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립승화원 내부모습 ⓒ 이형웅
'화장장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겨울철이나 감염병 유행 시기면 예약이 며칠씩 밀리고, 일부 유족은 다른 시·도로 '원정 화장'을 떠난다. 그때마다 나오는 해법은 한결같다.
'화장장을 더 지어야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정말 화장로 숫자만 늘리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화장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화장을 기다리는 동안 고인을 모실 공간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숫자로 확인되는 병목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화장률은 2005년 매장 비율을 처음 넘어선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2020년에는 89.9%를 기록했고, 2025년에는 94.4%까지 상승했다. 화장은 이제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다.
문제는 시설이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전국 사망자는 30만 4948명에서 35만 8569명으로 17.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국 화장로는 359개에서 400개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망자 증가 속도가 시설 확충 속도를 앞선 셈이다.
지역별 불균형은 더 심각하다. 2024년 수도권 사망자는 14만 8031명으로 전체의 41.2%를 차지했지만, 수도권 화장로는 103개로 전체의 25.8%에 불과했다. 서울만 놓고 보면 화장장은 단 두 곳, 화장로는 34기뿐이며, 수도권 전체로 넓혀도 화장장은 7곳에 그친다. 서울시민 절반이 화장 예약에 밀려 4일장을 치르고, 이용료가 10배 비싼 지방까지 원정을 가는 경우도 있다.
이 불균형은 실제로 유족의 지갑에서 확인된다. 거주 지역 밖 화장장을 이용할 때 평균 비용은 65만원으로, 거주 지역 내 비용 10만 원의 6.5배에 달한다. 그리고 이 격차는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서울신문>이 2025년 1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그해 1월 3주 차 3일 차 화장률이 42.3%로 급감했고, 수도권 화장로 비율은 26.5%에 불과한데도 시신 화장 건수는 39.2%를 차지했다. 최근 자료를 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집계 기준 2025년 전국에서 사망 후 3일째 화장을 마친 비율은 75%대에 머물렀고, 서울은 69.6%, 경기는 63.1%로 전국 평균에도 못 미쳤다.
3일장 열 곳 중 서너 곳은 이미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왜 죽음 이후에는 '기다릴 공간'이 없는가
이 지연이 만드는 진짜 문제는 시간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시간 동안 고인을 모실 별도의 공간이 없다는 데 있다.
지금 우리 장례 절차는 거의 예외 없이 같은 흐름을 따른다. 사망, 병원 장례식장 안치, 빈소 운영, 화장, 장지. 화장 예약이 밀리는 순간, 유족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이미 열어놓은 빈소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 빈소 임대료와 음식 비용, 도우미 인력 비용은 하루가 늘어날 때마다 그대로 쌓인다.
한 상조회사 관계자는 "발인 일시가 잡혀야 장례 일정이 순조로운데, 유족이 화장장 문제로 가슴 졸이며 예약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슬픔에 잠긴 유가족에게 여러모로 힘든 시간"이라고 전했다. 화장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결국 유족의 슬픔이 아니라 유족의 통장 잔고로 청구되는 구조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 구조의 이상함이 더 분명해진다. 비행기가 연착되면 공항에는 대기 라운지가 있다. 수술 일정이 밀리면 환자는 병실에서 기다린다. 물류가 지체되면 물류센터가 완충 역할을 한다. 지연은 어디에나 있지만, 지연을 견딜 공간은 함께 마련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죽음 이후에는 이런 완충 공간이 거의 없다. 사망하면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들어가야 하고, 화장 날짜가 늦어져도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려야 한다. 고인을 안전하게 모시는 기능과 조문객을 맞는 기능이 하나의 공간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에서는 화장 예약이 하루만 늦어져도 빈소 비용이 늘어나고, 이틀 늦어지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두 배가 된다.
전문 안치센터가 있다면 달라지는 것들
만약 안치와 접객이 분리된 전문 안치센터가 있다면, 이 그림은 완전히 달라진다.
고인은 먼저 전문 안치시설에서 안전하게 보존된다. 유족은 화장 예약 날짜에 맞춰 장례 일정을 정하면 된다. 빈소를 언제 열 것인지, 가족장으로 할 것인지, 추모식을 따로 열 것인지, 화장 이후에 모임을 가질 것인지.
이 모든 선택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결정할 수 있다. 화장 예약이 늦어진다고 해서 빈소 비용까지 함께 늘어날 이유도 사라진다. 화장장 부족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부담의 상당 부분을, 안치 인프라가 대신 흡수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해법은 화장장을 새로 짓는 것보다 빠르다. 새 화장장을 만드는 일은 입지 선정, 주민 의견 수렴, 환경영향 검토, 예산 확보, 공사까지 통상 수년이 걸린다. 혐오시설로 인식돼 건립이 난항을 겪는 경우도 흔하다. 반면 전문 안치센터는 상대적으로 적은 부지와 시설로도 구축이 가능하다.
물론 이것이 화장장 확충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화장장은 계속 늘려야 한다. 다만 화장장만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핵심이다. 화장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고인을 어디에서, 어떻게 모실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화장 정책에서 빠져 있는 마지막 퍼즐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화장 정책을 거의 화장로 숫자의 문제로만 바라봐 왔다. 그러나 실제 유족이 겪는 어려움은 조금 다르다. 화장을 기다리는 시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시간을 보낼 공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화장 예약이 늦어질수록 장례비가 늘어나고, 가족들은 충분히 애도할 시간 대신 비용과 일정 걱정을 먼저 하게 된다.
전문 안치센터는 화장장을 대신하는 시설이 아니다. 화장장을 기다리는 시간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사회기반시설이다.
이제 화장 정책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화장장을 몇 기 더 지을 것인가'만이 아니라, '화장을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사회가 책임질 것인가.' 그 질문이 빠져 있는 한, 화장장 부족 논의는 언제나 절반짜리 해법에 머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