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전남 광양에 사는 외국인 H씨와 함께 광양출입국외국인출장소를 찾았다. 그는 한국에서 24년째 살고 있는 이주민이다. 그가 '영주권'을 취득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알아보기 위해 함께 방문했다.
담당 직원은 "영주권도 유형이 다양하니 본인에게 해당하는 요건을 살펴보라"며 관련 안내 자료를 건넸다. 문서를 받아 들고 하나하나 살펴보는 순간, 영주권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광양출입국외국인출창소 앞에 선 H씨광양출입국외국인출창소 앞에 선 H씨 ⓒ 정병진
요건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5년 이상 합법 체류는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미화 50만 달러, 즉 약 7억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하고 5명 이상의 국민을 고용한 투자자, 해외 또는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전문 인력,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자격과 고소득을 갖춘 노동자, 혹은 과학·문화예술·체육 등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 등으로 범위가 한정된다. 다시 말해, 높은 소득과 학력, 혹은 특별한 능력을 갖춘 이들만이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영주권은 단순한 체류 자격이 아니다. 체류 자격에 따른 활동 제약에서 벗어나 사실상 시민권자에 가까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지위다. 가령 유학생 비자로 입국한 사람이 학업 대신 취업을 하면 위법이 되는 현실에서, 영주권은 외국인에게 자유롭고 안정된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기반에 해당한다.
그런데 H 씨는 이 문턱 앞에서 멈춰 서 있다. 그는 투자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뒤 현재는 무역경영 비자로 십수 년째 체류 중이다. 그 사이 자녀도 태어나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작은 파스타 가게를 운영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세월이 20년을 훌쩍 넘었다. 한국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삶의 터전을 일군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외국인'이다. 영주권은커녕 안정적인 체류 지위조차 쉽게 보장받지 못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이민 정책은 여전히 '선별적 수용'에 머물러 있다. 고학력, 고숙련, 고소득 인력 중심의 정책이다. 그러나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이런 기준으로 선별된 전문 인력 이주노동자는 약 7만 명 수준에 불과하다. 애초에 한국이 그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볼 문제는 이것이다. 높은 연봉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왜 굳이 한국을 선택해야 하는가. H 씨의 말은 그 질문에 대한 직설적인 답이었다. 그는 "연간 1억 원 이상을 벌 수 있다면, 굳이 한국에 남을 이유가 없다"고 하였다. "차라리 이민 조건이 덜 까다로운 유럽 국가로 가서 편히 살겠다"고 말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문턱의 높이가 아니라, 그 문턱을 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의 부재에 있다. 사람을 가려 받는 정책만으로는 사람을 끌어들일 수 없다. 이민자들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갖도록 만드는 사회적 환경과 제도, 그리고 환대의 태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지금의 한국 이민 정책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나라가 되어야 사람들이 이곳에 머물고 싶어 할까"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 말이다. 그 질문과 사회 환경 개선 없이 더 높은 기준만을 내세운다면, 한국은 결국 필요한 사람도, 함께 살아갈 사람도 얻지 못할지 모른다. H 씨와의 짧은 동행은 그 사실을 또렷이 보여주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겨자씨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