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범 정책실장이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날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면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우창 국가AI정책비서관, 김 정책실장, 박지연 수어통역사. 2026.4.27 ⓒ 연합뉴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청소년들의 문해력 저하를 걱정하는 이들을 자주 접한다. '심심한 사과'를 '지루한 사과'로 오해하거나, '금일'을 '금요일'로 알아듣는다는 일화들은 기성세대의 개탄 섞인 안줏거리가 되곤 한다. 글자만 읽을 줄 알 뿐 문장의 맥락과 행간을 파악하지 못한다며 실질적 문맹과 가깝다는 우려도 적잖다.
하지만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글 한편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 과연 문해력 저하가 청소년들만의 문제일까 생각하게 된다. 청소년들을 나무라기에 앞서 여론을 주도하는 정치권부터 문해력 교정이 시급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다.
대체 김용범이 그 글 어디서 기업 이윤 강탈하겠다고 주장했나
김용범 정책실장이 11일 오후 늦게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어제 하루 온종일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은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비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정부가 강제로 뺏어서 나눠주겠다는 것"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산업 육성보다 분배 정치가 먼저라는 것" -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황금알 낳는 거위를 치킨 튀겨먹는 이야기"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이들에게 묻고 싶다. 김 실장의 글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기'나 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실장이 쓴 글의 핵심은 기업의 이윤을 탈취해 국민에게 배당하자는 주장이 전혀 아니었다. 글에서 그가 언급한 재원은 '초과이윤'이 아니라 '초과세수'다. 반도체 호황 등으로 인해 국가 세입이 예상치를 상회하여 발생했을 때, 이 예상치 못한 국가의 몫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제도화하고 국민의 삶을 위해 환류시킬 것인지 논의해보자는 취지였다.
물론 김 실장이 글의 초고에서 초과이윤과 초과세수라는 용어를 엄밀히 구분하지 않고 다소 혼용한 지점이나 '배당금'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논지를 따라가면 그의 의도는 명확하다.
김 실장은 "초과세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국민배당금은 허황된 이야기"라고 못 박으며 초과세수가 생기는 경우에 한해 이를 청년 창업 자산이나 농어촌기본소득 등 다양한 분야 중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백가쟁명식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교화해야 할 설계의 영역"이라고 했다. 기업의 이익을 뺏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귀속된 세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지극히 정책적인 화두를 던진 셈이다. 이를 두고 '기업 이윤 강탈'이라며 몰아세우는 것은 텍스트에 대한 오독을 넘어선 악의적인 왜곡에 가깝다.
김용범이 던진 담론의 핵심은 AI 시대에 따른 경제구조의 대전환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국민배당금' 논란이 정작 김 실장이 던진 글의 진짜 몸통을 완전히 가려버렸다는 점이다. 김 실장 글의 핵심은 사실 배당금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정책적 장치에 불과하다. 그가 정작 강조하고자 했던 바는 AI(인공지능) 시대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한국 경제와 국가 구조가 완전히 뒤바뀌어야 하는 기점에 서 있다는 주장이었다.
김 실장은 기존의 '순환형 수출경제' 구조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지적했다. 그저 상품을 만들어 해외에 내다 파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기술독점경제' 구조로의 체질 개선을 제안한다. AI와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산업 생태계를 재편하자는 것이 글의 포인트다.
여기서 국민배당금이라는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기술독점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의 편중과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판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다. 즉, 배당금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AI 시대라는 거대한 구조적 전환을 약자의 희생 없이 완수하기 위한 보완 장치이자 사회적 합의의 수단으로 언급된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백년지대계를 다룬 김 실장의 담론은 젖혀둔 채 배당금이라는 단어에만 꽂혀 소모적인 정쟁을 일삼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의 늪에 빠져 국가의 미래가 걸린 구조 개혁의 목소리를 묻어버리고 있다.
정치인들에게 이런 논의 바라는 게 과한 기대인가

▲이런 소란 속에서 그나마 희망적인 지점을 발견했다면 권영국 정의당 대표의 논평이었다. 권 대표는 김 실장이 제기한 AI 시대의 전환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분배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하면서 "기술 발전의 이익을 사회가 어떻게 통제하고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 정의당 제공
이런 소란 속에서 그나마 희망적인 지점을 발견했다면 권영국 정의당 대표의 논평이었다. 권 대표는 김 실장이 제기한 AI 시대의 전환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분배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하면서 "기술 발전의 이익을 사회가 어떻게 통제하고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권 대표는 "김 실장은 활용처로 청년 창업, 농어촌 기본소득, 노령연금 등을 나열했지만, 가장 시급한 것이 빠져 있다"며 AI 기술 전환으로 기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만큼 시민들의 노동권을 보호하고 장기적 일자리 전환을 위한 디딤돌로 초과세수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권 대표는 김 실장의 글 자체에 근거한 제안과 비판을 내놓았다. 상대의 글을 먼저 정확히 읽고, 그 논리 구조 안에서 반박을 펼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공론장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품격이다. 이런 논의를 정치인들로부터 바라는 게 과한 기대는 아닐 테다.
결국 이번 논란은 우리 사회의 정치권 리더라고 불리는 이들이 심각한 문해력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문해력은 상대방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와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김용범 실장의 글을 지적하는 건 야권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나 글에 존재하지도 않는 이윤 강탈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는 것은 비판에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AI 시대라는 거대한 전환의 문턱에서 우리가 정말로 경계해야 할 것은 기술의 뒤처짐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이 지독한 소통 불능의 문해력, 그리고 그러한 문해력을 야기하는 진영 논리와 프레임 정치다. 제아무리 우리가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들 글 하나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한 무슨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