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스타벅스 응원’ 사태로 드러난 10대의 혐오·조롱 문화를 현직 역사교사의 시선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혐오가 늘 ‘농담’의 얼굴로 시작되었다는 것, 아이들이 조롱한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 불안이 희생양을 만들어 온 구조, 말이 끝내 칼이 된 종착역, 그리고 그 흐름을 끊어 낸 회복의 길까지 다섯 편에 걸쳐 진단에서 해법으로 나아갑니다.

▲29일 서울 목동 야구장에서는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1회전 서울 배재고와 광주 제일고 경기. 배제고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고 있다. ⓒ 강릉야구tv
지난 6월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배재고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상대 광주제일고를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를 외치며 몸을 흔들었다. 곧이어 "탱크데이"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공정한 경쟁과 상호 존중을 배워야 할 학생 스포츠의 한복판에서, 특정 지역의 역사적 비극이 응원가의 후렴이 되어 흘러나온 것이다.
배재고 학생들이 외친 '스타벅스'와 '탱크데이'는, 사실 2026년 5월 스타벅스코리아가 벌인 한 마케팅 이벤트에서 비롯된 말이다. 하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5월 18일에 '탱크'를 앞세운 텀블러 할인 행사를 열면서 여기에 '탱크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에 밀고 들어온 계엄군의 탱크를 떠올리게 하는 이 표현에, 함께 내건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겹쳤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려던 그 악명 높은 거짓 해명을 연상시키는 말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스러져 간 두 죽음의 기억을 상업 이벤트가 한꺼번에 가볍게 건드렸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공분은 순식간에 번졌다. 불매운동이 시민사회를 넘어 공직사회로까지 확산됐고, 5·18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와 시민들은 회사 측을 모욕과 5·18 특별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이사가 자리에서 물러났고,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은 물론 미국 스타벅스 본사까지 잇따라 공개 사과에 나섰다. 한 기업의 대표가 사퇴하고 그룹 총수와 글로벌 본사가 거듭 고개를 숙여야 했을 만큼, 우리 사회가 이 사안을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다시 터졌다. 5·18 민주화운동을 꾸준히 폄훼해 온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가 이 논란을 거꾸로 끌어와, 불매운동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도리어 '스타벅스 가자'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스타벅스에 가자'는, 그 자체로는 죄 없는 평범한 말이 특정 지역과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암호'로 둔갑했다.
배재고 더그아웃에서 터져 나온 그 후렴이 바로 이 암호였다. 대표이사가 물러나고 그룹 총수와 미국 본사까지 사과했던, 그토록 무거운 사안을 아이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경기장의 응원 구호로 소비했다. 경기 도중 광주제일고 측이 심판진에 강하게 항의하고 나서야 그 응원은 멈췄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벌어진 역사 조롱이, 고작 몇 주 만에 학생 스포츠 경기장의 응원가로 흘러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솔직히 '충격'보다 '기시감'을 먼저 느꼈다. 배재고 더그아웃의 그 웃음이, 지난 13년간 내 교실에서 숱하게 마주쳐 온 표정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 교실에서 마주친 장면들
고등학교에서 오래 아이들을 가르치다, 지금은 중학교 교단에 서 있다. 두 교실 모두에서 공통으로 확인한 것이 있다면, 조롱은 늘 '농담'의 얼굴을 하고 슬며시 수업 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몇 장면을 떠올려 본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학생이 근현대사 인물을 다루는 발표 자료를 만들어 왔는데, 슬라이드가 어딘가 어색했다. 자세히 보니 특정 전직 대통령의 얼굴을 동물이나 캐릭터에 합성한 사진이 맥락 없이 끼워져 있었다. 발표하는 아이도, 듣는 아이들도 그 지점에서 눈을 맞추며 킥킥거렸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침묵의 웃음 속에는 이미 서로가 아는 '암호'가 흐르고 있었다.
수업용 태블릿 배경화면에서 희화화된 정치인의 사진을 발견한 적도 있고, "~했노", "노무(너무)" 같은 말투가 남학생들 사이에서 반쯤은 일상어가 되어 있는 것도 여러 번 목격했다. 중국인을 비하하는 노래를 아무렇지 않게 흥얼거리는 아이,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 표현을 "이거 밈이잖아요"라며 방어하는 아이도 있었다.
지난 2025년 12월 24일부터 올해 1월 6일까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소속 초·중·고 교사 177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은, 이 문제가 이미 학교 전체의 현실임을 보여 준다. '학교와 교실 내 극우화된 혐오 표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응답 교사의 89.8%, 곧 열에 아홉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매우 심각하다' 61%, '심각하다' 28.8%였다.
실제로 그런 표현을 하는 학생을 목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매우 자주 있다' 48%, '자주 있다' 32.2%였다. 교사 열 명 중 여덟 명이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응답한 것이다. 학생들이 쓰는 표현으로는 전·현직 대통령 비하가 가장 많았고(50.4%), 중국·정치 혐오(37.9%), 젠더 및 여성혐오(20%), 역사 왜곡(15%), 소수자 혐오(12%), 지역 비하(3.6%)가 뒤를 이었다.
더 뼈아픈 대목은 그 다음이다. 같은 설문에서 응답 교사의 75.2%가 '혐오 표현이 나왔을 때 직접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교사가 누구보다 잘 알지만, 정작 그것을 바로잡을 손발은 묶여 있는 셈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수업 중 혐오 표현을 짚으려다, '괜히 편향됐다는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을 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교사들이 왜 이토록 지도를 힘겨워하는지는, 이 시리즈의 뒷부분에서 따로 짚으려 한다. 결국 배재고 더그아웃의 그 구호는, 이미 우리 교실 곳곳에 스며들었지만 어른들이 제때 손대지 못한 문화가 운동장으로 터져 나온 '한 장면'이었을 뿐이다.
문제의 핵심, 미움이 아니라 '재미'다

▲"스타벅스 가자, 탱크데이" 등 5.18 민주화운동 혐오 폭력으로 논란을 빚은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5.18 민주묘지를 찾아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참배한 뒤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더 충격적인 것은 표현의 수위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다. 내가 만난 학생들 대부분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증오해서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재밌어서", "드립이라서", "밈이라서" 가볍게 소비한다. 조롱의 대상이 겪은 아픔의 무게는 지워지고, 그 자리엔 또래끼리 통하는 웃음의 코드만 남는다. 혐오가 어느 순간 '생각'이나 '신념'이 아니라 하나의 놀이 문화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배재고 교장조차 한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구호에 담긴 "역사적 맥락과 5·18 민주화운동의 무게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나는 이 말을 아이들을 두둔하는 변명으로 읽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지금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낸다.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조롱하고 있는지 모른 채 조롱하고 있다. 의미를 모르니 죄책감도 옅고, 죄책감이 옅으니 더 쉽게, 더 자주 반복한다.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요즘 애들이 왜 이렇게 이상해졌나"가 아니다. "혐오는 어쩌다 아이들에게 가장 손쉬운 놀이가 되었나"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는 잠시 시선을 90여 년 전 유럽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역사의 거울...혐오는 언제나 '농담'의 얼굴로 왔다

▲"스타벅스 가자, 탱크데이" 등 5.18 민주화운동 혐오 폭력으로 논란을 빚은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이효준 배재고등학교 교장이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1939년의 전쟁, 혹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떠올린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훨씬 앞선, 사소한 지점에 있다. 학살은 총구가 아니라 '웃음'에서 시작되었다.
1920~1930년대 독일에는 <데어 슈튀르머>라는 주간지가 있었다. 율리우스 슈트라이허가 만든 이 신문은 유대인을 탐욕스러운 괴물이나 벌레로 그린 캐리커처와 저속한 농담으로 지면을 채웠고, 거리 곳곳의 유리 게시판에 나붙어 지나가던 시민들이 낄낄거리며 읽는 하나의 '대중오락'이 되었다. 그것을 보고 웃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자신이 학살에 가담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는 그림'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반복되는 사이, 유대인은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서 '웃음거리'로, 다시 '없어져도 괜찮은 존재'로 서서히 격하되어 갔다.
내가 이 대목에서 가장 힘주어 가르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과정'이다. 혐오는 결코 한 번에 폭력이 되지 않는다. '반복 → 둔감화 → 정당화'라는 계단을 한 칸씩 밟고 올라간다. 웃음이 반복되면 감각이 무뎌지고, 무뎌진 감각은 어느새 "저들은 원래 저래도 되는 존재"라는 생각을 자연스러운 상식처럼 만든다. 훗날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은 슈트라이허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자기 손으로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지만, 그의 '말과 그림'이 수백만의 죽음을 예비한 죄로 인류에 대한 범죄자로 단죄되었다. 인류는 그렇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혐오의 언어 그 자체가 이미 폭력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배재고 더그아웃의 웃음과 90년 전 독일의 그 웃음이 규모에서도, 맥락에서도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그 둘을 함부로 같은 저울에 올릴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교사의 눈에는, "진심이 아니라 장난이니까 괜찮다"는 논리와, 그 논리 안에서 조롱의 대상이 서서히 '사람'의 자리를 잃어 가는 구조만은 놀라우리만치 닮아 보인다.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 있다면, 바로 그 '닮음'을 '설마' 하며 가볍게 넘기지 말라는 것이다.
'놀이'라는 이름 앞에서, 어른의 책임을 묻는다
물론 열여덟 살 아이들에게 나치의 선전관과 같은 악의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들을 '괴물'로 몰아세우는 데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온라인에 넘쳐나는 극우 콘텐츠, 알고리즘이 반복 노출시키는 자극적인 밈, 그리고 그것을 '표현의 자유'로 방치해 온 어른들의 세계, 아이들은 그 거울에 비친 우리 사회의 얼굴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놀이를 "애들이 다 그렇지"라며 계속 웃어넘길 것인가에 있다. 지난 13년의 경험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 하나 있다면, 한 번 웃어넘긴 농담은 결코 그 자리에 멈춰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반드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배재고 아이들이 그토록 가볍게 외친 '스타벅스', '탱크데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향한 것이었을까.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것이 지금까지 조롱의 표적이 되고 있을까.
다음 편에서는, 아이들이 조롱한 바로 그 '역사의 진실' 앞에 서 보려 한다. 조롱을 멈추게 하는 첫걸음은, 그들이 웃어넘긴 그 사건이 실제로 무엇이었는지를 똑바로 마주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종관은 역사란 교실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라 믿으며,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역사 교사다. 그래서 아이들과 늘 함께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나의 평화, 너의 평화, 그리고 우리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을 교실과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 답은 언제나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은 책으로 <1일 1주제 9분 만에 끝내는 한국사>, <이불킥 한국사>, <개념연결 초등 세계사 사전>(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