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의무소방으로 군 복무를 했다. 천안에서 소방 훈련을 받은 지도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훈련이 있다. 바로 농연 훈련이다. 농연 훈련은 말 그대로 짙은 연기 속에서 손의 감각만으로 탈출하는 훈련이다.
농연 훈련을 할 때 조교가 훈련장에 연기를 가득 피워두면 나 같은 훈련병들이 방화복과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훈련장으로 이동한다. 훈련장 입구는 한 명이 기어서 겨우 통과할 수 있는 튜브 구멍으로 되어 있는데, 조교가 시간 간격을 두고 훈련병을 한 명씩 들여보낸다. 훈련장 안에 들어가 보면 이미 연기가 자욱해서 자기 손가락도 보이지 않는다. 튜브 안에 들어간 훈련병은 오직 손의 감각만을 이용해 벽을 짚어 가며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때로는 앞이 막혀서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아래 구멍을 찾아 더듬 더듬 내려가기도 한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판에 코스피와 코스닥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304.33포인트(4.46%) 내린 6,516.27에, 코스닥 지수는 42.20포인트(5.33%) 내린 749.64에 장을 마감했다. 2026.7.20 ⓒ 연합뉴스
한참을 가다 보면 없던 폐쇄 공포증이 밀려온다. 계속 기어가다 숨이 차오를 때 쯤이다. 숨은 헐떡이는데 산소호흡기에서 원하는 만큼 산소는 안 나오고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이성을 잃기 시작한다. 다행히 나는 기절하거나 패닉에 빠지지 않고 탈출에 성공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반전은 다른 훈련을 하느라 농연훈련장을 지나갈 때였다. 연기가 걷힌 훈련장은 너무 작고 조촐했다. 설령 내가 패닉에 빠지거나 기절해도 금방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느꼈던 공포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모르는 데서 오는 공포였다.
최근 2주 정도 주가가 폭락하면서 나는 공포에 빠져들었다. 처음 며칠 간은 너무 많이 빠져서 짜증이 나면서도 '이전처럼 금세 반등할 거야', '이런 하락은 주식 하면서 일상다반사지'라며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주가가 반등하지 않고 연이어 몇천만 원씩 빠지더니 평가 금액이 고점 대비 억 단위로 빠지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시간만 나면 하염 없이 떨어지는 주가창을 보며 '올라라'를 간절히 되뇌기도 했고, 망연자실해 있기도 했다. 유튜브와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때 그때 달라지는 애널리스트들의 말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결국 주식을 산 사람도, 결정한 사람도 나였다.
며칠 간 하락을 겪으며 지난 과정을 복기해 보니 주식 투자는 농연 훈련과 꽤 닮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평가 금액이 빠지는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빠질지 모른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지금 이거라도 건져서 나가야 하나' 밤마다 고민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제 3일만 더 버티면 된다고, 아니면 지금 당장 다 팔아야 한다고 알려줬다면 지금처럼 공포에 빠지거나 고민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고 해서 제자리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농연 훈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단순했다. 벽을 더듬고, 막힌 곳에서는 방향을 바꾸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 뿐이었다. 출구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을지라도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편이 나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벽을 더듬어 정보를 모으고,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을 확인해 방향을 바꾸고, 위든 아래든 출구를 찾아 다음 행동을 실행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의 전부다.
최근 며칠 연기가 걷힌 농연 훈련장을 다시 떠올렸다. 어쩌면 지금 느끼는 공포는 실제보다 훨씬 크게 부풀려진 것일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현실에는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도와줄 조교도 안전장치도 없으니까 말이다. 앞으로 더 큰 하락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공포가 사라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다. 다시 벽을 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