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지난 22일 저녁, 일본에서 온 20살 여자 축구선수. 사코 마츠리씨와 멕시코 오악사카의 호스텔 루프탑에서 만났다. 그녀는 볼리비아 라파스, 코파카바나, 페루의 쿠스코, 마추 픽추, 이카, 우아카치나, 리마를 거쳐서 멕시코로 왔다. 일본에서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PEI)의 공립 커뮤니티 칼리지인 홀랜드 칼리지에서 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단지 몇 주를 남미 여행에 할애한 터였다. 여행 이야기보다 캐나다 유학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낮부터 모여들던 먹구름이 소나기로 쏟아지기 전까지 그녀의 삶에 대해 들었다.
방과 후 활동에서 발견한 축구
그녀가 축구를 시작한 건 여섯 살 때였다. 친구들이 방과 후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종목을 택해야 했다. 그렇게 공을 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자아이들과 함께 뛰었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여자 축구팀에서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생활은 거의 축구 그 자체였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아침 훈련을 하고, 수업을 마친 뒤 오후 4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다시 운동장으로 나갔다. 주말에는 경기가 기다렸다. 원정을 떠나는 날이 많았고, 하루에 세 시간 넘게 필드에서 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선수들은 모두 합숙 기숙사 생활을 했다. 25명이 한 건물에서 지냈는데, 벽은 있어도 방문은 없는 독특한 구조였다. 사생활은 거의 없었지만, 그녀는 그 시절을 '할머니가 될 때까지 연락하며 지낼 사람들을 만난 시간'으로 기억했다. 단체 생활이 되레 평생 갈 우정을 빚어낸 셈이다.

▲경기 중인 사코.가난해서 시작한 축구였지만 20살의 사코에게는 세상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 Sako
일본 여자축구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촘촘한 육성 체계를 갖추고 있다.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과 함께 뛰는 경우가 많다. 지역 클럽이나 소년단 형태의 팀이 잘 발달해 있어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혼성 환경에서 기본기를 익히는 일이 흔했다.
여자 선수 수가 충분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남자팀과 함께 훈련하기도 한다. 중학교부터는 점차 여자팀이 분리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을 '부카츠'(部活)라고 한다. 중고등학생 대부분이 참여하는 이 문화는 학생들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축으로, 스포츠·예술·문화 등 다양한 특별 활동을 아우른다.
특히 학교 운동부 부카츠의 결집력은 각별하다. 100년이 넘는 전통의 고교야구 전국 대회 고시엔은 부카츠 문화가 빚어낸 상징적인 무대다. 축구는 1990년대 이후, 특히 일본이 2002 월드컵을 한국과 공동 개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야구와 축구 외에도 농구·배구·테니스·검도·유도·가라테·수영 등 약 50개 종목이 운영된다고 한다. 사코는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축구를 택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셈이다.
캐나다에서 찾은 기회
아이치현은 나고야를 현청 소재지로 두는 일본 여자축구의 강세 지역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녀였지만 대학에서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본의 대학 입시는 만만치 않다. '대학입학공통테스트'와 대학별 2차 시험으로 이어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다른 학생들이 고등학교 1학년부터 수험을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축구에만 집중해왔다.
그 갈림길에서 한 유학 에이전트가 일본 선수를 찾는 캐나다 대학들을 소개해 주었다. 경기 영상을 보냈고, 몇몇 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학비의 절반을 장학금으로 지원하는 PEI 홀랜드 칼리지로 향하게 됐다. 캐나다 생활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먼저 6개월간 '학업 목적 영어 과정(EAP)'을 이수한 뒤 전공 수업에 들어갔다. 그녀가 택한 전공은 사진이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다시 훈련했다. 고등학교 때와 닮은 하루였지만, 그녀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룸메이트는 그 섬 출신으로 스키를 즐겼다. 겨울이면 함께 스노보드를 타러 나갔다. 어느 날 그가 활강하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온몸에 희열이 감쌌다. 전공으로 사진을 택한 것이 참 다행이었다. 스노보드를 타는 것 외에도 서로의 집을 방문했다.
원정 경기 때마다 새로운 도시를 만났다. 노바스코샤의 핼리팩스와 트루로, 뉴브런즈윅의 프레더릭턴. 많은 유학생들이 토론토나 밴쿠버 같은 대도시를 원했지만, 그녀는 조용한 PEI가 좋았다.
빛나는 20대를 위한 계획

▲사진을 전공한 사코.그녀는 대화가 끝난 직후 호스텔의 옥상에서 번개를 찍었다. 그녀는 약한 자가 강한 자를 맞서는 방법으로 지혜를 꼽았다. ⓒ Sako
홀랜드 칼리지는 60여 개 전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1~2년제 과정이다. 그녀는 예술·미디어학부의 1년제 사진·영상 과정을 마쳤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그녀의 손에는 졸업장과 이틀 후 멕시코시티를 떠나는 일본행 항공권이 들려 있었다.
"대학에서는 축구 외의 길을 찾으려 했는데, 결국 캐나다에서도 축구를 했네요. 선수 생활을 계속할 건가요?"
그녀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선수 생활은 이제 조금 지쳤지만 그렇다고 축구 자체를 떠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의 침묵 같기도 했다. 그 침묵은 원하는 대로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온몸으로 수용하는 중임을 전하는 듯했다.
"아마 코치가 될 것 같아요."
일본에서 항공료와 생활비를 마련한 뒤 다시 캐나다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 목적지는 밴쿠버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방과 후 축구 프로그램에서 코치로 일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녀의 계획을 응원하는 의미로 말했다.
"겨울이 되면 휘슬러로 가겠네요?"
이번에는 즉시 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이미 여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겨울에는 눈 위를 달릴 계획이었던 모양이다.
"네. 스노보드 타려고요."
그녀는 남자팀과 함께 하는 연습이나 경기도 많이 경험했다.
"피지컬은 절대 못 이겨요. 체력 대신 머리를 사용할 수 있죠. 좀 더 영리하게 움직이고, 기술과 판단으로 경기를 풀어야 해요. 빠르게 패스하고, 공간을 이용하고, 흐름으로 경기를 하면 됩니다. 그것이 체력을 이기는 방법이죠."
그녀는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강한 상대와 맞설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을 축구를 통해 이미 체득한 듯했다. 여전히 수중에 돈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필드에서 강한 상대를 어떻게 제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스킬을 이미 익힌 터라 그 소리는 경쾌한 푸념처럼 들렸다. 빗방울이 굵어져서 더는 해먹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해먹에서 내려온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영주하고 싶은 나라는 어디인지 물었다.
"아마 결국은 일본에서 살 것 같아요. 그런데 그전에 일본과 캐나다보다 더 좋은 곳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요."
번개가 거세게 쳤다.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꺼냈다. 그녀는 사진을 전공하면서 PEI의 광활한 풍경 속에서 지냈지만 자연 풍광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대신 번개 사진 같은 극적인 장면을 좋아한다고 했다. 긴 노출로 밤하늘의 번개를 기다렸다. 두 차례의 번개가 8초 노출의 그녀 카메라에 잡혔다.
일본의 명문대 진학 대신 선택한 캐나다 동쪽 끝의 조용한 섬에서 1년 6개월 동안 익힌 삶의 기예가, 카메라에 번개를 가두듯 앞으로 그녀의 길 위에서 어떤 꽃을 피우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