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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담벼락 시화전 시화전 “내면의 색, 감성과 인성을 물들이다”, 교문 양옆과 울타리를 따라 모두 95점의 시가 담장을 따라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중학교 담벼락 시화전시화전 “내면의 색, 감성과 인성을 물들이다”, 교문 양옆과 울타리를 따라 모두 95점의 시가 담장을 따라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 김은진

담장에 꽃처럼 피어난 시화 작품

누군가 계절의 창에 "봄꽃을 피워줘"하고 명령어를 쳤나 보다. 지난주, 매화 향기가 코끝을 찌르자 이내 산수유꽃이 피어나고 목련 꽃봉오리가 하얀 날개를 펼쳤다. 뒤이어 진달래가 가지 위에서 연분홍 꽃잎을 포개더니 개나리꽃이 안양천과 학의천 제방을 따라 노란 등불을 켰다.

다섯 쌍둥이를 한꺼번에 보듯 바쁘게 봄꽃을 만나던 중 인근 중학교 담장에서 깜짝 선물 같은 시화를 발견했다. 학생들이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과 글씨가 하얀 천에 펼쳐져 있었다. 작고 큰 글씨, 옆으로 비스듬한 글씨, 아래로 길게 내려오거나 양쪽으로 퍼진 글씨도 있다. 같은 한글이지만 형태는 모두 제각각이다. 오랜만에 보는 손글씨가 반가워 걸어가며 시를 읽었다.

시화전 제목은 "내면의 색, 감성과 인성을 물들이다"였다. 교문 양옆과 울타리를 따라 학교 정면에 이르는 곳까지 모두 95점의 시가 담장을 따라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요즘 중학생은 이렇게 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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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마주한 시는 <월요일 시간표(우연재)>였다. 1교시 시작, "여러분, 월요일입니다"라는 선생님의 말로 시작되는 시는 월요일 6교시 수업 시간까지 재치 있게 담아냈다. 특히 선생님들의 모습을 만화 캐릭터로 유쾌하게 그려냈다.

다음 시는 <할아버지(박성희)>였다. 학생은 다정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추억한다. 캐리어를 끌고 하늘 위 환한 빛 속으로 걸어가신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리움 가득한 손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어지는 시 <나에게 한 몇마디(오서현)>는 학업에 대한 시이다. 학교와 학원,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쉴 틈 없는 일정으로 지쳐있던 학생은 어느 날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을 보며 지난날을 떠올리고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마지막 행은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이다. 스스로를 다독이는 주문 같은 이 말은 평생에 걸쳐 필요한 말이라 여겨진다.

<고래(김주하)>는 아빠를 표현한 시이다. '나를 온 바다보다 사랑하는/ 내가 온 바다보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라는 표현에서 존경하는 마음과 다정한 모녀 관계가 연상된다.

범계중 시화전 학교 담장에 전시된 시화들 <내동생은 카멜레온(나여원)>과 <입학(김소은)>
범계중 시화전학교 담장에 전시된 시화들 <내동생은 카멜레온(나여원)>과 <입학(김소은)> ⓒ 김은진

동생과 있었던 일을 시로 표현한 <내 동생은 카멜레온(나여원)>을 읽으니, 동생이 있는 사람이 부러울 정도다. 아침엔 솜사탕이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동생은 홍당무가 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괜히 누나의 신경을 건드렸나 보다. 서로 다퉜지만 저녁이 되자 다시 동생은 개그맨처럼 누나를 웃긴다.

<소리복도(강영신)>에서 딩동댕동 종소리와 까르르 웃음소리, 우다다 뛰는 소리, 선생님의 고함과 한숨 소리가 나온다. 학교생활을 소리로 표현한 점이 재미있다.

학생들의 작품을 읽다 보니 어느덧 나도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머릿속에서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신나게 수다를 떨던 쉬는 시간, 선생님 몰래 총알처럼 뛰어다니던 복도 그리고 사랑과 우정, 꿈에 대한 기억들이 넘실거렸다.

<괜찮아 (강규리)>에서는 수학 문제를 풀다가 틀렸을 때 화난 마음을 엄마가 부드럽게 감싸준다.
<날씨(윤희재)는 흐린 날 잠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좀처럼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눈이 아령처럼 무거웠는데 막상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자, 눈앞에 빛나는 별이 있는 것처럼 번쩍 눈이 떠졌다고 한다.

<매미(우주연)>는 화려한 빛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자신을 완성해 가는 매미를 비춘다. 그리고 언젠가 펼쳐질 푸른 꿈도 함께.

<글쓰기(김시훈)>는 처음에 무엇을 쓸까 망설이다가 돌같이 무겁게 느껴지는 연필을 들고 머릿속에 꽃을 피운다고 생각하니 번쩍 글이 생각이 났던가 보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헤쳐나간 학생의 발상이 기발하다.

<붕어빵(양은지)>은 학생에게 힘들었던 날 따뜻한 모닥불이 되었다. 한 겨울 길거리에서 파는 붕어빵은 맛도 있지만 시린 손과 마음을 데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쓸쓸할 때 한 입 베어 물면 그만인 파삭하고 달달한 붕어빵이 그려져 공감을 자아냈다.

민들레꽃 같은 학생들의 작품(범계중) <순두부찌개(윤재인)>의 작품과 <여행(임지민)> 의 작품, 직접 그린 그림과 시로 AI작품과 차별화되었다.
민들레꽃 같은 학생들의 작품(범계중)<순두부찌개(윤재인)>의 작품과 <여행(임지민)> 의 작품, 직접 그린 그림과 시로 AI작품과 차별화되었다. ⓒ 김은진

<순두부찌개(윤재인)>를 좋아하는 학생의 시도 있었다. '집처럼 따뜻한 순두부찌개'로 시작하는데 가족들 모두 같은 메뉴를 좋아하는지 우리 가족의 연결선이라고 한다.

<내 마음에서 부는 바람들(김도엽)>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을 때나 다른 사람을 도왔을 때, 마음에서 따듯한 바람이 불어왔고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찬 바람이 불었던 이야기를 담았다. 시린 바람이 많이 부는 세상에서 마음을 데우는 방법을 알려준다.

<비 오는 날, 우산 속(한건후)>은 사랑과 우정이 교차하는 심쿵한 말이 있다. '우산 하나, 어깨 두 개/ 말은 적었지만 세상에서 제일 가까웠다.' 덕분에 이제 막 시작된 봄날에 벌써 시원한 소나기가 기다려진다.

문득 중학교 몇 학년 작품인지 궁금해 집에 돌아와 학교로 전화했다. 범계중 국어 선생님의 답변에 의하면 전 학년이 작품을 출품했으며 AI를 쓰는 대신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다고 한다. 나는 문득 오랫동안 시를 서서 읽게 된 이유를 깨달았다.

' 아하!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는 대신 연필로 작품을 쓰다보니 더 솔직하게 마음을 옮길 수 있었구나'.

최근 명령어 한두 줄로 소설은 물론 짧은 영상까지 만들 수 있지만 그럴듯한 창작물보다 스마트기기의 도움 없이 마음속에 있는 진실한 말을 꺼내다 보니 공감이 잘 되었다고 여겨졌다. 점점 글을 쓸 때 AI에 의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편리하지만 과용하다 보면 복잡한 마음도 매끄러운 문장 속에서 뭉개지고 가려질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이런 시기에 학교에 걸린 시화가 보도블록 사이에 비집고 나온 민들레꽃 같다. 마치 동행을 하듯 솔직하고 재미있게 시로 말을 건네는 학생에게 고마웠다.

시화를 감상한 덕분에 저녁 메뉴는 고민 없이 '순두부찌개'로 골랐다. 우리 집 연결 고리는 양념갈비지만 순두부 같은 부드러운 연결 고리도 하나 더 추가하고 싶어서다. 저녁 식사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시 학교 앞을 지나게 되었다. 학교 담장에 걸린 95 송이의 민들레가 손을 흔든다.

안양시 관내 범계중 시화전 “내면의 색, 감성과 인성을 물들이다” 학교 담장을 따라 재학생들의 손글씨 시화 작품 95점 전시되어 있고 담장 밑에 민들레가 피어있는 모습
안양시 관내 범계중 시화전 “내면의 색, 감성과 인성을 물들이다”학교 담장을 따라 재학생들의 손글씨 시화 작품 95점 전시되어 있고 담장 밑에 민들레가 피어있는 모습 ⓒ 김은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시화전#중학생#안양#AI보다손글씨#손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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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아름답고 재미난 이야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오고가며 마주치는 풍경을 사진과 글로 담는 작가이자 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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