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하나’라는 조형물로 널리 알려진 이철희 작가가 오는 4월 22일부터 5월 10일까지 ‘상서로운 기운’이라는 전시회를 연다. ⓒ 세종뮤지엄갤러리 제공
어느 날 막내 아들과 놀다 어깨를 다쳐 병원에서 여러 번 주사를 맞아야 했다. 매일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실에 누워 있는데 '주사바늘 끝'이 계속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사바늘은 정밀한 관으로 튜브구조인데, 만약 이를 규칙적이고 계획적으로 중첩하고, 의도한 형태로 절단하면 튜브 끝 구멍의 패턴이 달라지면서 독특한 표면이 연출될 거야.'
결국 '튜브구조의 주사바늘'이 그를 새로운 예술로 이끌었다. '주사바늘'이 '파이프'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게 '파이프로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됐다. 물론 "오래 전부터 그린 2차원의 타공그림이 3차 원의 입체(파이프)로 발전"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라는 조형물로 널리 알려진 이철희 작가에 관한 이야기다.
"종이와 한지를 통해 새로운 조형언어를 밀도있게 구축"

▲이철희 작가의 ‘상서로운 기운‘ 전시회 작품. ⓒ 이철희 작가
'우리는 하나'라는 조형물로 널리 알려진 이철희 작가가 오는 4월 22일부터 5월 10일까지 세종뮤지엄갤러리(서울 광진구 능동로 대양 AI센타)에서 '상서로운 기운'이라는 전시회를 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평면과 입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된다.
세종뮤지엄갤러리측은 "이번 전시는 파이프 조각으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해온 작가가 종이와 종이가루, 한지와 색을 결합한 평면작업으로 영역을 확장한 자리다"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분명 회화이지만 부조처럼 보이기도 하고, 같은 개념으로 만든 새로운 조각도 함께 소개된다"라고 밝혔다.
특히 갤러리측은 "주사바늘에서 착안한 파이프로 조각을 해왔듯, 이번 평면 작업 역시 종이와 한지를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조형언어를 밀도있게 구축했다"라며 "동시에 그가 긴 시간과 노동, 정성을 화면에 쌓아 올린 흔적은 작품의 밀도로 고스란히 드러난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이 작업에서 사랑과 온기, 대자연의 힘, 때로는 혁명적 열정과 포부 같은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정서를 시각화했다"라고 덧붙였다.
'상서로운 기운'이 왜 'Sprit'이 아니라 'Chorus'일까?

▲이철희 작가의 ‘상서로운 기운‘ 전시회 작품. ⓒ 이철희 작가
전시회 명칭을 '상서로운 기운'이라고 명명한 데는 상상과 열망 등 인간 내면에 있는 힘에 대한 작가의 믿음을 배경으로 한다. 세종뮤지엄갤러리측은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처음 미술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강렬한 설렘과 막연한 상상이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고 말한다"라며 "꿈도 희망도 없던 시절 '나도 작가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상상이 생겼고, 바로 그 상상이 삶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열망을 '상서로운 기운'이라 해석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철희 작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욕망과 사유는 움직이지 않지만, 인간을 움직이게 하며, 헤겔의 말처럼 인간의 열망 없이 위대한 것은 이루어진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작가에게 '상서로운 기운'은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긍정의 힘"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정신적 에너지"다.
흥미로운 것은 전시회 명칭인 '상서로운 기운'의 영문 번역을 'Auspicous Sprit'이 아니라 'Auspicous Chorus'라고 한 점이다. 이와 관련 세종뮤지엄갤러리측은 "수천 개의 작은 입자들이 모여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작가의 방식이 함께 노래하는 '합창'(chorus)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라고 해설했다.
"이 작은 단위들은 인간 개개인을 상징하는 동시에 하나의 작품이 하나의 생명체라면 그 생명을 구성하는 세포이기도 하다. 작품 속 작은 입자들은 작은 그릇처럼 색을 담고, 그 색을 품은 수천 개의 세포들은 서로 얽히고 어우러지며 하나의 상서로운 질서를 만든다. 하나는 전체를 위해 존재하고, 전체는 하나하나의 개체로 이루어진다. 작가는 이 구조를 통해 인간 사회와 생명의 원리, 그리고 'All for one, one for all'의 정신을 드러낸다."
이러한 갤러리측의 해설은 이철희 작가가 왜 파이프 작업을 하는지와 직결된다. 이 작가는 "재료가 새롭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작품이 되는 원리에 매료됐다"라며 "수천 개가 모여서 하나를 이루고 하나가 바로 전체를 상징한다는 것 때문이다, 수천 개의 픽셀이 모여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그 원리가 너무나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동전으로, 파이프로 작품 작업… '우리는 하나' 조형물로 이름 널리 알려져

▲회화에서 출발해 조각, 조형미술 등으로 예술세계를 넓혀온 이철희 작가. 현재 파주 평화누리공원에 설치된 ’우리는 하나’라는 조형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이철희 작가
이철희 작가는 조선대부속고와 경희대 미술교육학과,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는 (주)한국건축조형미술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그동안 서울시건축디자인 심의위원 등 국내 여러 공공기관의 디자인 조각미술관련 전문위원으로 활동해왔고, 동아미술상과 미술대전 특선(회화), 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과 대한민국미술대전 국무총리상(조각) 등을 수상했다.
예술 경력을 회화로 시작했지만 조각, 조형미술 등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넓혀왔고, 특히 '우리는 하나'라는 작품으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우리는 하나'는 파이프 조각으로 두 개의 얼굴을 형상화한 조형물로 이철희 작가가 4.27 판문점선언 당시 남북한 두 정상(문재인.김정은)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이 작품은 광화문광장과 평창올림픽기념공원, 파주 임진각 등에 전시됐다.
지난 2월 28일자 작업노트에는 아픈 일화가 적혀 있다. 이 작가는 "자고 나면 가운뎃손가락이 저절로 접혀 'Fuck you'로 욕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라며 "이렇게 종이파이프를 하나씩 전부 붙이다 생긴 직업병('방아쇠 증후군')인 것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라고 적었다.
"(가수) 김수철도 그림 그리고, (가수) 김완선도 그림 그리고, (영국 총리였던) 처질도 그렸고, 미국 대통령 부시도 그림을 그립니다.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도 그림을 그렸습니다다. 나는 그 이유도 압니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 예술행위 자체가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2월 28일자 작업노트 중에서)
또한 2000년대 중반에는 버락 오바마,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파블로 피카소, 이건희 등 성공한 인사들의 얼굴('winner's face')을 동전으로 형상화해 주목을 받은 바 았다. 스스로 "미술관에 갇혀 있는 작품보다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소통하는 조각을 하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는 '예술제국의 길'이란 유튜브 채널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전국경제인연합회(현재 한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와 한국노총 여의도 사옥, 아시아나항공, 담배인삼공사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만에 설치할 작품을 계약하고 제작 중에 있다.

▲파주 평화누리공원에 설치된 이철희 작가의 조형물 ‘우리는 하나. ⓒ 이철희 작가

▲이철희 작가가 파이프 조각으로 만든 다양한 작품들. ⓒ 이철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