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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위대한 스승이고, 숲은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그 품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배우고, 성장해가는 순간들을 글로 담아 전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이 발생한 다음날. 근처 학교의 중학생들 몇 명이 동네 스타벅스 앞에서 인증샷을 찍은 후 깔깔거리며 매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중학생이 된 제자들을 만나 학교 분위기가 어떤지 물어보았다. 일부 아이들은 학교에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일베 용어를 쓰거나 노래를 부른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경기 중 광주제일고 학생들에게 "스벅 가야지"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이러한 문화의 진짜 문제는 역사를 왜곡하고, 고인들마저 희화화 하며, 상대를 혐오하고 조롱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교육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지 며칠간 잠을 설치며 고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장에 꽂힌 책들을 둘러보다가 12감각에 관한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김현경 작가의 책 <12감각을 깨워야 내 아이가 행복하다>에 나오는 대목이다.
감각이 살아 있다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각이 잠들어 마취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며,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들판에 핀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늘이 얼마나 높고 파란지,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특정 가요의 가사가 얼마나 조야한지, 대형 참사나 범죄가 얼마나 끔찍하고 슬픈지, 자본주의의 상술이 한국의 전통을 얼마나 심하게 훼손시키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런 것을 느끼고 그래서 좋지 못한 것을 바꾸고 개선하려면 느끼는 주체가 건강해야 합니다. 그 주체란 바로 당신입니다.
이 대목에 무척 공감했다. 올해 봄부터 숲에서 수업을 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거나 공놀이를 하는 것도 어려워진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고 싶었고, 다양한 생명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자연 자체가 훌륭한 학교이자 스승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감각을 회복하는 교육
지난주 금요일에는 하교 후 아이들과 함께 백사실계곡으로 향했다. 이해인 수녀님의 <6월의 숲에는>이라는 시 구절 "초록의 희망을 이고/숲으로 들어가면//뻐꾹새/새 모습은 아니 보이고/노래 먼저 들려오네// 아카시아꽃/꽃 모습은 아니 보이고/향기 먼저 날아오네"처럼, 새소리와 꽃향기가 먼저 우리를 맞아주었다.

▲개망초 ⓒ 이정현
숲으로 가는 길 양옆에는 하얀 개망초들이 가득 피어나 있었다. 그 꽃들을 보고, 하진이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따라오던 나를 바라보며 "선생님, 이 계란후라이같은 꽃은 뭐예요?"라고 물었다. 개망초라고 대답해주었더니,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그 이름을 잊지 않으려는 듯 몇 번 되뇌이며 다시 걸음을 옮긴다.
수업을 하는 공간에 이르러서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목을 축였다. 옛 집터의 큰 돌 위에 하나둘 자리를 잡은 아이들에게 나는 앤디 J. 피자와 소피 밀러가 지은 <네 느낌은 어떤 모습이니?>라는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너희는 모든 것을 보지는 못했을 거야. 세상엔 보이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 어떤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이제부터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될 거야. 이제 눈을 감아 봐.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속으로 열까지 센 다음, 청각, 후각, 미각, 촉각만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느껴봐. 지금 이 순간, 무슨 소리가 들리고, 어떤 냄새와 맛이 나고, 어떤 촉감이 느껴지니?"
알록달록한 다양한 색들과 자유로운 형태로 감각들을 표현한 그림책을 읽고 나서, 아이들에게 둘씩 짝을 지어보자고 했다. 그리고서는 두 명 당 하나씩 안대를 나눠주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안대를 쓰고 숲을 탐험해보라고 했다.
안대를 쓰지 않은 짝꿍은 안대를 쓴 친구가 안전하게 숲 속의 여러 존재들을 만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안대를 쓴 아이들은 조심조심 발을 옮기고, 두 손을 안테나처럼 더듬거리며 숲을 만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처럼 긴 풀에 손가락을 넣어 쓸어보기도 하고, 나무에 붙인 이끼를 쓰다듬기도 하고, 돌과 바위들을 만지기도 했다.

▲안대를 쓰고 숲을 탐험하다 ⓒ 이정현

▲안대를 쓰고 숲 탐험 중 ⓒ 이정현
그렇게 온몸으로 경험해본 뒤 함께 읽었던 그림책에 나온 것처럼 자신이 만난 새로운 감각들을 그림으로, 글로 담아내어 보았다. '푸슬푸슬, 오돌토돌, 거칠거칠, 맨들맨들, 퉁퉁'처럼 형용사로 표현한 아이들, '아늑이, 뾰족이, 오톨이, 포실이, 단단이'처럼 감각을 캐릭터처럼 표현한 아이들도 있었다. 탐색을 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하나같이 몰입해서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새롭게 느낀 감각을 글과 그림으로 ⓒ 이정현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 놓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그림에도 내려앉아 더 아름다운 작품처럼 보였다. 아이들과 둥글게 서서, 모두의 작품들을 감상한 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숲을 만나보니 어땠냐고 질문했다. 시경이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음...앞이 완전히 깜깜해지니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라는 말을 했다.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감각
어른들에 비해 훨씬 더 유연하게 열려있는 아이들을 행동을 지켜보며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고 바라보는 포용력도 우리가 길러갈 수 있는 감각과 힘의 형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감각을 기르고, 또 길러주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대신 주변 사람들과 자연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재생되는 편향적인 영상들과 쇼츠, 광고들 속에서 생각이 마비되고, 무감각해지다 보면 남들의 행동과 욕망에 휩쓸리듯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무한 경쟁을 바탕으로 한 입시 교육 속에서 아이들이 본연의 모습을 잃고 서로를 공격하고, 혐오하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제라도, 손을 쓸 수 없이 더 늦기 전에 학교와 여러 교육 현장에서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타인과 세상의 고통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연결성을 느끼게 하는 활동들을 늘려야 한다. AI와 로봇이 일상화 되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른인 나부터 깨어있는 감각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해 나는 아이들과 숲으로 간다. 언제나, 누구든지 안아주는 거대한 품 안에 안기고, 또 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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