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물류센터지회가 2023년 현장 노동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폭염 관련 설문지 ⓒ 공공운수노조
물류센터 노동자의 폭염시기 쉴 권리가 법제도 안에 들어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해마다 여름이면 숨이 턱턱 막히는 현장에서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일했다. 현장에서는 식염 포도당이나 얼음물을 챙겨 먹으며 버티는 일이 폭염 대책처럼 여겨졌다. 일하던 노동자가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일하다 주저앉아 쓰러지거나 심지어 구급차에 실려 가도 쿠팡물류센터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쿠팡물류센터지회는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현장 노동자들에게 폭염 휴게시간과 에어컨 설치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았고, 센터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2023년, 2025년에는 비정규직이 90%인 현장에서 파업을 조직했다.
이후 2024년 10월 산업안전보건규칙이 개정됐고,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작업장에서는 2시간마다 20분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는 기준이 마련됐다. 물론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로 시행이 무산될 뻔했고, 심사는 번번이 미뤄졌다. 폭염 속에서 건설노동자와 택배노동자가 잇따라 목숨을 잃고, 특히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이 알려진 뒤에야 세 차례 심사 끝에 가까스로 문턱을 넘었다.
그렇게 2025년 7월,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폭염 휴게시간 기준이 마침내 시행됐다. 법 한 줄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노동자가 땀을 흘렸고 급기야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온도 낮추랬더니 온도계만 낮췄다
이 생명줄 같은 휴게시간이 만들어졌지만, 현장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작업환경 자체를 개선하기보다 체감온도 측정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다. 2025년 8월 쿠팡 대구2물류센터에서는 찬 바람이 나오는 포장 공정의 에어컨 송풍구 아래에 온습도계를 설치해 체감온도 기록을 낮춘 일이 벌어졌다.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걷고 물건을 찾고 나르는 선반 안쪽의 온도를 재는 대신, 찬 바람이 내려오는 곳에 온습도계를 갖다 놓은 것이다.
실제 노동자가 일하는 작업장이 아니라 온도계가 있는 공간만 시원하게 해두었고, 그 숫자를 근거로 폭염 휴게시간을 줄이려 했다. 개정된 법의 취지를 따르는 시늉은 하면서 실제 휴게시간 보장은 어떻게든 피해 보려는 꼼수로 볼 수밖에 없다.

▲에어컨 송풍구 아래에 설치된 온습도계. 쿠팡물류센터지회는 작업장 전체의 체감온도를 반영하지 못하는 위치에 설치됐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공공운수노조
2026년에도 방식만 조금 바뀌었을 뿐 꼼수는 계속되고 있다. 쿠팡물류센터지회는 쿠팡의 근본적인 폭염대책을 요구하는 '폭염감시단'을 구성해 온습도계를 직접 들고 들어가 선반 내부의 온도를 측정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노동자가 실제로 일하는 자리와 회사 온습도계가 설치된 자리 사이에 온도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확인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회사는 온습도계를 물류센터 반입 금지 물품으로 분류해 반입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노동자가 개인 온습도계를 가지고 현장에 들어가면 쿠팡의 보안규정을 어긴 것으로 처리되고, 징계를 받게 된다.
쿠팡은 쿠팡이 선정한 위치에서 쿠팡이 기록한 숫자만을 공식적인 온도로 인정한다. 반면 노동자의 몸이 느끼는 '폭발할 것 같은' 열기와 어지럼증, 노동조합이 실제 작업공간에서 확인하려는 온도는 객관적인 근거로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측정할 기회조차 거부당한다.
그래서 온도를 어디서 어떻게 재느냐의 문제는 사실 누가 현장의 사실을 결정할 권력을 갖느냐의 문제다. 이런 권력의 기울어진 현상을 바꾸려면 온습도계의 설치 위치와 측정 방식, 기록 공개를 노동조합과 반드시 협의하도록 해야 한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숫자에 노동자의 생명과 휴게시간을 맡기지 않으려면, 현장을 조사하고 기록을 요구하며 작업중지와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권한이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야 한다.
일부 쿠팡물류센터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센터 전체가 아니라 포장 작업이 이루어지는 한두 개 층에만 설치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 서서 일하는 포장 공정 노동자의 머리 위에는 찬 바람이 나오는 천장 매립형 에어컨이 달려 있다. 머리 위에서 찬 바람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노동자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주변만 잠시 시원할 뿐 넓은 작업장 전체의 온도를 낮추지는 못한다.
같은 포장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모두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도 아니다. 워터노동자들은 상품 토트박스나 부자재가 가득 실린 자키를 끌고 하루 종일 작업장을 돌아다닌다. 하루에 3천~4천 보씩 계속 걷기 때문에 머리 위 에어컨 아래에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다. 당연히 찬 바람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몸으로 느끼는 체감온도는 33도를 훌쩍 넘을 때가 많다.
그런데도 같은 층의 온습도계가 33도 아래를 가리킨다는 이유로 폭염 휴게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에어컨 바람을 전혀 쐬지 못하는 노동자가 버젓이 있는데도 "에어컨 있는 층"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다. 센터 전체 면적을 놓고 보면 실제로 냉방 설비가 설치된 공간은 10~20%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일부 공간에만 냉방 설비를 설치한 채 체감온도 33도를 휴게시간 지급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으면서 현장에는 묘한 질서가 생겼다. 에어컨이 설치된 곳은 온도가 33도 아래로 측정된다는 이유로 식사시간 한 시간을 제외하면 별도의 휴게시간이 없고, 에어컨이 없는 곳은 온도가 33도를 넘어 폭염 휴게시간이 생긴다.
"에어컨이 있으면 휴게시간이 없고, 휴게시간이 있으면 에어컨이 없다"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가 지난 14일 대전시청 앞에서 '차별 없는 폭염 대책 전면 적용 촉구, 2026 민주노총 대전본부 폭염감시단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은 더 이상 단순한 무더위가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직접 위협하는 재난이자 산업재해"라며 폭염 휴식권과 폭염 시 작업중지권 실질적 보장 등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그사이 33도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에어컨도 없이, 휴게시간도 없이 하루를 버텨야 한다. 실제로 느끼는 더위와 노동강도는 크게 다르지 않은데 온도계의 소수점 아래 숫자에 따라 누구는 쉬고 누구는 계속 일한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에어컨이 있으면 휴게시간이 없고, 휴게시간이 있으면 에어컨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메자닌(층과 층 사이의 별도 공간)에 설치됐던 현장 휴게공간, 이른바 '쿨존'도 일부 물류센터에서 사라졌다. 지난해 말 국토교통부가 물류센터 메자닌 구조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자, 일부 센터에서는 메자닌 층에 설치돼 있던 휴게공간이 철거됐다. 쿨존은 넓고 뜨거운 메자닌 층에서 에어컨이 설치된 거의 유일한 공간으로, 노동자들이 짧은 휴게시간 동안 땀을 식히고 숨을 돌릴 수 있는 장소였다.
메자닌 구조의 안전성은 별도로 개선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구조를 개선하거나 노동자들의 휴식공간을 다른 곳에 마련하는 대신, 기존 휴게공간부터 없애버린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노동자들이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휴게공간만 사라진 것이다. 안전을 이유로 휴게공간을 철거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체 휴게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지적이다.
쿠팡물류센터지회는 앞으로도 폭염감시단 활동을 통해 노동자들이 실제로 일하는 자리의 온도와 회사의 휴게시간 지급 실태를 직접 기록하고, 법의 빈틈을 이용해 휴식을 줄이는 쿠팡의 꼼수를 현장 안팎에 알릴 것이다. 온습도계의 위치와 측정 방식, 휴게시간 운영을 노동조합과 협의하도록 요구하고, 모든 작업공간에 실질적인 냉방과 휴게공간이 마련될 때까지 고용노동부의 감독과 제도 개선도 촉구할 것이다. 어렵게 만들어 낸 폭염 휴게시간이 회사의 계산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노동자의 몸과 경험이 현장의 기준이 되도록 싸움을 이어가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사무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