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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통 반납할 거 많아서 내일 퇴근 후 집에 들를게."

딸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다. 가져간 반찬을 다 먹은 모양이다. 새로운 반찬이 필요하다는 이야긴데 무엇을 해줘야 할까? 1996년생 딸은 올해 초에 독립했다. 처음엔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반년 정도 사는 모습을 지켜보니 잘 꾸려가는 것 같아 이제 안심이 된다. 안심 단계라고는 하나 끼니는 제대로 챙기는지, 아픈 덴 없는지 염려는 매일 소멸과 재생을 반복한다. 사소한 걱정까지 내려놓을 수 없는 게 엄마의 기본값인가 보다.

딸의 속 깊은 '반찬' 신호

 딸이 만든 '봄동 비빔밥'과 '마늘종 비빔밥'
▲딸이 만든 '봄동 비빔밥'과 '마늘종 비빔밥' ⓒ 신연주

무슨 반찬이 먹고 싶냐고 물으니 뭐가 있냐고 되묻는다. 자주 가져가는 것도 아니니 먹고 싶다는 걸 새로 해주고픈 마음인데 딸은 "뭐 해줘"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대신 "뭐 있는데?" 또는 "사 먹어야 하나?"라며 얼버무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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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김치로 볶음김치 하면 별론가?"
"깍두기 같은 건 없지? 사 먹어야 하나?"

이런 식으로 슬쩍 변화구를 던진다. "사 먹어야 하나?"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엄마라면 귀신같이 눈치챌 수 있다. 볶음김치와 깍두기가 먹고 싶다는 뜻인데 직구를 던지지 않는 건 아마도 나에 대한 배려인 듯싶다. 엄마가 지금 해줄 수 있는 상태인지 반응을 먼저 살피는 속 깊은 어리광으로 들린다.

딸은 요리하는 걸 귀찮아하는 내 성향을 잘 안다. 그런 나에게 깍두기를 해달라기엔 미안한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더구나 김치 담그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말을 누누이 들으며 살아온 터라 미안한 줄 알면서도 독백 같은 신호를 보낸 것일 테다. 딸이 먹고 싶다는데 요리하기 싫어하는 내 성향이 뭔 대수랴. 장바구니 들고 뛰쳐나갈 수밖에.

독립 초기엔 먹고 싶은 반찬 얘기하랬더니 단칼에 거절했다. 냉장고가 좁아서 들어갈 데 없다며 김장 김치만 가져갔다. 반찬 가게를 이용하거나 사 먹는 음식으로 끼니를 채우며 홀로서기의 의지를 다지는 듯했다.

독립했으니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든지 해달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다. 의존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집의 하자나 거슬리는 부분도 자기 방식대로 보완해 나갔다. 고치기 선수인 아빠 손도 빌리지 않고 알아서 척척 해내며 홀로서기의 성취감을 누리는 듯 보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었지만 우리 부부는 말 없이 딸의 방식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차에 반찬가게에서 구입한 도라지 나물을 먹고 탈이 나 이틀 동안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다. 약과 죽을 먹고 괜찮아졌단 말에 마음이 짠했다. 그 후로 릴스에서 유행하는 봄동 비빔밥, 마늘종 비빔밥 같은 일품 요리를 만들어 먹더니 퇴근 후 다시 시작되는 집안일이 고단했던 모양이다.

딸은 내 반찬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살림과 노동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딸은 직접 떼쓰지 못하고 지금처럼 귀여운 '밀당'으로 넌지시 의도를 흘렸다. 그 모습이 대견 하다가도 가슴 한구석이 시큰 했다. 내 밥상을 받기만 하던 딸이 이제 내 노고를 걱정하다니. 품 안에 있을 땐 몰랐던 딸의 마음 씀씀이에 나는 속아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럼 이번엔 볶음김치랑 깍두기, 파김치 좋아하니까 세 가지 해줄까?"

"나야 좋지."

금세 반색이다.

"해줄까?"하고 먼저 물어봐 주길 바라는 조심스러운 마음. 대놓고 요구하진 않지만 제안해 주면 기쁘게 받는 태도. 거기에 담긴 기대감과 미안함을 읽은 나는 "해줄까?"를 선뜻 내밀며 딸이 놓은 덫에 걸려준다.

여름 무도 아삭하게

 딸에게 줄 깍두기와 파김치 완성
▲딸에게 줄 깍두기와 파김치 완성 ⓒ 오순미

여름이지만 며칠은 냉장고에 두어도 괜찮을 김치 종류로 딸에게 줄 반찬 준비에 돌입한다. 계획에 없던 일이어서 바삐 움직여야 하지만 자식 입에 들어갈 음식이니 기꺼이 날렵해진다.

매끄러운 무와 파에 착 달라붙어 속까지 양념이 배게 하려면 찹쌀풀부터 쑤어 식혀야 하기에 끙차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한다. 멸치와 다시마 우린 육수에 찹쌀가루를 풀었다. 불에 올린 찹쌀 물이 되직하게 풀이 되어가는 걸 보며 딸의 타지 생활에 스민 맵고 아린 맛까지 잡아줄 거라 생각하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깍두기 담그는 김에 양념 좀 더해서 좋아하는 파김치까지 버무려주면 한동안 입맛을 챙길 것 같아 부랴부랴 시장으로 향했다. 달고 아삭한 겨울 무에 비해 여름 무는 맛이 덜해 고민 됐지만 여름 무의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해 줄 일명 설렁탕집 깍두기 비법을 떠올렸다. 사이다에 절이면 별도의 당분이 들어가지 않아도 겨울 무로 담근 깍두기 맛을 비슷하게 낼 수 있다. 사이다의 당분과 탄산이 무에 침투하면 쓴맛을 중화 시키고 아삭한 식감을 잡아주므로 장바구니에 사이다 한 병을 넣었다.

요리하는 것도 싫고 파김치는 내 취향도 아니건만, 딸이 먹고 싶다는 그 한마디에 시장으로 내달리는 나를 보며 사랑이란 싫은 일마저 흔쾌히 하게 만드는 마음이란 걸 알게 된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이 품을 떠난 뒤에도 따라 간다더니 어느새 내가 그 길을 걷고 있다.

딸의 다정한 고백에 답하며

 사이다에 절여 아삭한 맛이 나는 여름 무 깍두기와 파김치
▲사이다에 절여 아삭한 맛이 나는 여름 무 깍두기와 파김치 ⓒ 오순미

그나마 챙겨 줄 수 있는 처지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손목이 시려도 무를 썰고 손에 냄새가 배어도 파를 다듬는다. 해야 할 일에 지쳐 손 하나 까딱 하기 싫은 날에도 자식을 위한 일 앞에 서면 몸이 먼저 움직인다. 갑자기 끼어든 노동이지만 딸의 기쁨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하니 힘듦과 귀찮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내 손은 가뿐하게 깍두기를 버무린다.

딸의 독립 후 생활 리듬은 내 중심으로 옮겨왔지만, 깍두기 한 통, 파김치 한 단으로 돌봄이 여전한 걸 보면 부모 노릇은 은퇴 없는 직업이란 걸 실감한다. 돌아오는 빈 통이 잘 지낸다는 대답 같아서 움직일 수 있는 한 엄마로서 더 복무해야 될 듯싶다. 엄마의 자리는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넓어지는 거라던 어른들의 말씀을 떠올리며 김치통 가장자리에 묻은 지저분한 양념을 닦아냈다.

이번에 담근 깍두기와 파김치엔 나를 걱정해 돌려 말할 줄 아는 딸의 성장과 딸을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한 내 마음이 함께 담겼다. 여름 무 같은 시간을 지나는 딸이 시원하고 아삭한 엄마 김치를 먹으며 힘을 냈으면 좋겠다. 에둘러 표현해도 난 언제든 '엄마 반찬이 그립다'는 다정한 고백으로 알아들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독립한딸#깍두기#파김치#여름무#볶음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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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순미 (smfive5) 내방

읽고 쓰고 배우며 새로운 길을 찾는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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