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오전 10시 부산시청 후문에서 열린 부산지하철노조운영서비스지부 결의대회 ⓒ 임병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부산을 방문해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5성급 호텔' 수준의 깨끗한 지하철 화장실과 빛이 나는 전동차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수준의 문화적 국격을 자랑하는 부산지하철의 청결 유지 배경에는 청소 노동자들의 뼈를 깎는 고통과 피땀이 서려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이들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엉터리 임금 설계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진짜 사장인 부산교통공사와 부산시가 책임지고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7일 오전 10시, 부산시청 후문 광장에서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운영서비스지부 조합원들이 모인 가운데 '원하청 교섭 회피 부산교통공사 규탄 및 임금·적자 원가 설계 개선 촉구 결의대회'가 열렸습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청소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원청인 부산교통공사의 '비용 떠넘기기' 꼼수와 인력 부족으로 인한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고발했습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현실... "안전 인력 즉각 충원하라"

▲7일 부산시청 후문에서 열린 부산지하철노조운영서비스지부 결의대회에서 사회자가 청소노동자들이 낮은 포복으로 청소하고 있다며 직접 바닥에서 누워 보여주고 있다. ⓒ 임병도
'5성급 화장실'과 '광택 나는 전동차'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밥 먹을 시간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참혹한 노동 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쪼개기 식사를 하며 골병이 들어가는 청소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노동 실태가 폭로되었습니다.
집회 사회자는 "화장실 광을 내기 위해 반복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청소하는 노동자들은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두 번, 세 번 나누어서 차를 타고 이동하며 한 술씩 뜬다"라며 "관절이 아파 굽은 손가락으로 전동차 에어컨 환풍구를 닦고, 구석에 낀 약품 찌꺼기를 벗기기 위해 30~40분씩 낮은 포복으로 바닥을 박박 긁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직접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참담한 현장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차량서비스지회에서 근무하는 60대 이기숙 조합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이 조합원은 "돈을 아끼려고 원가를 빡빡하게 짜니 사람은 늘 부족한데 청소해야 할 전동차는 밀려온다"라며 "만성적으로 일은 넘쳐나는데 인력을 뽑아주지 않아 맨날 안전 공백이 발생하며 우리를 사지로 몰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말로만 안전을 외치지 말고 인력을 증원하고 환경을 바꾸는 데 돈을 쓰라"고 질타했습니다.
부암서비스지회 서문건예 대의원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노동 강도는 높아지고 청소 품질과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면서 "시민들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철도를 제공하기 위해 충분한 인력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노동자에게 고통 전가하는 '적자 원가 설계'... "일한 만큼 정당하게 달라"

▲7일 부산시청 후문에서 열린 부산지하철노조운영서비스지부 결의대회에서 허명신 운영서비스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 임병도
이날 집회에서 가장 강하게 제기된 문제는 부산교통공사의 기형적인 '원가 설계'였습니다. 노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부산교통공사는 자회사에 내려주는 임금 설계를 짤 때 법정 통상시급을 기준으로 시간외수당을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자회사는 구조적으로 매년 8억 원에 가까운 임금 예산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임금 동결과 처우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신평서비스지회 장미순 대의원은 "오늘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위해 선 것이 아니라, 법에 맞는 임금과 최소한의 인력을 요구하기 위해 섰다"라며 "법정 통상시급을 기준으로 인건비를 책정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인데, 부산교통공사의 잘못된 원가 설계로 인해 자회사는 매년 적자를 떠안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장 대의원은 "부산시는 더 이상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원가 설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노포서비스지회 최미애 대의원 역시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최 대의원은 "사측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가 지난 2년 동안 피땀 흘려 쟁취한 임금 인상분에서 통상임금 산입 범위 확대에 따른 추가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노동자에게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대저서비스지회 서연정 대의원도 "잘못된 원가 설계로 우리의 정당한 피와 눈물이 통째로 깎여 나갔으니 이것이 노동 착취가 아니고 무엇이냐"며 "엉터리로 설계한 원가를 지금 당장 개선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책임 회피하는 원청 부산교통공사... 이제는 부산시가 응답할 때"

▲7일 오전 10시 부산시청 후문에서 열린 부산지하철노조운영서비스지부 결의대회 ⓒ 임병도
부산지하철 청소 노동자들은 이러한 기형적인 임금 구조와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정(부산시-교통공사-노조) 협의를 요구하고 있지만, 원청인 부산교통공사는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단체 교섭 안건 상정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문재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은 "통상임금을 지급하기 위한 재원을 어디에서도 내놓지 않아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률이 0이 되었다"라며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과 똑같다"고 비판했습니다. 오 위원장은 이어 "밀폐 공간 3인 근무 등 법과 제도를 지킬 수 있는 인력까지 포함하면 최소 150명이 더 필요하다"면서 "우리도 인간답게, 노동자답게 살고 싶다"고 호소했습니다.
운영서비스지부 허명신 지부장 역시 "부산시는 원청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부산교통공사를 관리·감독해야 한다"라며 "노동자가 요구하는 고통 전가 원가 설계 개선과 안전 인력 충원은 모두 예산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진짜 사장인 부산시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부산의 얼굴이자 시민의 발인 지하철이 세계적인 수준의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려온 청소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헌신을 '적자'라는 이유로 헐값에 쥐어짜는 구조적 모순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새로 임기를 시작한 전재수 부산시장이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조성'을 약속한 만큼 부산교통공사도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