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원한 큰손주에게 간식을 챙겨주다 식탁 위에 올려둔 그림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조미자 작가의 <걱정 상자>(2019년 6월 출간)였습니다.
"어떤 내용일까?"
평소에도 책 읽어 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인지라 관심을 가집니다.
"어어? 어떤 내용일까?"
할머니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는 녀석입니다.
"할머니, 같이 한번 볼까?"
"그럴까."
그림책 속 주인공은 걱정쟁이 도마뱀 '주주'와 주주의 걱정을 해결해 주는 친구 호랑이 '호'입니다. 책 속에서는 걱정을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나옵니다.
커다란 상자에 걱정을 모두 담아 새총으로 멀리 날려 작게 만들기, 예쁘게 색칠해서 걱정 상자를 꾸며보기, 그대로 두고 딴생각을 하거나 다른 곳을 보기, 새가 낚아채 가거나 바람이 불어 날아가 버리기를 기다리기...
책을 읽다 문득 궁금해져 손주에게 물었습니다.

▲책표지 ⓒ 봄개울
"둥둥이도 걱정이 있어?"
아이는 망설임 없이 답합니다.
"없어! 할머니는 걱정이 있어?"
"음... 있는 것 같아."
"어떤 걱정이 있어?"
손가락을 꼽아가며 늘어놓는 할머니의 걱정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으응, 할머니는 걱정이 많네."
책 속에서는 '어떤 걱정 상자는 말 한마디에도 없어질 수 있다'며 색깔별로 예쁜 위로의 말들을 소개해 줍니다. 빨간색은 "할 수 있어", 파란색은 "끝!", 노란색은 "괜찮아", 초록색은 "사랑해", 주황색은 "잘될 거야", 보라색은 "나도 그래".
내가 책 속의 말로 위로해 달라고 했더니, 큰손주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토닥하며 말합니다.
"어~어~, 잘될 거야."
환하게 웃으며 "고마워. 둥둥이가 위로해 줘서 걱정이 싹 사라졌어" 하자, 아이도 "걱정이 사라졌어, 할머니?" 하며 배시시 환하게 웃습니다. 아이는 어느새 누군가를 위로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나 봅니다.
"둥둥이는 걱정이 있을 때 어떤 말로 위로받고 싶어?"
"나는 빨간색!"
"으응, 둥둥이는 걱정이 있을 때 '할 수 있어!'라고 위로 받고 싶구나. 할 수 있어, 둥둥이!"
내가 주먹을 불끈 쥐고 "화이팅"을 외쳐주니 아이가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물론 책 속 내용처럼 마술사를 불러 마술을 부려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걱정이 있기 마련이겠지요.
그때 곁에 있던 반려견 '무우'가 자꾸 아이의 다리를 긁으며 아는 척을 해왔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무우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묻습니다.
"무우도 걱정이 있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무우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아이는 "걱정이 있으면 말해봐" 하고 다독입니다. 가만히 있는 무우를 대신해 제가 슬쩍 답을 건넸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무서워~"
그러자 아이가 무우의 눈을 맞추며 진지하게 위로하기 시작합니다.
"무우야, 바람이 불어서 걱정돼? 걱정하지 마. 우리 집에는 바람이 안 불어. 그러니까 무우는 노란색, 괜찮아."
아이만의 엉뚱하고 귀여운 논리에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 지나가던 사자 '부'가 같이 얘기하자며 걱정 상자 위로 펄쩍 뛰어오릅니다. 그 바람에 걱정 상자가 푹 찌그러지고 맙니다.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진 주주와 호를 뒤로 하고, 모두가 찌그러진 걱정 상자 위에 올라가 활짝 웃으며 책은 끝이 납니다.
그림책 속 주인공들처럼 할머니도, 둥둥이도, 무우도 환하게 웃는 저녁. 창밖으로 노을이 짙게 물들어 갑니다. 이 작은 아이가 앞으로 성장하면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넬 줄 알고, 또 자신이 위로가 필요할 때는 부끄러움 없이 기꺼이 손을 내밀 줄 아는 넉넉한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봅니다.
비단 내 손주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조금은 더 다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괴롭고 힘들 때 혼자 앓다가 끝내 세상을 저버리는 안타까운 일들이 더는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누구나 주저 없이 기댈 손을 내밀고, 힘든 이웃에게 먼저 따뜻한 온기를 건네는 사회라면 어떨까요.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처럼 서로의 온기로 세상의 모든 걱정 상자를 푹 찌그러뜨리고, 모두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어봅니다. 세 살 손주가 내 어깨를 토닥여 준 무지개색 작은 위로가, 어쩌면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마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