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융이 일회성 자금 지원을 넘어 지역 소멸과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 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24일 서울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6 사회적금융 써밋'에서는 이 같은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쏟아졌다. 이날 행사는 사회적금융포럼, 한국사회연대경제,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공동 주최하고 행정안전부, 은행연합회, 신협중앙회, 아이쿱생협연합회,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가 후원했다.
지속 가능한 생태계와 혼합금융, "자본 아닌 설계가 문제"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김용기 대표는 ‘사회적 금융 시스템: 자금공급을 넘어 ‘생태계’를 설계하라’를 주제로 주제강의를 진행했다. ⓒ 정진영
이날 첫 번째 화두는 사회적 금융 생태계의 전면적인 구조 개편이었다.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김용기 대표는 현 상황을 두고 "자본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설계가 부족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존 공공 위주의 일회성 자금 공급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미다.
그는 자금이 끊임없이 순환하려면 중간에서 딜을 발굴하고 책임질 '중개기관'의 육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짚었다. 아울러 거래 비용을 낮출 표준 계약 절차 마련을 촉구했다. 특히 재무적 연체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과 지표(KPI)가 떨어졌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트리거(규칙)'를 사전에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엠와이소셜컴퍼니 김정태 대표는 복합적인 자금 조달 방식인 '혼합금융(Blended Finance)'을 강조했다. 지분 투자와 대출, 보조금을 하나로 묶어 투자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이다. 현재는 개별 기업마다 이 구조를 새로 짜야 해서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지역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지역 생태계를 잘 아는 기초지자체의 출자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중앙정부나 대기업 중심의 출자자들은 지역 소셜 벤처 투자의 필요성을 직관적으로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아가 재무적 평가에서 불리한 지역 기업들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들이 창출하는 비재무적 가치를 화폐화해 보상받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윤훈섭 제너럴파트너는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는 일본의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소개했다. 일본은 2018년 휴면예금 활용법 시행과 2021년 기시다 당시 총리의 시정 연설을 기점으로 시장 규모가 급증했다. 대형 증권사와 은행 등 주류 금융권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초기 벤처 투자에 집중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채권과 상장 주식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윤 파트너는 이러한 양국의 차이점을 바탕으로 서로의 강점을 배우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9월 일본 고베에서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 2026'을 열고 한일 양국 투자 기관의 전략적 교류를 이끌 예정이다.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윤훈섭 제너럴파트너는 일본의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소개했다. ⓒ 정진영
지역 인프라 구축과 자조기금... 현장에서 싹트는 혁신
거대 자본이 필요한 지역 인프라 구축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현장의 자조적인 움직임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한국사회연대경제연구소 김기태 소장은 에너지 전환과 통합돌봄 분야를 지목했다.
이 분야는 막대한 금융 수요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동네 단위 재생에너지 1MW 발전소를 세우려면 약 15억 원이 필요하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위한 핵심 시설인 '중간집(지역사회 복귀를 돕는 임시 거처)'을 지으려면 부지 비용을 포함해 프로젝트당 최소 30억 원에서 50억 원 이상이 들어간다.
김 소장은 "사회적 금융 없이는 하드웨어 인프라 구축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별 기업을 넘어 업종별 사업연합회를 구성하고, 상호금융 대출과 사회적 투자를 결합하는 큰 그림을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역 차원의 과감한 목표도 눈길을 끌었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최현수 이사는 2030년까지 안산 시민 10만 명을 사회연대경제 조직으로 모아내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그 중심에는 재생에너지 사업이 있다. 2030년까지 100MW 규모의 발전 기지를 건설해 수천억 원의 기대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지역사회와 나눈다는 구상이다. 당장 올해는 3MW 발전소 건립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최 이사는 잦은 정치 지형 변화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5억 원 규모의 자체 자조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다.
주민신협 이현배 이사장은 굵직한 사회적 금융을 실행하기 위한 신협의 고민을 털어놨다. 주민신협은 최근 실물 경제 중심의 지역 금융을 지향하는 세계 가치기반은행 네트워크인 GABV(Global Alliance for Banking on Values)에 가입했다. 이 이사장은 신협의 철학과 GABV의 방향성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행법이 신협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법인에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타법인 출자'가 수년째 국회에 묶여 있어 규모 있는 지역 자산화나 연대 기금 조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법 개정을 통해 신협이 지역의 진정한 소셜 파이낸스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치 측정부터 조례 개정까지, 구체적이었던 질의응답

▲주제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왼쪽부터 사회적협동조합 우리함께 최솔비 국장(사회), 엠와이소셜컴퍼니 김정태 대표, 주민신협 이현배 이사장, 한국사회연대경제연구소 김기태 소장의 모습. ⓒ 정진영
발표 직후 이어진 질의응답 세션에서는 현장의 구체적인 고민이 오갔다. 뜨거운 화두는 '사회적 가치 측정'이었다. 자금을 대는 기관마다 측정 기준이 달라 혼란이 크다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한국사회연대경제연구소 김기태 소장은 "한국에는 일종의 표준 강박증이 있다"면서, "그동안 정부 주도가 많아서 사회적가치지표(SVI)가 부각됐지만 사회적 금융이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지면 각각에 맞는 요구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을 공급하는 곳에 따라서 그 기준이 다양하게 정해지는게 자연스럽다는 의미다.
이어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제정되면 모든 사회연대경제 기업을 대상으로 행정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공통 조사 작업을 기본으로 하고 이 정보가 다양한 사회적 금융 기관들에게 제공돼서 각각의 미션이나 업종에 맞는 사회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엠와이소셜컴퍼니 김정태 대표 역시 결국 자금 공급자(펀더)의 선택이 핵심이라고 짚었다. 그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는건 오히려 긍정적이고 그중에서 무엇이 쓰일지는 우열의 문제는 아니고 결국에 펀더가 결정할 것"라고 말했다. 막연한 사회적 성과만으로는 투자자의 지갑을 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조언이다. 이어 "화폐화로 측정된 성과를 누군가와 거래할 수 있는 '성과 기반 금융' 방식에도 좀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신협 이현배 이사장은 캐나다 퀘벡의 사례를 들며 가치 평가의 시각을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방학 기간에 직접 협동조합을 창업하게 하고 그 과정을 코칭하며 성과를 내도록 돕는 사회성과보상사업(SIB)을 소개했다. 당장의 재무적 잣대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진로를 개척해 나가는 장기적인 과정을 사회적 가치로 인정하자는 취지다. 보다 긴 호흡의 가치 평가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기초지자체의 펀드 출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지방의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됐다. 질문자로 나선 이상훈 서울시의원은 "법적인 권한을 갖고 안건을 심의해야 되는 기회가 오지 않는 한 지방 의원들이 사회적 금융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정말 없다"며, 사회적 금융 활성화를 위해 지방의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정책적 역할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김정태 대표는 지자체가 벤처 펀드에 출자하려면 조례 개정이 필수적인 만큼 의회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면서 경북 청도군의 첫 출자 사례를 소개했다. 김 대표는 우선 "'사회적 금융'이라는 단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전제를 깔았다. 청도군에서는 청년 인구 유출 방지와 지역 활력이라는 명분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청도 군수와 몇 차례 만났고 재원을 어디서 가져올지를 고민하고 지자체 출자를 위해 의회의 의결을 받는 과정이 8개월 정도 걸렸는데 생각보다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놀랐다"면서, 이 과정에서 의회의 역할이 정말 중요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새 정부에 대한 현장의 기대, 정부는 '통합 지원 체계 구축' 약속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하승창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현장이 함께 노력해 온 결과가 법이나 제도로 조금 더 확장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며 새 정부 사회연대경제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 정진영
행사 현장에서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표출됐다. 한국사회연대경제 김경민 공동대표는 "사회연대경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제시될 정부의 새로운 역할과 비전에 대해 현장의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사회연대경제 현장에서 금융 문제는 소외감을 크게 느껴온 영역"이라면서,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공공과 민간, 지역을 연결하는 튼튼한 인프라를 조성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하승창 이사장은 지금을 "현장이 함께 노력해 온 결과가 법이나 제도로 조금 더 확장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고 짚었다. 이어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통과되기 위해 정치적으로 결단하는 과정이 남았다며, "국회와 정부가 제도적 기반을 확실히 다질 수 있도록 우리도 힘을 모으고 여론을 만들어서 공감대를 확장해 나가는 막바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사회연대경제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이러한 기대에 화답했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이방무 사회연대경제국장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22대 국회에서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반드시 제정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각 부처로 분절된 사업을 모아 통합 지원 체계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정책으로 에너지와 소득을 묶은 '햇빛소득마을' 2500곳 조성과 통합돌봄 사업 참여 기회 확대 등을 제시했다. 윤 장관은 사회연대경제를 향해 "사람의 삶을 회복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힘"이라며 지지를 보냈다.
한편, 이날 행사 마지막 순서로는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박정환 기반조성부장이 2026년 지방선거에 대응할 9대 정책 요구안을 발표했다. 지자체 사회연대경제기금의 목적 명확화, 중순위 출자를 통한 촉매 자본 공급, 전용 특별 상품 개발 등이 포함됐다. 중앙의 자금이 지역 현장까지 막힘없이 흘러갈 수 있도록 튼튼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자는 것이 핵심 골자다.
'2026 사회적금융 써밋'의 발표자료는 행사 웹사이트
(누르면 연결)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2월 24일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6 사회적금융 써밋’에 많은 현장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셜임팩트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