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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6.11 09:48최종 업데이트 26.06.11 09:48

상처를 직시하고 끌어안는 일, 사랑

[리뷰] 정대건 <급류>를 읽고

※ 아래 기사에는 서평 소설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소설 <급류>는 책표지가 강렬했다. 생과 사의 경계에 선 듯한 남녀가 틈 하나 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이끌리듯 책을 펼쳤고, 급류에 휘말리듯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당연히 '새드엔딩'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소설은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 통상적이지도, 시시하지도 않은 마지막 페이지는 묵직한 감동으로 남았다.

단란한 세 가족이던 도담의 삶은 진평으로 이사 온 해솔 때문에 균열이 생긴다. 도담의 아버지와 해솔의 어머니가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 사실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이 내린 선택은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이어지고, 그날의 사건은 도담과 해솔의 삶에 깊은 상처로 남는다.

 책표지
책표지 ⓒ 민음사

그들은 오랫동안 그 상처를 사슬처럼 끌고 살아간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사슬은 어쩌면 우리가 믿었던 것만큼 단단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가느다란 실처럼 끊어질 수 있는 것이었는데 스스로를 묶어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얽매여 있다고 믿는 과거의 기억들 역시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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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는 오래 머물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문 밖으로 샤워기 소리가 외로운 울음처럼 들렸다."

"외로웠지만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었다."

"슬픔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슬픔에도 중독될 수 있어."

특히 사랑을 '빠지는 것'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오래 남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에 빠져 있는 동안 바깥 기온은 앞자리 숫자가 바뀌어 29도가 되었다. 하지만 글을 읽는 내내 내 안의 온도는 오히려 올라갔다. 두 주인공의 엇갈린 만남과 이별은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온 몸이 따끔 거리고 숨이 막혔다. 창밖의 바람이 그런 갈증을 잠시나마 식혀 주려는 듯 시원하고 청량하게 불었다.

급류에 휩쓸려 각각 엄마와 아빠를 잃은 그 사건은 두 사람의 젊음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어디서든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그들을 어둠 속으로 끌어당겼다. 서로를 구명환처럼 붙잡고 있었지만 아물지 않은 상처는 오히려 더 덧날 뿐이었다. 불은 타고 나면 잿더미라도 남지만 물은 다르다. 물은 흔적마저 휩쓸어 간다. 남는 것은 함몰된 기억 뿐이다.

도담과 해솔은 같은 상처를 품고 십여 년을 돌아 다시 만난다. 절대로 이어질 수 없을 것 같던 두 조각은 마치 원래 하나였던 퍼즐처럼 다시 맞춰진다. 그러나 그들을 이어 준 것은 사랑만이 아니다. 시간이다. 시간은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기억이 무뎌지고 상처의 날이 닳아 예전만큼 아프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무엇이 두려웠는지, 무엇이 진짜 상처였는지, 어디서부터 실타래가 엉켜 있었는지.

상처는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억지로 끊어내기보다 천천히 풀어내야 한다.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모서리는 닳고 새살은 돋아났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고 끌어안는다.

이 소설은 희망으로 끝난다. 하지만 진짜 결말은 독자의 몫이다. 그들의 미래가 푸르고 창창하기만 할까. 어쩌면 또 다른 급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그들은 함께 물살을 건널 수 있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인스타에도 수정되어 게재될 수 있습니다.


급류 (특별판)

정대건 (지은이), 민음사(2025)


#책소개#독서감상#급류#사랑#정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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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둘진 (dujini32)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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