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음성군에 위치한 DB하이텍 상우공장 전경 사진. ⓒ DB하이텍
등기임원도 아닌 회사의 오너 일가가 수백억 원에 달하는 높은 보수를 받는 건 과연 정당할까. '그림자 경영' 수단으로 악용돼 온 미등기임원 관행에 소액주주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법원의 문턱은 그보다 높았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조정민 부장판사)는 27일 오후 경제개혁연대와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이 김준기 창업주와 아들인 김남호 회장 등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한 238억 원 규모의 주주대표소송을 기각했다. 지분 요건을 입증하지 못한 일부 원고에 대해서는 소를 각하했다. 주주대표소송은 경영진 잘못으로 회사가 입은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제기하는 법적 장치다.
등기이사보다 6배 더 받는 '미등기' 회장님... DB하이텍 고보수 판결의 그늘
이번 소송은 지배주주가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미등기임원' 신분으로 과도한 이익을 챙기는 재벌가 관행을 정조준했다. 미등기임원이란, 경영 실패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는 등기이사(이사회 구성원)와 달리, 법인등기부등본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채 회사 업무를 맡는 임원을 말한다. 그동안 오너 일가가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방어막으로 악용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미등기이사' 신분인 김 회장 일가는 2021년부터 2024년까지 DB하이텍에서 총 238억 원을 보수로 받았다. 이는 같은 기간 사내이사들이 받은 총보수(73억 원)의 3배가 넘는 수치다. 특히 2023년과 2024년에는 오너 일가 1명이 받은 보수가 사내이사 평균의 6배 이상 높았다.
소액주주·경제개혁연대 측은 지난해 3월 소송을 제기하면서 "오너 일가가 지배주주로서 4년(2021~2025년) 동안 302억 원의 배당을 받고도, 다시 미등기임원 보수 명목으로 배당금에 육박하는 238억 원을 추가로 가져간 것은 사실상 회사의 이익을 빼돌린 사익 편취"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이들이 챙긴 보수는 일반 주주들에게 지급된 총 배당금(1205억 원)의 약 20%에 달한다.
이들은 법원에서 "오너 일가에게 고액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결정이 이사회 결의도 없이 대표이사 전결로 이뤄졌다"는 절차상 문제도 제기했다. 이사의 보수를 주주총회의 결의로서 정하도록 한 상법 제388조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취지다. 하지만 법원은 이같은 결정이 경영진의 재량권 남용이나 불법행위로 보기는 어렵다며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소송 제기 당시 주주라고 주장했던 19명의 원고들은 스스로 DB하이텍 소액주주임을 증명하지 못해 재판 요건 자체를 충족하지 못했고(각하), 지분 0.01% 이상의 주주대표소송의 최소 자격 요건을 갖춘 주주들에 대해서는 본안 심리가 진행됐지만 최종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김선웅 법무법인 지암 변호사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업무와 관계없는 고액 보수와 절차적 하자를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특히 김준기회장은 과거 이력 등으로 회사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인물임에도 회사가 거액을 지급하는 구조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와 소액주주 측은 판결문 정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