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시간은 하루하루 쌓이며 만들어진다. 주간함양은 특정 월을 기준으로 과거 같은 달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기획을 련했다. 과거 기사와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의 현장과 분위기를 되짚어보고, 지금의 변화와 흐름을 함께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지역사회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또 무엇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하나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해 그달의 함양을 다시 펼쳐보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역의 현재를 읽어보고자 한다.

▲2014년 4월7일자 <주간함양> 보도 ⓒ 주간함양
2014년 4월, 함양 산양삼 산업은 한순간 흔들렸다. 전국적인 명성을 이어가던 '명품 함양 산양삼'이라는 이름에 균열이 생긴 시기였다. 일부 농가의 불법 재배가 적발되면서 지역 전체의 신뢰가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 4월의 대응은 단순한 위기 수습에 그치지 않았다. 생산자와 행정, 경찰, 축제 조직,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면서 이후 10여 년을 지탱하는 관리 체계의 출발점이 됐다.
4월 7일자 보도는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그대로 전한다. 경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함양지역 산양삼 재배농가를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타 지역에서 들여온 묘삼을 산에 식재해 함양 산양삼으로 둔갑시킨 불법 행위를 적발했다.
이들은 상품 가치가 없는 파지 인삼을 외부에서 사들여 산양삼 재배지에 옮겨 심은 뒤 수년간 키워 '6~7년근 산양삼'으로 속여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위조한 품질검사증까지 부착해 정상 제품처럼 유통시키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외형상 구분이 어려운 점을 악용한 사례는 소비자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요인이 됐다.
전체 500여 농가 가운데 일부에 불과했지만,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산양삼은 생산 과정의 신뢰가 곧 상품 가치로 이어지는 특성상, '일부의 문제'가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는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생산농가들은 그 충격을 직접 체감했다. 꾸준한 이미지 개선 노력으로 쌓아온 명성이 한순간에 훼손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지역 전반에 퍼졌다. 축제를 앞둔 시점이었기에 그 부담은 더욱 컸다. 관광객과 소비자를 상대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축제 구조에서, 불법 재배 논란은 곧 지역 브랜드의 존립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14년 4월 14일자 주간함양 보도 ⓒ 주간함양
자정 결단, 퇴출과 검증으로 신뢰 회복 시도
이 같은 위기 속에서 함양산양삼영농조합법인과 산삼축제위원회는 긴급 간담회를 열고 강도 높은 대응에 나섰다. 핵심은 '자정'이었다. 적발된 농가에 대해서는 영구 제명 방침을 세우고, 법인 상표 사용 금지, 보조금 지원 중단 및 회수 검토 등 강력한 제재를 예고했다. 단순한 경고 수준이 아닌, 산업 내부에서 스스로 신뢰를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동시에 유통과 생산 전반에 대한 검증 체계도 강화됐다. 축제 출품 산양삼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생산 이력 관리 시스템을 통해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믿을 수 있는 산양삼'이라는 기준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함양 산양삼 지킴이'였다. 생산자 단체뿐 아니라 행정, 경찰, 농산물품질관리원, 언론까지 함께 참여하는 형태로 구성된 이 조직은 단순한 상징적 기구가 아니었다. 수시 감찰과 현장 점검, 축제 출품 검증까지 담당하며 실질적인 관리 기능을 수행하는 협력 체계로 설계됐다.
일주일 뒤인 4월 14일자 보도는 이 같은 흐름이 현장으로 확산된 모습을 보여준다.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자정 결의대회에는 200여 농가가 참석했다. 행사장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지만, 그만큼 절박함이 묻어났다. 참석자들은 어깨띠를 두르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고, 스스로 책임을 공유하는 자리로 이어졌다.
결의대회에서는 구체적인 실천 약속이 제시됐다. 오지삼과 중국삼을 식재하지 않겠다는 선언, 위반 시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 그리고 산양삼의 명성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긴 서약서에 전원이 서명했다. 이는 단순한 행사 절차를 넘어, 생산자 공동체 내부의 규율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당시 발언들도 같은 맥락을 담고 있었다. "이번 결의대회는 보여주기가 아닌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행정의 메시지,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함양 전체의 문제"라는 생산자 단체의 인식, "위법 행위를 절대 방관하지 않겠다"는 축제위원회의 입장은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내부 기준을 스스로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날 '함양 산양삼 지킴이'는 공식 발대했다. 다양한 기관과 주체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는 이후 함양 산양삼 관리 체계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생산 단계부터 유통, 축제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에 대해 상시 점검과 감시가 가능해진 것이다.

▲2014년 4월28일자 주간함양 보도 ⓒ 주간함양
지속된 변화, 위기를 넘어 구조로 남다
12년이 흐른 지금, 당시의 선택은 일반적인 대응을 넘어 제도적 기반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양삼 지킴이를 중심으로 한 협력 체계는 일회성 조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관리 구조로 정착했다. 생산 이력 관리, 현장 점검, 축제 검증 등 각 단계에서의 확인 절차가 일상화되면서 불법 재배 문제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신뢰를 지키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구조로 전환됐다. 생산자 스스로 기준을 지키고, 행정과 기관이 이를 상시적으로 확인하는 이중 구조가 자리 잡은 것이다.
2014년 4월의 기록은 그래서 단순한 과거의 사건으로 머물지 않는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지역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농업 생산물처럼 '신뢰'가 곧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산업에서는 더욱 의미가 크다.
당시 불법 재배는 일부 농가의 일탈이었지만, 대응은 전체의 책임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책임의식은 제도와 구조로 남았다. 지금의 함양 산양삼이 유지하고 있는 신뢰의 기반에는, 12년 전의 다짐과 결단이 그대로 녹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 (김경민)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