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 청와대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2일 차기 한국은행 총재로 지명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은 자산시장 거품, 부채에 엄격한 잣대를 가진 인물이다. 그의 금융 철학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선제적 대응'이다.
그동안 신 후보자는 자산시장에 거품이 터진 뒤 사후약방문식 처방을 내놓기보다, 시장이 호황기일 때부터 미리 부채 관리를 시작해야 시장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가 금융경제학계 권위자로 이름을 알린 계기 역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그보다 2년 앞서 예견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과도하게 쌓이고 있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시스템 리스크'를 불러올 수 있다며 경고했던 것.
그런 그가 1500원대 환율과 중동 분쟁발 유가 불안, 임계치에 도달한 가계부채와 변동성 큰 증시 등 수많은 난제를 안고 한국은행 총재로 지명됐다. 앞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출범할 '신현송호'는 국내 거시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신 후보자가 직접 발간한 논문과 기고문 등을 통해 그가 그릴 한국 경제의 밑그림을 미리 들여다봤다.
"망설이다 위기 키운다"... 신현송호 한은 '선제적'으로 물가 잡을까
"인플레이션 현상은 그 속성상 한번 시작되면 처음에는 일부 국한된 품목만 오르다가 품목 수가 점점 더 넓어지고 전반적인 경제 주체들이 대응하면서 다른 가격이 따라 올라갈 수 있는 상호 작용이 생긴다. 연결고리를 끊어줘야 한다. (중략) 지금으로서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급선무다."
전 세계가 물가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던 2022년 9월. 신 후보자가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공동으로 주관한 G20 글로벌 금융 안정 콘퍼런스에 참석해 내놓은 이야기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물가가 급등하면서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는 그 다음 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까지 인상하겠다는 예측이 파다하던 시점이다.
신 후보자는 여기 동조했다. 국내 중앙은행 역시 비슷한 수준의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금리를 올리는 상황이 있다면 지체하기보다는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 낫다"면서다. 1980년대부터 70여 차례의 긴축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발 빠르게 인플레이션 대응에 나선 사례가 늦게 대응한 사례들보다 시장 측면에서 나은 결과를 만들었다고도 판단했다.
"중앙은행들이 충격을 미리 예측하고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는 방식으로 대응했더라면 10점 만점에 10점을 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부분적으로는 이번 충격이 매우 이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리고 상당 부분, 그러한 충격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최근의 경험에서 얻어야 할 중요한 교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즉, 해야 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파격적으로 올리며 고물가 현상은 다소 수그러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지난 2024년 7월에도 그는 "할 일이 다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즈의 소우마야 케인즈의 경제 쇼 팟캐스트에 출연해 꺼내든 이야기다. 일부 국가에서 여전히 물가가 잡히지 않는 모습이 나타나자 '아직 낙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셈이다. 상품 가격뿐 아니라 서비스 물가까지 잡혀야 '진짜 끝'이라는 것이다. 신 후보자가 유독 '매파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건 이 때문이다.
빚 내서 집 사는 시대 끝? 과거 부채 '연쇄 위험' 경고하기도
"부채 수용 능력은 증거금 수준에 좌우됩니다. (중략) 레버리지는 '재귀적(recursive)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한 경제 주체의 높은 레버리지가 전체 시스템의 레버리지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인데, 누군가의 부채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담보로 활용되는 부채의 본질적 속성을 반영합니다." - 신 후보자가 2023년 11월 CEPR에 기고한 토론 논문
신 후보자는 개인 채무를 얕잡아 보다 어느 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시스템 리스크를 일으킬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갖고 있다. 가령 개인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은행이 자신이 가진 채권을 또다른 시장 참여자에게 팔아넘기는 과정에서 빚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얽히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 빚의 크기, 레버리지도 커진다. 문제는 호황기를 지나 위기가 터졌을 때다. 저마다 돈을 갚기 위해 가진 자산을 다 팔기 시작하면 투매가 벌어져 자산 시장이 폭락하는 위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 후보자는 그 바탕에 은행 등 금융기관의 자본 관리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갖고 있다. 금융위기 당시 금융기관들이 신용 위험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배당급을 지급하며 재정을 스스로 악화했다고 평가하면서다. 신 후보자가 낸 논문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배당과 은행 자본'에 나오는 내용이다.
"표면적인 수치만 보면,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은행과 금융 중개기관들이 막대한 신용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투자자와 정부의 자금 주입을 통해 상당한 양의 신규 자본을 조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행 자본의 구성이 보통주 중심에서 우선주나 후순위채 같은 '부채 성격의 하이브리드 채권'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대규모 신용 손실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배당금을 지급하면서 보통주 자본의 잠식은 더욱 악화됐다. 이러한 배당금 지급은 채권자의 자산을 주주에게 이전한 것이며, 이는 '부채가 자기자본보다 우선한다'는 기본 원칙을 위반한 행위다."
신 후보자가 가진 문제의식은 오랜 기간 빚을 내 집을 사는 구조였던 한국 부동산 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침 이날 BIS가 발표한 한국 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248%로 집계됐다. 부채가 우리나라 GDP의 약 2.5배에 달한다는 이야기다.
한편 신 후보자는 이 대통령의 지명 후 입장문을 내고 "엄중한 시기에 통화정책을 이끌게 된 것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물가와 성장, 금융 안정을 감안한 균형 있는 통화정책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또 "최근 중동 정세가 급변하면서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과 경제전망의 불확실성도 고조됐다. 여러 난관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현 이창용 한은 총재 임기는 다음 달 20일까지다. 한은 총재는 국무회의 심의,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한은 총재의 임기는 4년으로,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