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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나, 두우우울, 세에에엣, 네에에엣….' 피아노 앞에 앉아 콩나물 대가리를 째려보며 최대한 천천히 박자를 세어본다. 아무리 천천히 세어도 왼손과 오른손이 안 맞다. 눈은 악보를 보고, 머리와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고, 양손은 건반 위에 두고 있지만…. 도무지 지금 내가 치고 있는 게 무슨 곡인지, 음악인지, 소음인지 알 수가 없다.
58세에 시작한 피아노, 이제 4개월째다. '배우는 데 나이가 어디 있어. 시작이 반이야' 하며 패기 있게 시작했지만 슬슬 현실의 벽과 마주하고 있다(이전기사:
50년 만에 다시 배운 '콩나물', 학원 가방도 생겼답니다).

▲콩나물악보와 마주하면 왜 이리 작아지는걸까(AI생성 이미지)악보와 마주하고 있는 나(AI 생성이미지) ⓒ 김희
퇴직하기 전 나는 2년 정도 주기로 부서를 이동했다. 한 부서에서 업무를 익혀 손에 익을라 치면 다시 발령으로 다른 부서로 가 업무를 익히고 적응했다. 35년 근무하는 동안 순환보직(한 직원이 한 업무를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부서나 다른 직무로 자리를 옮겨가며 근무하는 제도)으로 18개의 부서를 옮겨 다녔다.
18번이나 부서를 돌며 매번 새로운 규정과 메뉴얼을 머릿속에 집어 넣고, 모르는 것은 전임자에게 물어보면서, 익히고, 결국 내것으로 만들어 나름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은 베테랑이였다. 4개월 정도면 새로운 부서에서 웬만한 업무 흐름은 파악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하지만 강산이 세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 동안 겪은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의 경험이 88개의 건반 앞에 앉아 있는 내게는 무용지물이다.
새로운 업무 앞에서 처음 보는 지침이나 매뉴얼은 한 번만 훑어도 무슨 말인지 알았는데 피아노 교본에 까맣게 그려진 콩나물들은 도무지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 학원에서 배운 악보를 집으로 가져와 한 주 동안 복습하고 다음 수업에 딸 같은 어린 선생님 앞에서 확인을 받는다. 집에서는 분명 잘했는데 선생님이 '한번 쳐보세요' 하면 등에서는 식은땀이, 손가락은 건반 위에서 헤매기를 거듭한다.
직원들이 만들어 온 보고서에서 오타와 내용의 방향이 잘못된 부분을 귀신같이 잡아내던 나의 예리함이, 악보 앞에선 맥을 추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나는 자꾸만 움츠리고 작아지고 있다. 4개월간 악보를 보고 건반을 두드리면서 콩나물 음표가 자리를 조금만 옮겨도 '솔'인지, '라'인지 헷갈리고, 손가락 번호가 적혀 있는데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이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보고서는 한 번만 봐도 흐름의 방향을 꿰뚫어 볼 수 있었지만, 피아노 악보는 충분한 시간과 연습이 쌓여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고 있다. 지난 35년은 머리를 써서 최대한 빠른 시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달린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한 곡을 온전히 치기 위해 천천히 그리고 충분한 연습으로 느림의 미학을 배워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날마다 빠르고, 급하게, 그리고 성과 중심으로만 달려왔던 나는 이렇게 한 곡을 마치기 위해 더딘 시간과 마주해야 하는 지금이 몹시 낯설고 어렵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먼저 효율을 따지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며 살아온 내게 피아노 한 곡을 마치는 데 필요한 물리적 시간은 마치 도를 닦는 수행과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수행 같은 피아노 한 곡 앞에서 문득 18번 부서를 옮기며 빠르고 급한 속도전을 묵묵히도 견뎌낸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유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채근하던 습관은 어느덧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고, 그 마음이 퇴직 후 새로 시작한 피아노 앞에서도 여지없이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며칠 전 피아노 수업 시간이었다. 한 주간 연습한 곡을 선생님 앞에서 연주하다 잦은 실수를 해 민망함이 밀려왔다. "집에서 연습할 때는 잘됐는데, 선생님 앞에서 잘 안 되네요." 멋쩍은 변명에 어린 선생님은 따뜻하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그 마음 이해해요. 저도 예전에 그랬어요. 그리고 우리 학원에서 복습을 제일 잘 해오는 모범 학생이에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선생님이 건넨 위로의 말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직장 생활하는 동안 나는 늘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 서투른 실수 뒤에 따라오는 질타와 무거운 책임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건반 하나 잘못 누르는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거친 세상과 맞서 35년을 달려오며 그 모진 세월을 오롯이 버틴 내가 아닌가, 하지만 가속도로 밟았던 시간은 그 시간대로 흘려보내고, 이제는 조금 서투르고 늦추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였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콩나물 악보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기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배우는 이 시간은 짧은 시간의 결과에만 집중하던 나를 멈춰 세우고 있다.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건반을 두드리며 손끝의 근육이 그 음을 기억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생각만으로 되지 않는 오직 몸으로 성실한 연습만으로 가능하다.
비록 지금은 어중간한 속도의 중간에 서 있어 완전하게 즐기지 못하지만, 솔과 라를 헤매며, 건반에서 헛손질을 반복하면서, 천천히 느림의 미학을 배워가지 않을까 생각하며 느린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