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명 노동자가 사망한 ‘아리셀 참사’ 2심 판결 과정과 선고에 대한 기자간담회가 28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아리셀참사대책위와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 주최로 열렸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는 원심보다 대폭 감형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운영총괄본부장도 1심 징역 15년에서 항소심 7년으로 줄었다. ⓒ 권우성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용민 의원은 줄곧 사법개혁을 말해왔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검사의 권한을 잘게 쪼개고, 법왜곡죄까지 만들었으니 그것이 곧 사법개혁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아리셀 2심 판결과 그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를 지켜보고 나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도대체 당신들이 말한 사법개혁은 어디까지 이르렀는가. 국민이 실제로 사법에서 체감하는 것은 검찰청 간판의 존치 여부가 아니다. 평범한 시민, 일터에서 가족을 잃은 유가족, 억울하게 죽어간 노동자들의 원통함이 가장 직접적으로 닿는 곳은 검찰이 아니라 법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판결문이다.
사람의 죽음이 법정에서 얼마의 무게로 계산되는지, 구조적 책임이 어디까지 살아남는지, 1심이 던진 강한 메시지가 왜 항소심에서 무너지는지가 국민이 체감하는 사법의 얼굴이다. 아리셀 사건은 바로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는 사건이다.
2024년 6월에 일어난 참사에서 1심은 대표이사와 운영총괄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이를 4년과 7년으로 낮췄다. 1심은 이 사건을 예견 가능한 구조참사, 사실상 예고된 인재로 보았고, 생산 압박, 불법 파견, 안전교육 부실, 위험물질 취급 공정의 반복된 경고 무시, 비상구와 비상통로 문제까지 적시했다.
그런데 2심은 그 메시지를 대폭 후퇴시켰다. 4월 28일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에 열린 아리셀 2심 판결 과정 및 선고에 대한 기자간담회 중 유가족과 법률지원단은 항소심이 무엇을 무너뜨렸는지 각자의 언어로 드러냈다. 아래는 그 간담회 발언과 그 뒤에 이어져야 할 법과 비교법 그리고 그 위에서 다시 제기되어야 할 정치적·사법적 질문이다.

▲세계산재사망노동자추모의 날 기자회견세계산재사망노동자추모의 날(4월 28일)을 맞아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주최로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억과 추모가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세계산재사망노동자추모의 날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정민
[현장 기록] 아리셀 2심 판결 과정 및 선고에 대한 기자간담회 전문
권미정 활동가 이제 시간이 돼서 진행하겠다고 했다. 바쁜 와중에도 많이 와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오늘이 4월 28일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인데, 이런 날 이런 기자간담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오늘은 이미 다들 알고 있을 아리셀 2심 판결 결과와 관련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선고 당일 현장에서 짧게 기자회견을 하기는 했지만, 그날은 너무 경황이 없었고 생각지도 못한 결과여서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하기에도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그날은 가족들도, 활동가들도,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전부 울부짖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여전히 그날의 감정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지금도 잘 이야기할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이지만, 그래도 상고를 하기 전 이 재판의 잘못된 점과 가족들의 마음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사회에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오늘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이날 자리에 온 사람들을 하나씩 소개했다. 고 엄정정 님의 어머니 이순희 님, 고 김병철 님 유족 최현주 님, 고 이혜영 님 유족 여국하 님이 와 있다고 했다. 아리셀 참사 대책위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한 신하나 변호사와 손익찬 변호사가 앞에 와 있다고 했고, 뒤쪽에는 아리셀 대책위 공동대표들과 다른 산재 참사 유가족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 장덕준 님, 고 김치영 님, 고 오영한나 님, 고 박현경 님 유족들이 와 있고, 양한웅 공동대표와 우다야 라이 위원장도 함께한다고 했다. 자신은 아리셀 대책위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고 김용균재단에서 활동하는 권미정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먼저 대책위 대표 발언을 아주 짧게 듣고, 그다음 유가족들의 발언을 듣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두 변호사가 두 개의 초점으로 재판 이야기를 설명한다고 했다. 하나는 산안법과 중처법 관련 무죄가 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양형 전반과 재판 과정의 문제라고 했다.
양한웅 공동대표 와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며칠 전 판결 현장에 자신도 있었고, 법정에서 고함도 쳤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에게 가장 잊히지 않는 것은 대책위 사람들보다도 가족들의 절규라고 했다. 특히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가 울부짖으며 대통령을 만나게 해 달라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만나고 싶다고 했던 장면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변호사들이 판결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겠지만, 자신들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법정 투쟁을 하겠다고 말했다.

▲아리셀 참사로 희생된 고 엄정정씨의 어머니 이순희씨가 22일 오후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1심 징역형(15년)을 대폭 감형한 항소심 선고(징역 4년)에 "너무 억울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라며 울분을 토한 후 주저앉았다. ⓒ 전선정
고 엄정정 님 유가족 이순희 자신은 고 엄정정의 엄마라고 했다. 딸은 23살, 대학을 졸업하고 나온 아이였다고 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고, 자기 뒷바라지를 해줬다고 고맙다고 말하던 딸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가지 말라고 말려도 기를 쓰고 갔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674일이 지났는데도 너무 억울하고,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재판장이 돼 가지고 가족도 없는 사람처럼 그러느냐고 했다. 신현일 재판장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저주할 것이라고 했다. 왜 자기 가족은 죽어야 하느냐고 했다. 딸이 한국말을 몰라서 도망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살아 나온 정직원들이 여섯 명 있었고, 그중 한 정직원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같은 중국인인데 왜 도망가라고 말해주지 못했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정정이가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너무 예쁘고 착한 아이였다고 했고,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 관리자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뛰어나가느라 빨리 도망치라고 말을 못 했다고 사과했다고 전했다. 자기 딸은 말을 몰라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다시 강조했다. 문제는 안전교육이 하나도 없었다는 데 있다고 했다. 비상구가 반대 방향에 있었고, 그게 나갈 수 있는 문인지도 몰랐을 것 아니냐고 했다. 불법파견으로 나가 있던 상태에서 그 문을 진짜 비상구가 아니라 정직원만 다닐 수 있는 문이라고 생각했을 것 아니냐고 했다. 이렇게 이익만 챙기는 기업인데도 신현일 판사는 왜 이런 사람들을 살려주느냐고 했다. 돈 없고 권력 없는 사람은 다 죽어도 되는 것이냐고 했다. 한국에 이런 법이 있는 줄 몰랐고 너무한 법이라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다면 바로 이런 때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딸이 죽고 나서야 대한민국에 자신이 몰랐던 법이 있고, 나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돈 없고 권력 없는 사람을 이렇게 무시하는 줄 몰랐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라서 이렇게 차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법정에 들어가면 숨소리와 기침 소리도 못 내게 하고 감치라는 말을 하는데, 처음에는 감치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다른 방에 가둔다는 뜻이라고 해서, 그러면 자기는 가둬도 좋으니 박순관 있는 데다 놔 달라고, 칼로는 못 죽여도 입으로 물어서라도 죽이고 싶다고 했다고 했다. 23명을 죽여 놓고도 왜 4년밖에 안 되는지 너무 분통하고 원통하다고 했다.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썼다고 했다. 자기 고통을 알아줄지는 모르겠지만 노동자들을 좀 보듬어 주고 차별하지 말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달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자신에게는 17살 된 둘째 딸이 하나 더 있는데, 이 아이가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도 똑같은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두 번째 아리셀이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더 억울해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잘 정리가 안 된다고 했다.
고 김병철 님 유가족 최현주 고 김병철 님의 배우자 최현주라고 자신을 밝혔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죽었고 자신은 남겨졌다고 했다. 충격과 슬픔에서 벗어날 틈도 없이 곧장 투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고, 제대로 애도할 틈도 없이 1년 넘게 미친 듯이 살아왔다고 했다. 자신을 도와준 법률대리인들과 주변 사람들 덕분에 나름의 성과도 있었고, 유가족들끼리 깊은 연대감도 생겼다고 했다. 그런데 2심 판결이 그것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아주 직접적으로, 2심 판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합의였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합의를 안 한 유족이 다섯 명 정도 있었고 자신도 그중 한 명이었다고 했다. 왜 합의를 했는지 꼭 말하고 싶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살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1심 내내 자기 남편의 과실 여부가 문제 됐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는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거기에 대해 누구 하나 제대로 말할 기회도 없었다고 했다. 그 고통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다. 민사소송이 본격적으로 가면 그 과정이 더 심해질 것이고, 그게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고 했다. 용서해서 한 합의가 아니라 내가 살아야 하고, 내가 살아야 우리 아이들이 살기 때문에 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딸 둘은 대학생인데 당황하면서도 자기 살 길을 찾느라 애쓰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막내아들은 참사 당시 학교를 자퇴했고, 은둔형 외톨이가 돼 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게 너무 무서웠고, 남편 사고보다 오히려 더 두려웠다고 했다. 아이를 치료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이후 다시 학교에 갔지만 지금도 또 자퇴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합의를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그런데 그 합의가 2심 판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니 또다시 자기 탓을 하게 된다고 했다. 유가족은 원래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이제는 왜 합의를 했느냐는 또 다른 죄책감까지 더해졌다고 했다. 그게 또 다른 늪이라고 했다. 사법부는 아리셀 유가족들을 버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도 이제는 대한민국을 버리고 싶고, 할 수만 있다면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고 했다. 대통령에게 편지도 썼고 잘 도착했다는 문자도 받았다고 했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라고 했다. 제대로 죗값을 받게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기게 하는 것, 그것 하나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은 수없이 많지만, 기자들에게 제발 좀 도와달라고 했다. 자신들은 대법원 구조도 시스템도 잘 모르니, 어떻게 결정될지 끝까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아리셀 참사로 희생된 고 이해옥씨의 사촌 언니 여국화씨, 고 엄정정씨의 어머니 이순희씨가 22일 오후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1심 징역형(15년)을 대폭 감형한 항소심 선고(징역 4년) 이후 법원 앞에서 주저앉아 울분을 토하고 있다. ⓒ 전선정
고 이혜영 님 유족 여국하 고 이혜영 님의 사촌 여국하라고 자신을 밝혔다. 지금도 너무 힘들고 가끔은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1심과 2심 내내 죄인 취급을 받았고, 조금만 울분을 토하면 감치 운운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자기들이 죄를 지었다면 유가족이 된 것이 죄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죽으려고 일하러 나간 사람들이 아니라 더 잘 살려고 일하러 나간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참사 직후 시신 상태를 설명했다. 온전치 못한 가족들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머리와 몸통만 있는 경우도 있었고, 한쪽 팔과 다리가 없는 경우, 양쪽 팔꿈치 아래와 양 무릎 아래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그렇게 온전치 못한 상태로 가족을 보내야 했던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참사 희생자들뿐 아니라 2심 판사 신현일의 이름도 기억하게 됐다고 했다. 그만큼 억울하고 비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럼에도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리셀 참사 현장에서 잃어버린 불신을 찾아야 하고, 자신들이 나가서 소리 내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겠느냐고 했다. 지금은 정신줄 놓기 일보 직전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연대해준 분들이 끝까지 곁에 남아 참사가 잘 마무리되도록 도와줬으면 좋겠고, 유해 한 점 빠뜨림 없이 다 찾아서 자기들 손으로 보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종합추모공원 문제도 빨리 정리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 행동으로 함께해 달라고 했다.
권미정 활동가 유가족 발언 뒤 다시 정리했다. 가족들이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보낸 것은 이런 재판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행정부와 사법부는 별개지만, 정부가 말하는 산재 없는 세상,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은 말 한마디로 되는 것이 아니라 후속 조치들이 따라야 강제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해 재수습 문제를 다시 언급했다. 몸통만 먼저 마주한 경우, 머리 없이 장례를 치렀다가 뒤늦게 유해가 더 돌아온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누구도 가족들에게 유해를 어떻게 수습했는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고, 단지 "보지 않는 게 좋다"는 식으로만 말했다고 했다. 당시에는 가족들이 충격받을까 봐 그런 줄 알았지만, 장례 과정에서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유해 재수습을 계속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뒤에 앉아 있는 다른 산재 유가족들의 움직임도 함께 지켜봐 달라고 기자들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이제 두 변호사가 두 개의 초점, 즉 산안법·중처법 무죄 부분과 양형 및 재판 과정 문제를 설명한다고 정리했다.
손익찬 변호사 수원고법 신현일 부장판사와 강명중 주심판사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설령 3심에서 판결이 뒤집히더라도, 이런 수준의 판결문을 유가족들과 국민 앞에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용서되지 않는다고 했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판결 내용으로 설명하겠다고 했다. 먼저 2심 판결문 129쪽의 표를 보자고 했다. 거기에는 1심에서 인정된 여러 주의의무 위반이 정리돼 있다고 했다. 열감지기 설치 의무 위반, 화재 이틀 전 동일한 종류의 전지가 폭발했는데도 후속 공정을 중단하거나 발열 검사를 하고 분리 보관하지 않은 점, 안전보건교육 의무 위반, 소방훈련과 소방교육 미실시, 위험성평가 미실시, 마지막으로 비상구·비상통로 유지 의무 위반이 적혀 있다고 했다. 이 수많은 의무 중 2심에서 무너진 것은 결국 비상구·비상통로 유지 의무였고, 여기에 합의가 더해지면서 15년이 4년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과연 이 두 가지가 그렇게까지 감형될 이유가 되는지 보자고 했다. 그는 안전보건규칙 제17조 제1항을 들었다.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장과 그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는 주출입구 외에 비상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조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쟁점은 "그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이라는 문구라고 했다. 비상구를 작업장만이 아니라 그 건물이 있는 전체 건축물 차원에서 봐야 하는데, 항소심은 그 의미를 축소했다고 했다. 리튬은 산안법상 위험물질이고, 3동 2층에는 완제품이 3만 5천 개 적재되어 있었으며, 열폭주 특성상 결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 공간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2심은 2층을 위험물질 취급층이 아니라고 분리해 보면서 비상구 의무를 좁게 읽었다고 비판했다.그는 1심이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구"를 결국 지상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는 층, 또는 피난층과 연결되는 직통계단으로 통하는 출입구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건축법과 다른 법령상 비상구 규정까지 참고하면 충분히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1심은 왜 층마다 비상구가 필요하냐는 점도 설명했다고 했다. 위험물질이 다른 층으로 급격히 확산될 수 있고, 위험물질을 다루는 건축물에서는 층별 대피가 가능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며, 문 하나 더 내고 계단 하나 더 두는 것이 그렇게 과도한 비용도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2심은 비상구를 층마다 둘 필요가 없다고 봤다고 했다. 형벌법규를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확장유추해석할 수 없고, 법문에 "각 층"이라고 써 있지 않으니 1층의 주출입구 외 비상구 하나면 충분하다는 식이었다고 했다. 또 건물에는 천장과 바닥, 벽체가 있으니 위험이 다른 층으로 쉽게 확산되지 않는다는 취지도 깔려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두고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 위반 여부는 단지 문자만이 아니라 의무의 취지, 사업장 규모, 예상되는 위험, 산재 발생 빈도, 기술 수준 등 구체적 실태에 비추어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 조치가 있었는지로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라고 했다. 특히 동종 산업재해가 이미 발생했다면 더 엄격하게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리셀 2심은 바로 이 대법원 법리와 기존 중처법 법리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모르고 했다면 법관 자격이 없는 수준이고, 알고도 했다면 피고인을 봐줄 마음을 먹고 판결을 쓴 것이라고 했다. 그는 비상통로 문제도 도면과 함께 설명했다. 발화지점이 주출입구 쪽 바로 옆이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대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했다. 반대편으로 나가려면 샌드위치 패널과 연구소 문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 문은 평소 보안 장치가 걸려 있어 정직원 책임급 이상만 열 수 있었다고 했다. 화재감지로 자동 개방되었더라도 평소 사용할 수 없는 문은 "항상 사용할 수 있는 비상구"라고 볼 수 없고, 근로자들이 그 방향이 탈출로라고 인식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2심은 이런 현실을 외면했다고 했다. 21명이 몰려 숨진 위치를 보면 모두가 불과 화염을 피해 가려다 막힌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데, 이런 구조를 두고도 비상통로 유지 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신하나 변호사 기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자주 듣는 말이 있다고 했다. 죄형법정주의에 맞지 않는다, 명확성 원칙에 맞지 않는다, 그런 식의 말들이라고 했다. 자신은 2심 재판에 전부 참석했다고 했다. 비상구와 비상통로를 두고 기일을 여러 번 했다고 했다. 그리고 위험물질이라는 것은 불이 닿으면 미친 듯이 폭발하는 물질인데, 그런 물질을 다루는 작업장과 건축물에서 층마다 비상구가 설치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우리도 다 비상구를 가지고 사는데, 왜 법정에서는 비상구가 어디인지, 비상통로가 어디인지 증인을 불러 확정해야 하는 것처럼 재판을 하느냐고 했다. 그 과정에서 "양자역학 같네요"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했다. 이런 재판은 상식 밖이라고 했다. 그는 더 화가 나는 것은 양형이라고 했다. 피고인들의 죄를 깎아주는 데는 그렇게 열심히 법리 구성을 하면서, 정작 형량을 대폭 낮춘 이유는 놀랄 만큼 빈약하다고 했다. 대표이사 박순관은 15년에서 4년으로, 운영총괄본부장 박중헌은 15년에서 7년으로 줄었다고 했다. 23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친 사건에서 어떻게 이런 형량이 나올 수 있는지 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2심이 실질적으로 든 양형 사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했다. 하나는 합의, 또 하나는 회사가 안전보건을 완전히 내팽개치고 오로지 이익만 추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의 평가였다고 했다. 그는 합의를 가장 먼저 문제 삼았다. 판결 직후 유족들이 법정에서 오열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했다. 2심 판결문은 피고인들이 사망한 23명 전원의 유족들에게 피해를 변제하고 합의하였다고 적고 있는데, 바로 이 한 줄이 박순관 11년, 박중헌 8년을 깎아준 결정적 사유라고 했다. 그런데 1심 시점에도 이미 다수 유족과의 합의는 존재했고, 심지어 처벌불원서까지 제출돼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 항소심에서 추가된 것은 일부 가족과의 민사상 정리에 가까웠을 뿐인데, 2심은 이를 전혀 새로운 적극적 배상처럼 다뤘다고 비판했다. 민사합의와 형사합의는 전혀 다르다고 했다. 이번 사건에서 유족들이 한 것은 형사상 용서를 한 것이 아니라, 민사적으로 어차피 받아야 할 돈을 먼저 받는 성격에 가까웠다고 했다. 그런데 항소심은 이를 "피해 회복"이라는 말로 포장해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로 돌렸다고 했다. 더구나 그 민사상 합의는 원래 받아야 할 금액보다 한참 못 미쳤고, 징벌적 손해배상도 포함되지 않았으며, 가압류 자산 가치보다도 낮은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결국 회사는 원래 져야 할 민사책임도 다하지 않았는데, 그 불완전한 합의로 형사 감형 효과까지 챙긴 셈이라고 했다. 그는 합의 과정도 구조적 압박이었다고 설명했다. 유족들은 처음에 가족협의회를 만들어 회사와 집단교섭을 하려고 했지만, 진실 규명과 사과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교섭이 깨졌고, 그 이후에는 회사 사람 대신 사측 노무사와 변호사들이 개별적으로 접근해 끊임없이 연락했다고 했다. 전화, 문자, 카카오톡을 가리지 않고 합의를 압박했고, 회사가 곧 망할 예정이니 빨리 합의하는 편이 낫다, 신속합의금이 있다, 그런 식으로 몰아붙였다고 했다.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유족들에게는 이런 압박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고 했다. 이것은 자유로운 합의가 아니라 구조적 2차 가해였다고 했다. 재판부는 그렇게 합의를 양형의 핵심으로 삼으면서도, 정작 그 합의의 과정과 실질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지막 공판에서 유족들과 대리인 측은 이 합의가 어떤 구조에서 이뤄졌는지 설명하려 했지만, 재판장은 그걸 제지했다고 했다. 양형의 핵심 사유를 채택하면서 그 사유의 실질은 듣지 않은 셈이라고 했다. 명백한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했다. 피해자대리인의 의견서와 진술 기회도 제한되었고, 재판이 끝난 뒤 유족들이 울거나 항의하면 감치나 출석 제한을 거론하는 분위기까지 있었다고 했다. 이런 절차 위에서 형성된 판결이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더 나아가 적용해야 할 법리와 판례를 알고도 외면한 채 재판 결과를 이렇게 만들었다면 법왜곡죄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신하나 변호사(법무법인 덕수)가 22일 오후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1심 징역형(15년)을 대폭 감형한 항소심 선고(징역 4년)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사실상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전선정
[법리 분석 1] 검찰의 빈틈 그리고 실질적 생존 구조를 부정한 재판부
첫째 논점은 비상구다. 애초에 검찰이 '리튬 1차 전지' 자체를 산업안전보건법상 명시적 위험물질로 공소장에 촘촘히 구성하지 못한 빈틈이 뼈아팠다. 2심 재판부는 공소장의 이 허점을 파고들어 참사가 발생한 3동 2층을 "직접적인 위험물질 취급층이 아니다"라고 분리해석하며 비상구 의무를 대폭 축소했다. "1층 주출입구 외 비상구 하나면 된다"는 식의 사고로 빠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존 대법원 판례마저 정면으로 거스르는 퇴행이다. 대법원은 이미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충돌 사건' 등에서, 산안법상 의무 위반 여부를 단순히 법문의 문자에만 가두지 않고 사업장 규모와 예견 가능한 위험, 구체적 실태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나아가 헌법재판소의 명확성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생명과 직결된 법리는 실질적 보호를 향해야 한다. 산안규칙, 건축법, 소방 법체계가 가리키는 비상구의 본질은 형식상 표시된 문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다. 발화 후 42초 만에 연기가 차고 출입구가 화염으로 봉쇄되었으며, 보안카드가 걸린 문은 비정규직·이주노동자에게 탈출구가 아니었다. 23명이 바로 그 2층 출입문 앞에서 죽었다. 그렇다면 법은 "그 층은 별도로 보자"가 아니라 "왜 그 층에서 살아서 빠져나올 수 없었느냐"를 물었어야 했다. 그 질문을 버린 순간, 비상구 법리는 생명보호 법리가 아니라 면책 법리가 된다.
[법리 분석 2] 외국의 민사 합의와 형사 처벌 관계
둘째 논점은 민사 합의다. 유가족들의 생존을 위한 민사상 합의가 왜 중대재해처벌법과 형법에 따른 양형 감경 사유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미국 연방법 체계의 배상 명령(restitution), 영국의 보상 명령(compensation order), 독일의 가해자-피해자 화해 제도(Täter-Opfer-Ausgleich) 등 외국 역시 피해 회복이 형사 양형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명문화된 조문과 형사 절차 안에서 '제도적으로 통제되는 배상 및 화해'라는 점이다. 한국처럼 기업이 평소 안전비용을 최소화하다가 참사가 나면 자금력으로 유족과 개별 합의를 종용하고, 그 합의서가 사실상 핵심 책임자의 형량을 대폭 깎는 '할인 카드'처럼 쓰이는 관행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가족의 수입원이 끊기고 생활이 무너지는 벼랑 끝 상황에서 유가족이 선택한 합의는 자유로운 용서가 아니라 생존의 압박이다. 그 절박한 선택을 피고인의 양형 감경 사유로 돌려버리는 형사 재판은, 피해자의 궁핍을 가해자에게 유리한 자료로 바꾸는 사법의 냉혹한 재활용이다.
[결론] 다시 묻는다, 사법개혁은 어디에 있는가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 남는다. 2층 출입문과 비상계단이 실질적 탈출구로 기능하지 않았고 23명이 사망했는데, 그 설치와 유지, 관리의 책임을 대표이사와 운영총괄본부장에게 묻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항소심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명시한 경영책임자의 핵심 의무인 '경영방침 설정(시행령 제4조 제1호)'과 '평가기준 마련(제5호)'에 대해서도 인과관계를 매우 좁게 해석했다. 이는 '두성산업 사건' 등 중처법 시행 초기 판결들이 보여준 엄격한 책임 묻기의 흐름과도 완전히 충돌한다. 급박한 위험 시 대피 매뉴얼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경영책임자에게 끝내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남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그 위험한 구조에서도 사람은 각자 알아서 살아남았어야 했다는 끔찍한 방기다.
그래서 결론은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정청래와 김용민은 들으라. 당신들이 말한 사법개혁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검찰청을 때려부수는 개혁은 있었을지 모른다. 수사와 기소를 나누는 개혁도 있었을지 모른다. 법왜곡죄도 만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상구 하나, 비상통로 하나, 유족의 민사합의 하나가 사람의 목숨값을 이렇게 무너뜨리는 판결 구조를 바꾸는 개혁은 없었다. 그 개혁이 없다면, 사법개혁은 없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치섹션으로 분류하셔도 무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