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고난과 절제를 자초하는 여행은 자신의 내적 성장을 위해 선택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10년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한 허들을 스스로 만든 것은 여행으로부터 생기는 어려움이나 불편 자체를 수행의 방편으로 삼고자 함이다. 또한 해결점을 찾는 고민을 통해 노화를 피동적으로 수용하기보다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그 약속을 깨지 않기 위해 감내해야 할 것이 적지 않았다.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지난달 첫 손녀의 출생에도 함께하지 못했다. 건강 검진과 의료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응, 신분증 및 카드 재발급 등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뿐 아니라 시제와 기제 등 집안의 대소사에 대한 의무도 대신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리와 같은 이유로 집을 떠나온 사람을 만나면 동료를 만난 듯 솔깃해진다. 지난 10일에 만난,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온 24살의 키어런 외사프(Ciarán Heusaff)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멕시코시티에서 오악사카까지 히치하이킹으로 왔다. 또한 과테말라·온두라스 등 중미는 물론, 콜롬비아·페루를 거쳐 에콰도르까지 히치하이킹을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18세에 죽음의 고통에 직면하고 깨달음에 대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가 통념상 위험하다고 여기는 루트의 이동 수단을 히치하이킹으로 삼은 것은 순례적 삶의 연장선이다. 그는 에콰도르에 도착해 농장과 영적 센터를 세우는 게 꿈이었다. 그가 다음 구간의 순례길에 오르기 전, 호스텔에서 마주 앉았다. 아래는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수행법이 된 여행

▲죽음의 고통이 없는 깨달음을 향해.그는 매년 여름 어딘가로 향했다. 불교와의 인연은 계속되었지만, 수도원의 담장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을 걷는 방식이었다. ⓒ 이안수
- 당신의 루트는 독립 여행자들이 부딪치는 혼란, 위험, 예측 불가능성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구태여 이 방법을 택한 이유는?
"바로 그것에 도전하고 싶었다. 자기 도전이자 수행의 방법이다. 더불어 현지인과의 소통과 스페인어 연습에도 유용할 것이라고 여겼다."
- 멕시코시티에서 오악사카까지는 버스로도 7, 8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히치하이킹은 어땠나?
"도시 밖 고속도로까지 한 시간을 걸어서 이동해야 했고 그 구역이 산업 지대로 삭막했다. 더운 날씨에 아무도 안 태워줘서 애를 태웠다. 두 번의 히치하이킹을 했고 일부 구간은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러므로 일부만 성공한 셈이다."
- 이번 중미 종단 여행 전에 다른 나라를 여행한 적 있나?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2개월을 일한 돈으로 튀르키예를 다녀왔다. 그 후 좀 더 긴 여행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카페와 유기농 가게에서 일했다. 그 후 인도 1개월, 네팔 2개월을 여행했다. 인도에서는 델리, 다람살라, 바라나시, 그리고 시킴을 방문했다. 네팔에서는 카트만두, 포카라, 히말라야를 2주간 트레킹했다."
- 여행은 어땠나?
"인도가 그런 곳인 줄은 몰랐다. 어떤 사람은 천국을 보고, 어떤 사람은 지옥을 본다고 하는데 나는 지옥을 봤다. 반 쯤이나 비어 있는 컵을 보는 것처럼 비관적이었다. 사람들이 꽤 자주 사기를 치려고 했고 돈을 빼앗으려 했다. 시신을 화장하는 갠지스 강 강변에서 두 번 목욕을 했다. 교회 경험과 비슷해서 이상하지는 않았다. 항상 좋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네팔은 인도와 연결되어 있지만 많이 달랐다. 비슷하지만 더 평화롭고 불교 문화가 사람들을 배려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 당신은 왜 여행을 수행법으로 택했나?
"제임스 조이스를 동경했다. 그는 더블린에서 태어났지만 트리에스테, 로마, 취리히, 파리를 유랑하며 살았다. 나도 항상 아일랜드를 떠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4년 정도는 돌아가지 않으려 고 한다. 그 후부터는 2년에 한 번 정도만 방문하고 싶다."
- 종교가 있나?
"종교라기보다 삶의 한 전환점에서 석가모니를 알게 되었다."
- 언제 어떤 계기가 있었나?
"18세 고등학교 졸업 직후이다. 친구들이 술과 파티를 즐기고 있을 때 나는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니 죽을 만큼 우울했고 죽음에 관한 고통스러운 생각들을 끝낼 수 있는 깨달음을 원했다. 그때 더블린에서 불교 신자들을 만났다. 그들과 교류하면서 나는 강한 소명을 느꼈고 그것이 참 좋았다.
그 후 아주 긴 사연이 있지만, 결과만 말하면 젊은 싯다르타 왕자가 네 성문(四門) 밖으로 나가 노인, 병자, 망자와 수행자를 만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나도 불교 승려가 되어 생로병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인도로 가서 20년간 수행자 생활을 계획했고 그 후로도 돌아오지 않을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막았다. 그래서 인도 대신 아일랜드 북서부 도네갈(Donegal)의 수행 센터로 갔다."
- 결국 승려가 되는 길로 가는 대신 대학생이 되었다. 전공이 무엇이었나?
"'그리스·로마 문명 연구'였다. 인도와 네팔 여행에서 돌아온 후 영어 교사 과정을 공부했지만 자격증은 취득하지 않고 더블린을 떠났다. 그래서 현재 나는 '자격 없는 영어 교사'인 셈이다.
- 고등학교 졸업 직후와 마찬가지로 대학 졸업 후에도 불과 1년 만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다. 승려가 되고 싶은 사람이 서구 인문학의 뿌리인 고전학을 전공한 이유는?
"직접적 이유는 없었다. 단지 어머니가 대학을 가라고 했고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냥 눈을 감고 10개의 선택지를 무작위로 지원했는데 합격한 곳이 다섯 번째 지원 학과였다."
- 그 우연한 선택의 결과는 어땠나?
"역사와 문화를 포괄하는 공부였기 때문에 좋았다. 나는 교수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지식에 대한 탐구를 좋아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제임스 조이스와 에즈라 파운드를 더 깊이 만날 수 있었다. 그 표현 속에서 '아, 저건 로마 사람이구나, 혹은 저건 로마 역사네'라는 출처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또한 결과적으로 나는 철학을 공부한 셈인데 그것이 내 사유를 확장해 주었다."
- 궁극적으로는 학문을 직업이 아닌 이해의 도구로 보는 공부를 한 셈이다. 그것이 현재 당신이 궁극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결국 닿아있는 것 같다. 이번 여정의 끝은 어디인가?
"그렇다. 결국 어머니의 강요가 '내 미래 사유의 참조'가 되었다. 6개월 뒤쯤 에콰도르에 도달하지 않을까 싶다. 에콰도르에 농장과 영적 센터를 세워 수행을 이어갈 생각이다."
깨달음을 향한 여정

▲그는 길이 곧 사원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히치하이킹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만나고 싶었다. 길 위에서 그는 오늘도 구도 중이다. ⓒ 이안수
- 왜 에콰도르인가?
"나는 18살에 죽음의 문제에 직면한 이후부터는 매년 여름 순례 여행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일랜드 중심의 순례 여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륙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남미이다. 에콰도르를 최종 목적지로 삼았다. 할아버지께서 에콰도르에서 사셨고 아버지는 에콰도르에서 태어나셨다. 나는 에콰도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스페인어도 아직 서툴지만 조금씩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곳에서 시도해 보고 싶었다. 내 영혼이 확장되는 여정이 될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속세를 떠나 나 자신의 내적, 외적 사원을 완성하려고 한다."
- 적도에 사원을 세우는 일은 세계의 균형점에 수행 공간을 세운다는 의미도 있을 것 같다. 세계의 중심에서 내적 깨달음을 수행한다는 것은 어떤 이에게는 좀 특별할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내 생활 방식이 달라지면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겼고 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그 시점이 내 삶의 한 챕터 끝이었다. 나는 여전히 '깨달음'이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 지금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 가다 보니 그곳이 적도이다."
이른 아침에 시작된 대화는 서둘러 끝내야 했다. 그가 길에 오를 때였기 때문이다. 방에서 배낭을 챙겨 나왔다. 배낭 하나에 손가방 하나 정도의 작은 짐이었다. 농담을 건넸다.
"스님들이 방랑 수행을 할 때는 바랑이라는 에코백 같은 가방 하나만을 소지한다."
"(웃음) 이것 외에 가방이 두 개 더 있다. 나는 여전히 책이 필요하다. 사촌들을 만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먼저 갔는데 두 개의 책가방은 그곳에 두고 왔다. 다시 책을 가지러 가야 한다. 나는 그곳의 스즈키 로시가 창설한 샌프란시스코 선 센터(San Francisco Zen Center)라는 불교 수행 공간도 좋아한다. 파나마에서 콜롬비아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엔 갭(Darién Gap)를 넘어야 하는데 그곳에서는 비행기를 타려고 한다. 그때 다시 두 개 가방을 가져오려고 한다. 지금 히치하이킹에서는 그 책가방까지 가지고 이동할 수는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