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고 하면, 일부 동료들은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정신의학적 접근 없이 자살예방을 어떻게 할 건데?" "약물과 상담이 필요 없다는 얘기인가?" "자살예방이 안 되는 이유는 예산 부족과 관료주의 때문이 아닌가?" 등. 그러나 적어도 저자는 '치료적 접근이냐, 사회경제적 접근이냐'는 식의 이분법과 환원주의에 매몰되지 않으며, 오히려 정신건강 전문가들에게 손을 내미는 측면도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도 자살예방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의 노고를 폄하하려는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다시 쓰는 자살론: 자살국가와 사회정의>(김명희, 그린비, 2025) ⓒ 그린비
저자는 비판적 실재론에 근거하여, 층화된(stratified) 세계를 분석하며 이를 자살이라는 현상에도 적용한다.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적용해 볼 수 있다. 같은 경복궁이라도 150년 전에는 '절대권력의 공간'이었고, 오늘날에는 '유적지이자 관광명소'이다. 돌과 나무라는 물질적 구성은 같아도, 그것이 놓인 사회적 관계와 역사적 의미는 달라진다. 자살 역시 마찬가지다. 개개인의 우울, 충동성, 정신질환이라는 '구성 재료'만으로는 한 사회의 자살률 증가라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자살은 단지 정신의학적 증상의 결과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책에서는 자살을 개인의 병리나 선택으로 환원하는 통념을 비판하고, 한국 사회의 자살을 사회정의와 인권의 문제로 재해석한다. 저자는 에밀 뒤르켐의 사회학적 문제의식을 오늘의 한국사회에 접목해, 높은 자살률의 배후에 경제적 양극화, 신자유주의적 경쟁, 권위주의, 돌봄/노동/지역 불평등, 국가의 책임 회피가 있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자살예방은 위기 개인의 관리가 아니라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재구성하는 정치적, 공공적 실천이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이다. 그리고 다학제적인 연구와 실천을 요청하고 있다.
정신건강과 자살예방, 사회정의로 다시 쓰기
그러나 실천지침을 끌어내기에는 빈 고리들이 존재한다. 여전히 (비판적인) 거대담론은 존재하나, 대항담론은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그 구조 분석이 어떤 중간 수준의 제도, 조직, 현장, 주체를 통해 변화 전략으로 번역될 수 있을까? 국가, 신자유주의, 불평등, 권위주의라는 개념은 자살을 개인 병리로 환원하지 않게 해주는 강력한 분석틀이지만, 무엇을 조직하고 요구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는다. 예컨대 불안정 노동과 자살의 관계를 말한다면, 이는 산재 인정 확대, 직장 내 괴롭힘 대응, 해고·실업 안전망, 장시간 노동 규제, 노동자 정신건강 권리 보장 같은 구체적 의제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이미 벌어지고 있는 실천들에 '정신건강'과 '자살예방'이 연결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완결된 대항담론은 아니다. 이후 과제는 자살을 사회정의의 문제로 재정의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이론을 현장의 요구안과 조직화 전략, 그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구체적 정치로 번역하는 일이다. 물론 연구자와 활동가의 역할은 다를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실천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것은 사회운동의 몫이다.
한편, 이 책의 서술 방식은 '비판적 실재론'이라는 과학철학의 조류가 생소한 독자들에게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필요하다면, 앤드루 세이어의 <사회과학방법론: 실재론적 접근>(이기홍 옮김, 2019, 한울)의 책을 함께 읽기를 권한다.
강조하자면, 저자가 비판하는 것은 정신의학과 심리학 그 자체가 아니라, 의료화(medicalization)와 치료요법 문화(therapy culture), 생의학적 환원주의이다. 그리고 책의 한계는 곧 과제이기도 하다. 저자가 열어놓은 이론적 지반 위에서, 정신건강 운동이 필요한 개별 현장이 각자의 언어로 자살예방의 대항담론을 구체화해야 한다. 자살을 사회정의의 문제로 다시 쓰는 일은 이 책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을 정치로 옮기는 일은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6월호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정여진님은 정신건강의학전문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