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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6.17 09:20최종 업데이트 26.06.17 09:20

남편을 떠오르게 한 거센 '급류'를 헤엄친 사랑

[리뷰] 정대건 장편소설 <급류>를 읽고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아래 기사에는 서평 소설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대체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물건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나 사랑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미 조금 금이 가거나 깨진 관계를 다시 이어 붙이려 노력하는 이는 미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정녕 가볍고 매끄러운 사랑만이 정답일까. 상처 없는 사랑만을 좇다가 정작 삶의 가장 깊은 진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카카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 작가의 글에서 우연히 접한 정대건의 장편소설 <급류>(2022년 12월 출간)을 오디오북으로 만나며, 나는 이 시대에 멸종해 가는 '무겁고 단단한 사랑'을 마주했다. 저수지와 계곡이 유명한 조용한 지방 도시 '진평'에서 열일곱 살 도담과 해솔이 맞닥뜨린 갑작스러운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을 견디며 기어이 일어서는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이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명확했다.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지속하는 사랑의 위대함'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 잠수하기

 책표지
책표지 ⓒ 민음사

부모의 비극적인 사고와 그 뒤를 이은 마을 사람들의 잔인한 소문. 소용돌이 한가운데 선 도담과 해솔은 진평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그 도시에 붙잡혀 있었다. 피해자다운 삶만을 강요하는 사회적 시선 속에서 두 사람의 운명은 멈춘 듯했다. 아픔을 품고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삶은 저마다 다르다. 도담은 상처로 인해 자신의 삶을 탕진하듯 살아내지만, 해솔은 소방관이 되어 거센 화염과 물살 속으로 뛰어든다. 그것은 끝내 구하지 못했던 과거를 향한 해솔만의 거룩한 고백이자 온몸을 던진 구원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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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도담의 엄마 정미는 온 동네가 남편의 외도를 입에 올리는 지옥 같은 곳에 홀로 남는다. 소문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의지조차 잃어버린 채 그 자리에 고여버린 것이다. 소용돌이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바깥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있었다.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32쪽)

도담의 이 대사는 비단 소설 속 인물들 뿐만 아니라, 인생의 거센 급류를 만난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묵직한 조언이다. 우리는 삶의 시련이나 사랑의 갈등을 마주했을 때, 수면 위에서 허우적 대며 서둘러 도망치거나 쉽게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도망칠수록 소용돌이는 우리를 더 깊이 삼킨다. 차라리 숨을 참고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것,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그 절망의 끝을 정면으로 딛고 서야 비로소 거센 파도를 타는 삶의 수영법을 익히게 된다.

말없이 기다리던 한 사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한번 깨지고 어긋난 관계는 회복하기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한번 깨진 독에는 물을 채울 수 없다'는 오랜 선입견에 갇혀, 작은 균열에도 쉽게 이별을 선택하곤 한다. 그러나 소설은 우리의 인식을 뒤흔든다. 관계가 완전히 부서진 것이 아니라 그저 복잡하게 헝클어졌을 뿐이라고, 엉킨 실타래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풀면 된다고 해솔은 온몸으로 말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290쪽)

사랑은 과거의 추억이라는 박제에 기댈 때보다, 혹은 미지의 미래에 막연한 약속을 던질 때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온갖 풍파를 함께 견뎌내는 '현재진행형'일 때 가장 단단한 힘을 갖는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부서진 관계를 다시 풀어내려는 해솔의 사랑을 보며, 문득 내 곁의 남편을 돌아본다. 우리 역시 결혼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결코 평탄치 않았다. 때로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그에게 번질까 두려운 마음에 먼저 손을 놓으려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거센 급류 속 해솔처럼 언제나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려주었다. 그 고요하고 단단한 기다림 속에서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이 진심을 마주한 순간 그는 이미 내 삶의 가장 밑바닥에 와 있었다.

막상 결혼을 해보니 인생의 급류는 또 달라서 내가 그의 짐을 나눠 져야 하는 상황들이 많았지만 기꺼이 그리했다. 나를 향했던 그의 사랑이 나의 가장 밑바닥에 닿았듯, 나 또한 그의 가장 밑바닥에서 그의 손을 잡고 빠져나오고 있었다. 소설 속 해솔과 도담이 그러했듯, 우리 역시 서로의 손을 잡고 밑바닥을 딛고 일어나 거센 물살을 헤엄치는 법을 함께 배워온 셈이다. 이처럼 진짜 사랑은 균열이 없는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균열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함께 메워가는 일관된 태도에 있다.

남겨진 이들에게도 진실한 사랑이 깃들기를

도담과 해솔이 거친 급류를 헤엄쳐 서로에게 도달한 용기에는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책장을 덮으며 나의 마음은 자꾸만 주인공들의 주변인들에게로 향했다. 해솔의 곁에서 6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했던 선화, 그리고 도담이 헤매던 시절 곁을 지켜준 승주.

우리는 흔히 타인의 삶이나 문학을 바라볼 때, 주인공들의 극적인 서사에만 몰입한 나머지 주변에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쉽게 간과하곤 한다. 남겨진 이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들러리가 아니다. 그들이 보낸 시간 속에도 분명 진심과 사랑이 존재했을 것이다. 평탄치 않은 삶의 굽잇길에서 남겨진 선화와 승주에게도, 언젠가 그들의 진심을 온전히 알아주는 따뜻한 사랑이 찾아오기를 가만히 빌어본다. 그것이 삶의 다양한 무늬를 포용하는 성숙한 시선일 것이다.

평탄한 사랑은 흔치 않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이 더 고고하듯, 우리의 삶도, 사랑도 때로는 거센 역경 속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법이다. <급류>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지금 거센 물살을 피해 수면 위에서 허우적대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기꺼이 그 밑바닥을 딛고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급류 (특별판)

정대건 (지은이), 민음사(2025)


#급류#정대건소설#진실한사랑#아픔을딛고일어서는사랑#사랑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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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미 (ssaem1) 내방

브런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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