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순위를 남깁니다. 출연자의 이미지도 남깁니다. 그 이미지는 때로 한 사람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노출 시간이 짧은 탈락자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방송에서 다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습니다. 제작진과 심사위원의 의견도 기다립니다.

▲디즈니플러스 예능 <운명전쟁49>에 출연한 용도령(곽현준). ⓒ 정채빈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가 신내림 받은 지 갓 4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고 한다. 실제 녹화에 참여했을 때도 그는 무당이 된 지 7개월 차였다. 그래서였을까. 디즈니플러스 예능 <운명전쟁49>에 출연한 용도령(아래 곽현준씨)은 문제 풀이 때마다 특유의 진중한 표정과 몸짓을 보였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방울과 몸을 함께 흔들며 경연에 임하는 모습이 화면에 자주 포착됐다.
방송에서 소개된 대로 곽현준씨는 배우 출신 무당이다. 2010년 SBS 드라마 <나쁜남자>, 2014년 영화 <세상의 끝>, 2016년 KBS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 등에 출연한 그는 2025년 1월 신내림을 받은 후 무당의 길을 걷고 있다. 제작진의 출연 요청을 받은 건 같은 해 4월 무렵이었다. 5월 20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신당에서 만난 그는 "희한하게도 그 무렵 여러 방송사에서 예능 프로 섭외가 있었다"며 "그때까진 무당을 한다고 공개했던 적이 없는데 소속사 쪽으로 연락이 오곤 했다"고 운을 뗐다.
본래는 출연할 마음이 없었다고 했다. 다른 프로들을 거절한 뒤 <운명전쟁49> 측 연락이 왔을 무렵엔 "마음으론 출연을 원하지 않았는데 기도할 때마다 제 입으론 '예능을 하겠구나'라는 말을 하고 있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그는 녹화에 참여했다.
7개월 차 무당의 도전... "부끄럽지 않을 것이란 확신 있었다"

▲디즈니플러스 예능 <운명전쟁49>에 출연한 용도령(곽현준). ⓒ 정채빈
방송에서 그는 두어 차례 발언 기회를 얻었다. 무대에 오른 사람의 수술 부위를 짚어내는 대목에선 지기(대상자의 병세나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 듯한 현상)를 타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5명 중 진짜 무당을 고르는 문제에선 절반의 정답을 말했다. 결과는 1라운드 탈락. 이런 결과에 그는 오히려 "애초부터 상위권에 올라가겠다는 욕심이 없었기에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마치 배우 오디션을 보듯 테스트를 봤다. 제가 영검하다는 걸 나름 증명했던 것 같다. 솔직히는 출연을 피하고 싶었다. 제작진에게도 상위권에 제가 못 갈 것이라 말씀드렸는데 신령님께서 그럼에도 부끄러운 일은 없을 것이란 느낌을 주신 게 있었다. 그렇게 들어갔으니 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지. 방송을 보니 간절해 보이긴 하더라(웃음). 인간의 마음을 내려놓고 신이 주시는 걸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게 무당의 큰 숙제거든."
하지만 막상 녹화장에서는 꽤 힘들었다고 곽씨는 고백했다. "마음먹고 나갔지만, 제가 인간 곽현준인지, 배우인지, 용도령인지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며 그는 "스스로 무당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라 마음이 좀 슬프기도 했다"고 전했다.
"측은함이랄까. 제가 무당이 되기까지 굴복하는 과정이 힘들었는데 49명 중 하나로 그 자리에 선 게 영광이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는 감정들이 복잡미묘했다. 저는 녹화를 꽤 즐길 줄 알았다. 작가분들도 제가 처져 있는 걸 보고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좀 여유가 있었다면 다른 분들과도 더 소통하고, 인사하고 그랬을 텐데 제 마음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무당 맞히기에서 제가 틀렸잖나. 사실 가장 자신 있는 문제였다. 경력이 얼마 되진 않았지만, 저를 찾는 손님 중에 무당임을 숨기고 오셨던 분들을 가려내곤 했거든. 그 문제 정답이 1번 3번이었는데 제가 3번 5번이라 말했다. 헷갈리긴 했다. 무대에 있는 분들과 거리가 좀 멀긴 했지만, 5번분이 배우셨는데 신기가 강하시긴 하더라. 제가 자만했던 거지. 다른 출연자분들도 3번과 5번이 많이 헷갈렸다더라. 틀려서 좀 민망하고 아쉽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너무 확신하지 말라는 신의 말씀 같아서 개인 노트에 반성의 말을 적어놨다(웃음)."
방송 공개 후 오히려 그를 찾는 손님이 늘었다고 한다. 그는 "신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꽤 오고 계신다"며 "자신 있던 분야에서 뒤통수를 맞은 뒤, 반성의 계기가 됐고 좋은 깨달음을 얻은 셈"이라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개인 유튜브 채널이나 또 다른 방송 활동에 대해선 말을 아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전 그저 신이 하라 했으니 나간 것이고, 그걸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뿐이다.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제가 신을 의심한 게 티가 나더라. 그래도 탈락했다고 낙심하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내 잘못이었으니까. 그래서 출연하게 해 주신 데 감사한 마음이다. 방송 덕에 좋은 동료들도 만나게 됐는데 제가 모임에는 잘 나가질 못한다. 그래도 혼자 조용히 바쁘게 잘 보내고 있다(웃음)."
"<운명전쟁49> 출연은 선물과도 같아"

▲디즈니플러스 예능 <운명전쟁49>에 출연한 용도령(곽현준). ⓒ 정채빈
한쪽에선 그의 화제성을 이용하려는 듯한 유사 채널이 생기기도 했다. 같은 법명을 쓰는, 그와는 전혀 다른 무당이 <운명전쟁49>에 출연한 것처럼 소셜미디어와 무속인 중개플랫폼 등에 홍보하고 있는 것. "저도 손님에게 듣고 알았다"며 "지금은 인스타그램만 열어두고 있는데 하도 제 예약이 어렵다고 하셔서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그는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게 딱 두 번이다. 한 번은 지난해 3월 친누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준 동생의 부탁이었고, 다른 하난 어느 외국인 인플루언서가 자기 채널을 열면서 점 보는 걸 찍고 싶다 해서 응한 것이었다. 그 외엔 유연하게 대응하려고 한다. 몇몇 업체에서 유튜브 채널을 하자고도 하는데, 아직은 제가 뭘 설명할 게 없다. 방향성을 보며 차근차근 (홍보를) 고민하려 한다."
업을 바꾼 지 만 1년이 안 되는 동안 겪은 일들에 대해 그는 "감사한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문제를 맞히고 아니고를 떠나서 신령님에 대한 마음을 점검하는 계기였다. 한쪽에선 탈락한 것만 두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절 찾아주시는 분들은 좋게 보고 오시는 거잖나. 연기자일 때도 호평을 받거나 악플이 달릴 때가 있다. 그저 스스로가 최선을 다한다면 상처받을 건 없다고 본다. 그래서 <운명전쟁49>는 제겐 혼자 열어볼 수 있는 선물과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딱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무게였다. 이렇게 순리에 따라가려고 한다. 너무 고리타분하게 보이나?(웃음)"
방송 출연으로 동료 배우들과 소통도 활발해졌다고 한다. 뜸했던 이들에게도 연락이 오며 응원을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어떻게 보면 배우 일을 하다 무당이 됐다고 널리 알리는 게 싫었던 것도 있었다. 일단 3년은 조용히 수행한다는 마음이었으니까. 배우 출신 무당들도 여럿 계시기에 저도 애써 숨길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모시는 신령님 스타일이 그런 성향인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인터뷰나 마케팅에 잘 응하지 않는 것도 있다. 연예계에 있어봐서 타성에 젖어가는 느낌을 좀 안다. 그래서 방송을 병행하는 걸 더 경계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방송으로 절 알리게 됐고, 제 지인들도 제가 무당인 걸 알게 됐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돌아보는 기회였다. 그 이상의 어떤 기대는 정말 없었다. 제작진 인터뷰에서도 1등 하면 뭐 할지 물어보시던데 그때도 난 1등 못한다고 힘줘 강조했거든(웃음). 당당하게 살지 않았던 적은 없었지만, 무당이 된 지금이 예전보다 더 편하고 당당해졌다."

▲디즈니플러스 예능 <운명전쟁49>에 출연한 용도령(곽현준). ⓒ 정채빈
* '용도령' 곽현준씨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