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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트 서울 참여했던 처음의 의도와 달랐지만 묵직한 경고를 받은 워킹투어였다
리모트 서울참여했던 처음의 의도와 달랐지만 묵직한 경고를 받은 워킹투어였다 ⓒ 김희

"그 앞에 잠시 서봐. 그리고 묘비 뒤로 가. 떠난 날이 적혀 있을 거야. 네가 지금 느끼는 이 햇살과 바람을 이 사람도 똑같이 느꼈을 거야."

국립현충원 묘비 사이로 헤드폰을 낀 30여 명의 사람들이 곳곳에 서있다. 그들이 낀 헤드폰으로 누군가 말을 건넸다. 자신을 '지연이'라고 소개했다. '지연이'는 AI다. 지난 1일, 독일 예술단체 리미니 프로토콜이 연출한 '리모트 서울' 오디오 워킹 투어에 참여했다. 참여자들이 헤드폰을 착용하고 인공지능 '지연이'의 안내에 따라 도시를 탐험하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투어의 첫 출발 장소가 국립현충원이었다.

완전히 낯선 이 공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여러 사람이 헤드폰을 끼고 자유롭게 도심을 걷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이 실린 공연 개막 기사 때문이었다. 도심 한복판을 가로질러 헤드폰을 끼고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시작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AI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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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도심을 누비는 낭만적인 산책을 생각했던 나에게, 지연이는 갑자기 묘비 뒤로 가 묘비에 적힌 사람의 지난 삶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 공간에는 나와 같은 헤드폰을 쓴 낯선 30여 명의 사람들, 구름 한 점 없이 높은 하늘, 따뜻한 5월의 햇살, 그리고 헤드폰 너머 지연의 목소리만 있었다. 헤드폰을 처음 받았을 때 예의를 갖춰 인사 하던 지연이는 금세 '이제부터 편하게 말을 놓을게' 하더니, 그 뒤로는 나에게 지시와 명령을 시작했다.

"이제 죽은 자들을 뒤로 하고 산 자들을 향해 가."

국립현충원 주차 게이트를 나서며 지연이가 한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방금까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숭고한 성역에서의 엄숙함은 사라졌다. 대신 눈앞에 펼쳐진 자동차 대열을 보고, 순간 나는 알게 됐다.

'내가 지금 지연이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구나.'

나는 지시하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지연이라는 가이드 지시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넜고, 계단을 오르고, 앉고, 서고, 지하철을 타고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고, 에스컬레이터 위에 서서 발레 춤 동작을 따라 하면서 적지 않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다정한 친구가 돼줄 것 같은 안내자였다가, 순식간에 차가운 명령조로 "뒤를 돌아보지 마!"라거나, "안돼, 기다려. 내가 내릴 곳을 알려줄게" 등의 말을 했다.

헤드폰 안에서 들리는 지연이가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목소리는 거부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누려야 할 선택을 AI가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혀 알지 못하는 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헤드폰으로 지연이의 목소리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선택도 그들의 선택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세상 안에서 안전했다.

지연이가 우리를 집단으로 묶어 친절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통제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의 의지는 출발할 때부터 없었다. 지연이가 짜놓은 코드대로 시간대에 맞게 움직이는 걸음 속에서 나는 알게 됐다.

'내가 지금 인공지능에 통제 당했구나.'

우리가 살고있는 도심 강남 건물옥상에서 내려다본 우리가 살고있는 도심
우리가 살고있는 도심강남 건물옥상에서 내려다본 우리가 살고있는 도심 ⓒ 김희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믿고 있었던 사고의 세계를 인공지능이 차지할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몸 전체에서 아찔한 전율이 일었다. 국립현충원에서 출발한 지연이와의 워킹투어는 동작역과 언주역, 강남의 뒷골목을 지나, 교회, GS타워 건물 옥상에서 우리가 사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120분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인공지능 안내자 지연이와 함께 한 시간은 지시와 명령에 따라 거부하지 않고 따라하는 나를 확인하게 했다. 당혹스러우면서, 한편으론 집단안에서 안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절대 쉽지 않은 여정이였다. 여정이 끝나 헤드폰을 벗으며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를 다시 만나는 순간, 나는 통제에서 벗어나 누군가에게 맡겨지지 않은 나의 선택권을 찾았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나라는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게 하다

다시 만난 도시의 도로는 여전히 좀 전과 같이 소란스럽고 복잡했다. 하지만 120분 지연이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유롭게 가고 싶은 방향을 정할 수 있었고, 잠시 멈춰 설 수도 있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어느 순간 생각하기를 멈추고 지연이의 말을 성실하게 따르는 나를 발견했을 때의 충격과 두려움, 낯선 이들이었지만 우리라는 집단에 묶여 같은 헤드폰을 쓴 사람들과 함께 통제 받고 있다는 안도감, 실제 인공지능에 지배 당하는 기묘한 체험이 끝났다.

건물의 옥상에서 도시를 바라보며 인공지능은 이렇게 말했다.

"60년 뒤 여기 있는 누가 이 도시에 남아 있지? 너희는 없어도 나는 영원히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있어."

섬뜩하고 묵직한 경고였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사고의 세계를 포기한 순간, 언제든 지연이의 부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존재 이유가 인공지능의 설계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주체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체험한 시간이었다. 언젠가 죽음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나라는 인간의 존엄이, 끝나지 않고 유지되며 날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영원함보다 더 빛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 무거운 메시지를 결국 지연이라는 인공지능이 전달해 준 것이다. 어디로 갈지, 어디서 멈출지,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이 사소한 행위가 얼마나 큰 자유인지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지연아, 너는 불멸의 시간에 남겨지겠지. 나는 소멸하더라도 나만의 의지로 자유롭게 사라지는 쪽을 택하며 빛나게 살겠어.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는 건 내가 거부하겠어. 나의 의지로, 나의 발걸음으로 이 도시를 걷겠어.'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인공지능#AI#인간의존엄#기계의구속#인공지능의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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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 (noheene) 내방

길었던 직장생활을 끝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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