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5년 12월 5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누리집에 사과문을 올렸다(아래). 2026학년도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 체계에서 요구되는 적정 난이도와 학습 부담 완화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라며, 향후 "출제 및 검토과정을 다시 한번 면밀히 점검하고, 특히 난이도 조정 절차, 현장 교사로 구성된 검토위원의 역할 강화, 출제 및 검토위원의 역량 강화 방안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5일 후, 당시 오승걸 평가원장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2026학년도 수능 영어 관련 사과문작년 12월 5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영어 난이도 조정 실패와 관련하여 누리집에 사과문을 올렸다. 같은 달 10일, 당시 오승걸 평가원장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새로 임명된 김문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지난 5월 4일 교육부 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1994학년도부터 33년간 수능이 시행되면서 축적된 자료를 분석해 적정 난이도로 출제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며 "특히, 지난해 수능에서 영어 1등급 비율이 문제가 됐기에 그 부분을 더 심도 있게 살펴보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2월, '수능 영어 난이도 조절 실패 원인 조사 결과 및 개선 방안'을 내놓으면서 영어영역 출제위원 중 현직 교사 비중을 33%에서 50%로 높이고, 당장 올해 2027학년도 6월 모의평가부터 적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대책은 과연 효과를 거두었을까?
6모 영어 1등급 4.13%에 그쳐
결과는 또 실패였다. 출제위원 중 현직 교사 비율을 50%로 늘렸어도 영어영역 적정 난이도는 확보되지 못했다. (오승걸 전임 평가원장이 스스로 언론에 밝힌 바) 평가원이 설정한 절대평가 영어 1등급 비율 목표는 6~10% 수준인데, 지난 6월 4일 치러진 6월 모의평가(6모) 영어영역 1등급 비율은 4.13%에 그쳤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6월 모의평가 영어 1등급 비율 추이절대평가로 치른 2018학년도 이후 10년 동안의 6월 모의평가 영어영역 1등급 비율을 보면 들쭉날쭉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신정섭
위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평가원은 절대평가 시행 첫해인 2018학년도 6모를 포함하여 2020, 2021, 2024학년도 이렇게 딱 네 번만 '적정 난이도' 목표를 달성했다. 적정 난이도가 1등급 6~10%라는 평가원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렇다. 특히, 2025학년도부터 이번 2027학년도까지 최근 3개년의 6모 영어영역 1등급 비율은 1.47%, 19.1%, 4.13%로 글자 그대로 '널뛰기'였다.
6모를 넘어 9월 모의평가(9모)와 수능까지 범위를 넓혀 살펴보자. 처음 절대평가로 치른 2018학년도 이후 지금까지 영어영역 1등급 비율은 오르락내리락 춤을 추었고, 아래 그래프에서 녹색 네모로 표시했듯이 6~10%라는 적정 난이도를 확보한 때는 총 28회 중 10회(35.7%)에 불과했다.

▲2018학년도 이후 수능(모의평가 포함) 영어 1등급 비율 추이절대평가로 치른 2018학년도 이후 6모, 9모, 수능 총 28회 시험 중 영어 적정 난이도 '1등급 6~10%'를 충족한 경우는 10회에 불과했다. ⓒ 신정섭
특히, 평가원장이 난이도 조정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작년에는 6모, 9모, 수능 영어 1등급 비율이 각각 19.1%, 4.5%, 3.11%로 극심한 편차를 보였고 계속 내리막이었다. 이 정도면 수능 출제기관으로서의 위상과 신뢰도에 금이 갔다고밖에 볼 수 없다. 33년이라는 오랜 기간 쌓은 전문성과 출제 역량은 다 어디로 갔는가.
작년 수능에서 1등급 비율이 3.11%까지 떨어질 정도로 영어시험 난도가 높아져 수시 최저학력기준 미달자가 속출하자, 올해 2월 교육부는 영어영역 출제위원 중 현직 교사 비중을 50%로 높이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를 처음 적용한 올해 6모부터 실패로 드러났다. 이는, 교수 대 교사 출제위원 비율이 문제의 핵심이 아님을 방증한다.
교육부가 출제위원 구성 비율을 바꾼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교육부는 2005~2007학년도 선택형 수능 체제로의 전환에 맞추어 현직 교사 출제위원 비율을 기존 27%에서 2007학년도까지 50%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특정 과목이 아니라 수능 출제 전반의 현장성을 강화하려는 정책이었다.
그런데 지난 2월 교육부의 '영어영역 교사 출제위원 50%로 상향' 대책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2007학년도 이후 현직 영어 교사 출제 비율은 다시 낮아졌다. 사실, 그 이유와 구체적인 데이터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평가원이 보안상의 이유로 관련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출제위원 구성 비율이 자의적으로 달라진 건 아닌지 짐작할 뿐이다.
물론, 수능 출제위원 중 현직 교사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 하나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출제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땜질 처방'에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사고가 터지면 돌려막게 하듯 미봉책만 내놓으니까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럼, 수능 영어 출제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수능시험 출제·검토 과정을 잘 알고 있고, 학교 현장에서 28년간 수능 영어를 가르쳐온 사람으로서 아래 3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출제 시스템 개선 방안 3가지
첫째, 영어영역 출제위원 중 현직 교사 비중 50% 방침은 유지하되, 그중 2/3 이상은 출제 및 검토 유경험자를 위촉하여 전문성을 강화하고, 출제·검토위원을 대상으로 '절대평가 적정 난이도' 관련 심화 연수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사 출제위원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의사결정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둘째, 현재 수능 영어는 사실상 EBS 연계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교육 혜택을 못 받아도 EBS 교재만 충실히 공부하면 얼마든지 수능 대비가 가능하다고 했던 말은 허언이었던가. 실효성은 없고 시험의 난도만 높이는 'EBS 간접 연계 50%' 방침은 폐지하고, 최소 30% 정도라도 EBS 연계 교재에서 직접 출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도 이론적 배경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절대평가 수능 영어의 '적정 난이도'를 공식화하고, 평가 문항 난이도를 과학적으로 예측하기 위한 AI 시뮬레이션 도구를 개발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 미국 공교육에서 활용하는 독서 지수(AR) 분석 결과 수능 영어 지문 중 상당수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와류 방출(vortex shedding)' 현상에 관한 올해 6모 38번 지문이 대표적 사례다. AR 지수가 13.6(14학년 수준)에 달해,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넘어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AI 검증 등 면밀한 대책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교육에 불을 지르는 영어' 논란은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