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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가 된 여자들>은 ‘여성 범죄자’라는 이름 아래 지워진 맥락을 다시 묻는다. 범죄를 개인의 일탈이 아닌 젠더·계급·장애·국적·연령 등이 교차하는 사회적 조건과 보호의 실패 속에서 발생한 결과로 바라본다. 보호받지 못한 삶이 '처벌의 언어'로만 호명되는 현실 속에서 폭력과 책임, 정의의 경계를 다시 사유하고자 한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제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해 왔다. 강의 말미에 어떻게 피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요청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설명할 때 나는 이 말을 묻곤 한다. "혹시 경찰서에 가본 적 있으세요?" 그러면 강의실은 조용해진다. '내가 거길 왜 가보지?'하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가본 적 있는 학생도 있겠지만 쉽게 손을 들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피해에 직면하고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하지만 생각보다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겪은 이 상황이 정말 신고할 만한 상황인지 고민스럽기도 하고, 가해자가 보복을 하진 않을지 두려울 수 있다. 그간 관계를 이어온 상대이기에 '이번만 그런 건 아닐까'하며 기회를 주고 싶기도 하다. 또한 신고를 했지만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여러 사례를 언론을 통해 들었기에 선뜻 신뢰하기 어렵기까지 하다.

내가 강의 시간을 통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지만 도움을 요청해 보자는 의미이기도 하고, 신고를 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 또한 가벼운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누기 위함이기도 하다.

"왜 도망치지 않았나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시작날인 2024년 11월 25일 서울 종로 보신각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여성 살해 규탄 퍼포먼스 - 192켤레의 멈춘 신발'이 열리고 있는 모습.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시작날인 2024년 11월 25일 서울 종로 보신각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여성 살해 규탄 퍼포먼스 - 192켤레의 멈춘 신발'이 열리고 있는 모습. ⓒ 권우성

31번 차례 경찰에 피해 사실을 알린 사람이 있다. A다. A는 B와 교제하는 동안 반복적인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대부분 불입건 또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그러다 B는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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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B가 출소한 후, A를 불렀고 그렇게 폭력은 다시 시작되었다. A는 사용정지된 B의 휴대전화로 여러 번 112, 119에 전화를 걸기도 하였다. 본인의 휴대전화는 이미 B가 숨겼기 때문이다. B는 A를 목을 조르며 수차례 폭행했다. 당시 촬영된 사진을 보면 A의 턱은 찢어져 상하의에 상당한 혈흔이 묻어있었다. 술에 취한 B가 잠든 사이 A는 집에 불을 내고 도망쳐 나왔다. B는 전신 화상 등으로 숨졌다. 그렇게 A는 범죄자가 되었다.

많은 경우, 교제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에게 폭력 피해가 계속되었다면 왜 떠나지 못했는지를 묻곤 한다. 재판 과정에서도 A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지를 주변 상황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 사건 주택 옆으로 도로까지 야트막한 언덕이 보이고, CCTV 영상에서도 비록 많지 않으나 지나가는 차량도 확인된다. 주거가 밀집한 지역은 아니나 인근에 주거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 자체가 외진 곳이라 하더라도 A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혹은 도망쳤다면 '그래도 괜찮을 수 있지 않았는지' 묻는 것이다. 소리를 질렀다면 차량에 탄 누군가가, 근처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당신을 도와주었을 것이라 보며 A가 처한 현실이 아닌, 있지도 않을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A의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본인의 핸드폰을 빼앗기고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의 폭력이 있었던 상황이다. 그간 공권력의 도움과 지원을 받았지만 현실이 달라지지 않았을 때, A가 마주한 것은 단순히 '탈출'이 아니라 '생존할 수 있는가'의 여부, 그 자체였다.

당시 사건이 있었던 그날만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벗어나 피해자에게 지속되어왔던 폭력을 하나의 일련의 행위로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A에게는 5년간 공포의 상황이 누적되어왔기에 사건이 발생했던 당일 이외의 폭력이 존재했다. 판결문에 기록된 폭력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 수회 때리고, 목을 조르고, 숨을 헐떡거리면 놓아주는 식의 폭행이 수회 있었음
- 피해자의 목을 조르고, 주먹으로 얼굴과 머리를 때림
- 눈 부위 폭행으로 인해 망막 손상이 있었고, 현재 시력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임
- 부엌칼을 가지고 와 목에 들이대고, 부엌칼의 평평한 옆면으로 머리 부위를 10회 때리고 오른팔을 긁음. 담뱃불로 피해자 배 부위 3곳을 지져 물집이 생김

또한 A의 경로에는 피해 경험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신고로 도움을 요청하며, 저항하고, 생존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을 통해 3차례 안전조치(스마트워치 지급, 맞춤형 순찰 등)가 시행되었지만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한편 '공권력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다하지 않았는가'라고 누군가는 묻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왜 이 문제가 지속되었는가'이다. 국가의 정책 자체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피해자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지, 그 지원에도 위험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어떠한 제도적 방안을 고려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국가의 역할에도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폭력의 악순환에서 생존자는 가해자에 의해 죽거나 가해자를 죽여 범죄자가 되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 불이 꺼졌으면 제가 죽었습니다"

 <오마이뉴스> 특별기획 '교제살인' 일러스트
<오마이뉴스> 특별기획 '교제살인' 일러스트 ⓒ 이강훈

친밀한 파트너 폭력(IPV: Intimate Partner Violence)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하는 경우는 대립적인 사건과 비대립적인 사건으로 나뉜다. 대립적인 사건은 가해자가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도중에 가해자를 살해하는 경우이며, 비대립적 사건은 폭력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 즉 가해자가 잠들어있는 경우를 의미한다.(Zamouri, I., 2023).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는 즉각적인 위협이 없는 상황, 예를 들어 가해자가 잠들어있을 때, 살해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나타났으나(Sheehy et al., 2012) 이는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있다.

왜냐하면 현재 진행 중인 폭력에 맞서 대응한 경우에는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반면, 학대자가 잠들어있거나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한 경우에는 임박한 위협에 대응한 것임을 입증하기 어려워 정당방위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기준대로라면 피해자는 가해자가 잠에서 깨어나 다시 공격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행동해야 한다는, 피해자를 더욱 위험에 내모는 동떨어진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A의 판결문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재판 과정은 A에게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 상대의 생명을 앗아가는 방법뿐이었는지'를 물으며, 정당방위가 아니라 '앙심'과 '분노'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A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불이 꺼졌으면 제가 죽었습니다." 이는 A만의 말이 아니다. 친밀한 파트너 폭력을 겪은 이들이 가해자를 살해한 이유를 설명할 때, 공통적으로 꺼내는 말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냐 나냐 둘 중 하나였어요."
"이번에 그 사람 아니면 나예요."
"오늘 밤엔 정말 그 사람이 날 죽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유는 '분노'가 아닌 '생존'인 것이다. 그렇기에 앞선 말들을 단순히 공포나 과장만으로 읽어선 안 된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폭력을 예고하는 징후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가해자의 행동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를 보다 명확하게 읽어내곤 한다. 가해자 또한 피해자의 취약성, 특수성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통제와 강압을 가하기에, 피해자가 처한 위험을 평가할 때에는 그 관계의 맥락이 적극적으로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각각의 사적 관계 안에는, 획일적인 '임박한 위협' 기준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저마다 다른 '객관적'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민윤영, 2025).

스탠포드 형사사법센터에서 진행된 한 연구를 살펴보면 'IPV-to-Prison Pipeline', 즉 친밀한 파트너 폭력의 생존자인 여성들이 어떻게 범죄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연구는 캘리포니아의 두 교도소에서 살인 및 과실치사 혐의로 복역 중인 649명의 여성 범죄자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연구 결과, 응답자 중 4분의 3이 범죄가 발생하기 전 1년 이내에 친밀한 파트너 폭력을 경험했다고 보고했으며, 이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할 때, 경험한 이들이 수감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이 나타났다. 특히 친밀한 파트너 폭력을 경험한 464명 중 3분의 2는 살해 당할 극도의 위험에 처해있었다고도 보고하였다. 또한 친밀한 파트너 폭력의 생존자가 형사 사법 시스템으로 진입하는 경로는 다양하나, 주요하게는 다섯가지의 경로가 가장 두드러진다는 점을 확인하였는데 그중 하나는 '반격할 때'였다. 생존자가 자신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를 다치게 하거나 살해한 경우, 중대한 범죄로 기소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그동안의 범죄 비난과 처벌 관행이 친밀한 파트너 폭력의 현실, 즉 피해 여성들이 오히려 가해자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왔다고 지적한다.

"살아남았고, 처벌받았다"

 2025년 4월 9일 전주지법 앞에서 여성단체 회원 등이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된 40대 여성 피고인에 대한 정당방위를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피고인에 대해 이날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2025년 4월 9일 전주지법 앞에서 여성단체 회원 등이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된 40대 여성 피고인에 대한 정당방위를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피고인에 대해 이날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 연합뉴스

자신을 보호했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되는 것. 이를 '생존의 범죄화'로 정의하며, 이것을 끝내기 위해 가정폭력/성폭력 생존자들의 노력을 비범죄화하고, 생존자를 지원하며 석방하는 것을 주요 운동 과제로 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미국의 서바이브드 앤 퍼니쉬드(Survived and Punished)이다. 이들은 가정폭력/성폭력 생존자가 '범죄 피해자'로 간주될 때만 지원받고, 이미 범죄자로 분류된 생존자들은 지원과 옹호가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잘못된 이분법'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며, 학대를 더욱 촉진하는 체계적 문제를 겨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 단체가 자기방어의 범죄화에 대한 생존자 대상 연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법체계는 생존자를 가정/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하고, 그들이 스스로 생명을 구하려고 할 때 처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단체가 기록한 사례들은 이러한 현실이 특정국가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마리사 알렉산더는 학대하는 남편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경고 사격을 했다. 총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플로리다 주 검사는 그녀를 '분노한 흑인 여성'으로 낙인찍으려는 인종차별적인 공세를 퍼부었고, 가정폭력 피해자로서의 그녀는 철저히 지워졌다. 결국 마리사 알렉산더는 기소되어 법정 최저형량인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조난희는 학대하는 파트너를 피해 어린 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안전을 찾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아동 납치 혐의로 체포되었고, 담당 검사는 그녀를 미국 시스템을 이용하려는 불법 이민자로 몰았다. 자녀를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냉철한 어머니상을 덧씌우며, 너무 유능하고 계산적이기에 피해자일 수 없다고 비난했다.

단체는 학대 경험 후, 범죄자가 된 이들이 과거 어떠한 삶을 살았고, 출소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기록하고, 시민들이 이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지지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도 상세히 공유한다. 수감자에게 지지 편지를 쓰는 것, 감형·사면을 촉구하는 청원서에 서명하거나 촉구 엽서를 보내는 것, 지역 내에서 전략을 함께 모색하는 것, 인식 제고를 위한 행사를 마련하고 참여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가해자가 피해자들을 계속 학대하며 통제하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는, 사실상 가해자에게 암묵적으로 허용된 현 상황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기도 하다.

A의 사건을 둘러싼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1일, A에 대한 특별사면을 촉구하는 서명이 시작되었다. 서명문은 이렇게 말한다.

"살아남은 대가로 돌아온 것은 국가의 보호가 아닌 징역 10년 형이었다. 장기간 폭력에도 가해자를 반복적으로 석방한 수사기관, 가해자에게 낮은 형을 선고한 사법부, 반복되는 교제폭력에도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정부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정당방위조차 인정되지 않은 채 생존자만이 형벌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 교제폭력 생존자에 대한 사면은 면죄부가 아니라 국가 책임 인정의 출발점이며, 생존자의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또한 앞으로 유사한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가 폭력 대응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강력히 요구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생존자에 대한 특별사면을 즉각 단행하라."
-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생존자 특별사면 촉구 서명

살아남았지만 처벌받은 A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브레이크에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응답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 자료]

민윤영. (2025). 강압적 통제 피학대여성의 가해 남편 살해와 정당방위의 문제 - 영국 법제의 발전과 이용식의 계속범 이론 재조명 -. 피해자학연구, 33(2), 149-181.

Sheehy, Elizabeth A., Stubbs, Julie, and Tolmie, Julia (2012). "Battered Women Charged with Homicide in Australia, Canada and New Zealand: How Do They Fare?" Australian & New Zealand Journal of Criminology, 45(3), pp. 383–399

Zamouri, I. (2023). Self-Defense, Responsibility, and Punishment: Rethinking the Criminalization of Women Who Kill Their Abusive Intimate Partners. UCLA Journal of Gender and Law, 30(1).



https://survivedandpunished.org/

https://law.stanford.edu/press/groundbreaking-sls-study-documents-the-pathways-to-prison-for-those-experiencing-intimate-partner-violence/

https://www.themarshallproject.org/2024/09/14/california-women-prison-domestic-abuse




#친밀한파트너폭력#여성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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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가 된 여자들

야옹이 참깨, 땅콩이와 함께 살아가는 집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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