연은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무색하게 만든 것은 자연이 아니라 행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안도해수욕장의 잠긴 화장실은 단순한 시설 폐쇄가 아니다. 여수를 찾는 관광객에게 기본적인 공공서비스조차 제공하지 못한 여수시 행정의 현주소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이제 여수시가 답해야 한다. 왜 화장실을 닫았는지, 누가 결정했는지, 대체시설은 왜 마련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인지 시민과 관광객은 그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