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증 뇌병변 장애를 안고도 평생 자신과 같은 처지의 무연고 장애인을 도와온 박영길씨가 지난 4일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56세. 사진은 광주지역 장애계가 마련한 고인의 빈소 모습. ⓒ 독자 제공
가족에게 외면받고 평생을 장애·외로움과 싸우면서도 자신과 같은 처지의 무연고 장애인을 돕다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50대의 마지막 길을 위해 광주광역시 장애인단체와 동료 활동가들이 힘을 모았다.
5일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따르면 중증 뇌병변 장애인 박영길 씨가 홀로 지내던 중 지난 4일 지병 악화로 갑자기 숨졌다. 향년 56세.
고인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인 1989년부터 25년간 국제재활원에서 지내다가 2014년 자립 생활을 시작했다.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에서 장애운동 활동가로 치열하게 현장을 누볐다.
하지만 고인은 연고자가 없다는 이유로 빈소조차 없이 쓸쓸히 떠날 처지에 놓였다.
이 소식을 들은 광주지역 장애인 지도자와 동료 활동가들이 가족과 상주를 자처하고 나섰다.
70여 명이 뜻을 모아 '故 박영길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고인을 '광주 장애인장(葬)'으로 모셨다.
천지장례식장의 협조를 얻어 501호에 빈소를 마련했으며, 고인이 외롭지 않게 떠날 수 있도록 따뜻한 추모의 공간과 추모문화제를 준비했다.
발인은 오는 6일 오전 7시, 장지는 광주 영락공원이다.
"무연고 장애인 상주, 미담이 아닌 '제도'가 필요하다"

▲중증 뇌병변 장애를 안고도 평생 자신과 같은 처지의 무연고 장애인을 돕다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박영길 씨의 생전 장애운동 활동 모습. 박씨는 홀로 지내던 중 지난 4일 지병 악화로 숨졌다. 향년 56세. ⓒ 독자 제공
광주지역 장애계가 무연고 장애인의 상주를 자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4년 1월, 15년 가까이 자립 생활을 이어가며 강사이자 멘토로 지역사회의 본보기가 됐던 뇌병변 장애인 故 정현영 씨에 이은 두 번째다.
당시에도 범장애계가 장례위원회를 꾸려 200명이 넘는 추모객과 함께 고인을 배웅했다.
박씨와 정씨 모두 지자체의 공영장례 대상이었으나, 현행 무연고 공영장례는 빈소조차 차리지 못한 채 진행되거나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끝나는 약식 처리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동료들이 직접 빈소를 마련할 수밖에 없는 사각지대가 반복되고 있다.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따르면 전국 무연고 사망자는 2012년 약 1000명에서 2023년 5400여 명으로 10여 년 만에 5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장례비(장제급여)는 1인당 80만원 안팎에 머물러 빈소를 갖춘 최소한의 장례조차 치르기 어렵다.
이에 대해 박영길 장례위원회는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뿐만 아니라 삶을 마감할 때도 존엄할 권리가 있다"며 "언제까지 안타까운 무연고 장애인의 죽음을 민간단체의 십시일반 미담과 헌신에만 의존할 것인가"라고 강하게 호소했다.
이어 "광주시와 각 구청, 공공기관이 책임지고 무연고 사망자의 실질적인 추모 공간과 기간을 보장하도록 공영장례 제도를 실효성 있게 전면 개편해야 한다"며 "사회적 약자의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에 대한 촘촘한 공공 안전망을 구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중증 뇌병변 장애를 안고도 평생 자신과 같은 처지의 무연고 장애인을 돕다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박영길 씨의 생전 장애운동 활동 모습. 박씨는 홀로 지내던 중 지난 4일 지병 악화로 숨졌다. 향년 56세. ⓒ 독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