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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겉표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겉표지 ⓒ 양철북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습니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장편 소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였습니다.

교단에 처음 섰던 초임 시절, 이 책을 읽고 말할 수 없는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구체적인 내용은 통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꼭 다시 읽어야지 하며 마음 한구석에 미뤄두었던 숙제를, 마침내 오늘에서야 끝내기로 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일정을 마치고 근처 구수산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예전에 살던 동네의 도서관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오전 9시가 되기 전인데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개관을 기다리고 있더군요. 오랜만에 보는 도서관 '오픈런' 풍경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저도 슬그머니 그 뒤에 줄을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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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정각,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2층 문학실로 향했습니다. 대출 신청을 하고 책을 기다리는 동안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았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로 제법 자리가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은퇴 후 도서관에서 온종일 책을 읽는 것은 저의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손주들을 돌보느라 그 리스트를 내년으로 잠시 미뤄둔 상태라, 서고를 둘러보는 내내 부러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잠시 후 직원이 찾아다 준 낡은 책을 받아 들고 창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창밖으로 싱그럽게 피어나는 신록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첫 장을 펼쳤습니다.

"데쓰조의 파리라고?"... 내 초임 시절과 닮아있던 풍경

그런데 책을 읽어내려갈수록 고개가 가우뚱해졌습니다. 이야기는 데쓰조의 '파리 이야기'에서 시작되는데, 제 기억에는 전혀 생소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여기 나오는 다정하고 정의로운 선생님처럼 교단에 서야겠다' 다짐하며 가슴을 떨었던 것 같은데, "데쓰조의 파리라고?"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습니다.

소설은 쓰레기 처리장에서 사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 속에 숨겨진 빛나는 보석을 찾아가는 고다니 선생님의 이야기였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제가 처음 교단에 섰던 1988년도의 우리네 학교 풍경도 소설의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후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당시 나의 첫 학교에도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형편이 괜찮은 가정은 일부였고, 알코올 중독으로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 집 나간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보살피며 학교에 오던 극소심한 아이, 부부 싸움을 할 때마다 칼부림이 나는 집에서 살며 잔뜩 수줍어하던 아이들이 교실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며 제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생일 축하해주기'였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너희 모두는 축복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라는 것, 즉 '자기 존중감'을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학급을 맡으면 제일 먼저 아이들의 생일부터 확인해 교실 뒤편에 붙여두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토요일 방과 후에 우리 반만의 '학급 생일 잔치'를 열었습니다.

반 아이들 모두가 주인공에게 축하 엽서를 썼고, 저는 월간지 <좋은 생각>을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초코파이를 쌓아 올려 케이크를 만들고 불을 켰습니다. 과자와 음료수를 나누어 먹으며 생일 노래를 부르고, 주인공들의 소감도 한마디씩 들었습니다. 모둠별로 준비한 축하 공연을 보며 재미있는 게임을 하다 보면 어느새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곤 했습니다. 소설 속 아이들의 따뜻한 변화를 보며, 그때 그 시절 우리 반 교실의 풍경이 겹쳐 보여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수업이 곧 생활교육이 되는 교실을 꿈꾸며

소설 속 고다니 선생님은 리듬치기 연습을 하던 중 데쓰조의 머리에서 심한 냄새가 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방과 후에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데쓰조의 집으로 찾아가 아이의 머리를 정성껏 감겨줍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불과 2년 전, 퇴직 직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몇몇 중도입국 학생들에게서 냄새가 나 수업을 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있었습니다. 동료 선생님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끝에, 아침 등교맞이 때 세수를 하지 못하고 온 아이들이 있으면 학생부장 선생님이 운동부 샤워실로 조용히 데려가 씻겨주며 자연스럽게 위생 교육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문제를 해결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소설 속 고다니 선생님 반 아이들이 아침 일기 쓰기를 위해 다른 반보다 40분 일찍 등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의 담임 시절 역시 그런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매일 50여 권이 넘는 아이들의 개인 일기를 하나하나 읽고 정성스레 댓글을 달아주었습니다. 우리 교실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밤새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아이들 일기에 달아주었던 수많은 댓글이 지금 제가 블로그나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쓰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초임이었지만 아이들에게 한없이 다정했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던 고다니 선생님. 그리고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식물인간 같았던 데쓰조가 '파리 연구'를 통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과정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훌륭한 멘토이자 경륜 있는 중견 교사인 아다치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아다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며 했던 말은 지금의 저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글 속에는 좋은 녀석과 나쁜 녀석이 같이 살고 있다. 거기에서 나쁜 녀석을 찾아 쫓아내 버리면 당장 좋은 글이 된다... 하지만 사람은 좀처럼 그렇지가 못해. 좋은 녀석인가 싶으면 나쁜 녀석이기도 하고, 좋은 녀석인데도 나쁜 녀석처럼 보이기도 하고..."

수업이 곧 생활교육이 되는 경이로운 현장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실은 여전히 지식을 전달하느라 바쁘고,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압박 앞에 많은 소중한 가치들이 무력해지곤 합니다. 이 소설 속 수업들을 보며, 과거의 저 역시 어떻게 하면 이런 멋진 수업을 할 수 있을까 가슴 설레며 수업을 준비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고다니 선생님의 '무엇'이라는 주제의 글쓰기 연구 수업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하얀 보자기에 싸인 커다란 상자를 들고 와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아이들이 순간순간 느끼는 긴장과 설렘을 글로 표현하게 만드는 수업. 그 수업에서 마침내 글씨를 쓸 줄 모르던 데쓰조가 연필을 쥐고 생애 첫 글을 씁니다.

"나는가마니보앗따. 그리고나서상자속까지 가마니보앗따. 빨간놈나와따. 나는코가찡햇따. 사이다마신거갓따. 나는가슴이찡햇따. 나는빨간놈조아고다니선생님조아."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제 마음에 엄청난 전율이 일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저는 그저 이 책이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 준 책'으로만 뭉뚱그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구체적이고 훌륭한 수업 방법들을 조금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면, 후배 교사들에게 좀 더 좋은 멘토가 되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내 인생의 스승, 그리고 책장 너머에 여전히 존재하는 아름다움

소설 속에서 고다니 선생님이 초임 시절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할 때, 선배 교사에게 수업을 보여달라고 청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저를 눈물겹던 교직 초년생 시절의 한 페이지로 데려갔습니다.

막 발령을 받았을 때, 저는 도대체 중학교 2학년 수학을 어디까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교육과정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절이라 자꾸 교과서 이상의 것을 가르치며 헤맸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동학년을 하시는 대선배 선생님께 "선생님, 수업하시는 것 좀 봐도 될까요?" 하고 용기를 내어 여쭈었습니다. 딱 소설 속 고다니 선생님처럼 말입니다.

그때 선배님이셨던 이 선생님은 흔쾌히 교실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교직 경력이 쌓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수업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고 위대한 허락이었는지를 말입니다.

그 고마운 기억을 품고 살았기에, 저 역시 후배 교사들이 제 수업을 보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교실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그 선생님의 교실로 들어가 함께 고민했습니다.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수업이 살아나면 생활지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준 분, 그분이 바로 제 마음속 평생의 스승이었습니다. 스승의 날이 되면 늘 그분이 생각납니다.

"고맙습니다. 이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제가 부족하나마 수업 전문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교육과정과 수업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기꺼이 나누어 줄 수 있었던 것은, 소설 속 고다니 선생님의 멘토였던 아다치 선생님, 그리고 제 삶의 아다치 선생님이었던 이 선생님 덕분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여전히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가 진행 중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열정 하나만 가득했던 초임 시절을 떠올리며, 교단을 떠난 은퇴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으니 참으로 묘하고 이상한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요즘 교육 현장은 악성 학부모 민원과 교권 추락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소설 속 고다니 선생님이 겪는 갈등과 학부모들의 날 선 반응 역시 요즘의 세태와 너무나 닮아 있어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덮으며 저는 희망을 봅니다. 최근 교단을 지키고 있는 현직 교사들, 그리고 이미 교단을 떠난 퇴직 동료들을 두루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확신했습니다. 비록 현실은 가혹하고 지칠지라도, 여전히 우리 학교 곳곳에는 아이들의 사연을 보듬고 그들의 마음에 숨겨진 보석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생님들이 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교육 현장에는 여전히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가 현재진행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고군분투하고 계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담아 스승의 날 축하 인사를 건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하이타니겐지로소설#나는선생님이좋아요#도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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