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의 발전은 자연이 빨리 사라지는 것이다 ⓒ 최상두

▲함양산불의 경계 자연과 인간의 한계선이 무너졌다 ⓒ 최상두

▲함양산불이 지났지만 자연은 스스로 회복하고 치유한다 ⓒ 최상두
어제는 과학의 날이었다. 오늘은 지구의 날이다. 하루 사이, 인류는 축배에서 반성으로 이동했다. 달력 위에 나란히 놓인 두 기념일은 지금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학은 인간에게 더 빠르고, 더 편리하며, 더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그 성취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자연은 점점 자리를 잃어갔다. 강은 흐름을 잃고, 숲은 숨을 잃었으며, 수많은 생명들이 삶의 터전을 내주었다.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축적된 선택들은 결국 자연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어져 왔다. 지금의 지구는 단순한 환경오염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활동이 과도하게 확대되면서,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생태계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공존이라는 말은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고, 자연은 개발과 소비를 위한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다. 숲은 베어지고, 강은 막히며, 그 자리는 시멘트와 인공 구조물이 대신 채운다. 이는 발전이라기보다 점유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해결책을 '더 나은 기술'에서 찾으려 한다. 친환경 기술, 효율적인 시스템,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줄이고 멈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지 모른다. 인간의 개입이 줄어들수록 자연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그대로 두는 일은 방치가 아니라 존중에 가깝다.
인간이 한 걸음 물러설 때 비로소 자연은 제 속도를 되찾는다. 그 속도는 느리지만 분명하다. 강은 다시 흐르고, 숲은 다시 자라며, 생명은 다시 돌아온다. 문제는 자연의 회복력이 아니라 인간의 멈추지 않는 속도에 있다. 지구는 특정한 존재의 소유가 아니라, 수많은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다. 편리함을 조금 덜어내고, 익숙한 방식을 조금 바꾸는 일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단순하다. 더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멈출 것인가. 지금의 위기는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선택의 방향에서 비롯된 결과에 가깝다.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을 멈출 것인가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구는 이미 충분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인간의 응답뿐이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는 강물에서 오염의 선이 보인다 ⓒ 최상두
속도를 늦추고, 욕심을 줄이며, 자연에게 일부를 돌려주는 일. 그 단순한 선택들이 쌓일 때 비로소 공존은 다시 현실이 될 수 있다. 지구의 날은 거창한 선언의 날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다. 지구를 지키는 일은 멀리 있지 않다. 인간이 한 걸음 물러서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이, 지구와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거리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수달아빠’로 불리며 지리산 엄천강 일대에서 야생동물과 하천 생태를 기록하고 있다. 수달과 철새의 삶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고민하며, 현장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