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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15 17:44최종 업데이트 26.03.04 10:09

<할매>는 '민담 리얼리즘'의 계보에 있는가?

<할매> 황석영 작가와의 만남에 대하여

지난 12일 군산 한길문고에서 황석영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의 새로운 장편소설 <할매>가 출간된 지 두 달이 지났으나 세간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현재 군산에 거주하고 있는 황석영 작가가 군산시립도서관 북토크(1월 22일)에 이어 두 번째로 시민과 만나는 자리였다. 두 행사 모두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음은 물론이다. 작가는 두 시간을 꽉 채워 폭넓은 말씀을 들려주었다. 그가 수십 년간 최전선의 역사 현장을 살아온 세계적인 작가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좌중은 그의 입담에 폭소를 터트리기도 했고, 현실을 읽어내는 날카로운 분석에 집중하며 몰입하기도 했다. 늦은 시간이었으나 작가는 행사 후 길게 늘어선 청중 하나 하나에게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해주었으니 사인을 받고 팬심을 담은 기념촬영까지 할 수 있었던 한길문고 작가와의 만남의 열기는 대단히 뜨거웠다.

황석영 작가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류보선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문학평론가이자 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독자와 작가, 그리고 작품을 연결하며 질문들을 이어갔다. 그중에서 황 작가도 '내가 기다리던 중요한 질문'이라며 응답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날의 만남을 전달하고자 한다.

<할매>는 '민담 리얼리즘'의 계보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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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보선 교수는 <할매>의 형식을 '비근대 혹은 탈근대의 서사시'라고 이름했다. 그는 저명한 문학 이론학자 프랑코 모레티가 말한 '근대의 서사시'를 빌려온 말이라면서 대중강연에 전문용어를 가져온 것을 사과했다. 팽나무의 600년을 담아낸 원고지 600매의 산문에는 시적 감수성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근대'라는 서구 중심적 사고방식과 전혀 결을 달리하는 작품이었기에 '근대가 아닌' 혹은 '근대에서 벗어난' 것으로 비틀기 위해 모레티의 표현을 끌어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많은 독자가 알고 싶어 했던 질문이었다. 대부분의 독자는 인간 등장인물은 없이 새와 나무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첫 부분을 읽으면서 당혹감을 느낀다. 그만큼 <할매>가 여느 소설과 달랐기 때문이다. <할매>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줄거리 파악에서 멈춰버리면 이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어떤 내용이 '어떻게' 담겨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 때문에 작품의 형식과 방법에 대해 묻는 질문을 작가 자신도 기다려 왔던 것이다.

류보선 교수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손님>(2001년), <심청>(2007년), <바리데기>(2007년)에는 그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는 다른 흐름이 있다. <철도원 삼대>(2020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 특성을 작가는 '민담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할매>는 그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비약 혹은 의도적인 단절로 보이는데, 이 작품 역시 민담 리얼리즘의 계보를 잇고 있는가?

서사를 담는 그릇도 달라진다

황석영 작가는 등단부터 <무기의 그늘>(1985)까지 이어지는 전반기 문학에서는 전형적인 서구식 리얼리즘의 규범을 철저하게 따른다. 3인칭, 단문, 객관적인 문체, 냉정한 묘사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세계가 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후 자신의 소설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사를 담는 자신의 '그릇'을 바꿀 것이며, 그로 인해 그 안에 담기는 '음식'도 바뀌게 될 것임을 알았다.

류보선 교수가 거론한 후반기 작품들은 그러한 실험에 해당한다. 괴테가 '세계문학'이라고 천명한 유럽 중심주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를 변방으로 두었고, 비유럽의 문화전통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했다. 우리는 서구의 보편성을 '신문학'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때까지 쌓아왔던 문학적 전통을 끊어버렸다. 황석영 작가는 <장길산>(1974-1984)을 집필하면서 익혔던 토박이성을 토대로 형식 실험을 계속해 왔고 <철도원 삼대>에 이르러 '민담 리얼리즘'이라는 그릇을 찾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민담과 역사가 있다

<철도원 삼대>에는 죽은 사람이 산 사람과 대화하고 그들의 삶에 관련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이것을 20세기 초중반에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친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제국주의에 짓밟힌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뿌리를 제국주의의 언어-스페인어로 직접 발화하는 것은 강력한 영향력을 뻗치게 했지만, 이것은 곧 그들의 한계이기도 했다. 토박이(인디오)의 언어는 말살되었고 토박이는 사회적으로 최하층으로 전락하였기에 직접 불러올 과거가 없어 그들의 문학은 '마술적'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우리의 과거는 생생하게 살아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동네마다 집안마다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동학농민운동 등의 이야기가 살아서 전해진다. 모두가 내 이야기로 책 한 권은 쓸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서사가 넘쳐난다. 역사로 선별되기 전에 펼쳐지는 민담의 세계가 우리의 문학적 근거가 된다. 비록 역사라는 엄처시하에서 벗어나서 작가로서의 자유를 누리고 싶은 열망도 있으나 황석영은 이러한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세계는 문명의 과도기에 있다

황석영 작가는 지금 세계 문학이 완충지대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그가 베를린 장벽 붕괴에서 처음 보았던 대로 서구 중심의 근대적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토대로 한 프랑스의 철학자 라캉의 경우처럼 현대 서양 철학은 더이상 절대적이며 유일한 자아와 주체를 찾지 않는다.

존재는 유동적인 것이며 기후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전 세계의 일상이 변하고 있음을 모두가 보게 된 것이다. 앞으로 AI로 인해 세상은 더 달라질 것이다. 노동과 자본의 성격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어떤 삶의 시스템으로 살게 될지를 결정하지 않았기에 지금 우리는 현대 문명의 과도기에 있다. 황석영 작가는 이 빈터에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함께 새로운 문화이념의 장을 건설하고자 한다.

그것이 최근 출범한 칼라(KAALA: Korea with Asia, Africa and Latin America)문화재단이다. 냉전 시대에 제3세계로 분류되었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국가 문인들의 작가회의체인 알라(AALA)가 있었다. 알라에서 수여하는 로터스상은 서구 중심의 노벨상과 달랐다. 우리나라는 1975년 유신독재에 맞서다가 투옥된 김지하 시인이 팔레스타인의 가산 카나파니와 공동수상하면서 관계를 맺었으나 1980년대 이후 국제 정세가 달라지면서 알라는 거의 명맥만 유지하게 된다. 자신을 문예반이 아닌 문예운동반이라고 부른 황석영 작가는 늘 최전선의 현장에서 움직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 군산에서 <할매>를 집필하고 칼라를 구상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황석영 작가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일상'이라고 했다. 한때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붐을 이뤘던 중남미 문학이 그 한계를 벗어나 생생한 일상으로 다가가기 위한 포스트 붐에 몰두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대인과 함께하는 일상에 모든 역사가 담겨 있다. 거대담론만으로는 역사가 어디서 시작했으며,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강조했다.

'일상'이라는 화두

제1회 칼라 페스티벌이 개최될 군산에서 일상을 사는 시민으로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칼라는 여느 국제행사, 여느 문화행사와는 내포한 의미의 차원이 다르다. 태풍의 소용돌이 정중앙에 놓인 것과 같았다. 고요해 보이지만 인류 문명사가 전환하는 엄청난 의미를 담은 순간을 바로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곳이 최전선의 역사적 현장인 것이다. 국가 단위, 아니 국제 단위의 관심이 집중되는 자리다. 군산시와 전라북도는 세계사적 현장을 감당하는 책임감을 기꺼이 짊어지고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세상을 사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 황석영 작가는 소설의 '그릇'을 바꾸었다. 소설을 읽는 내 일상을 담는 '그릇'은 바꾸지 않아도 될까?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달라질 것이다. 막을 수 없는 재난 수준의 기후위기, AI 등 기술발전으로 변화된 노동과 자본으로 인해 나의 일상도, 일상을 담는 그릇도 변할 것이다. 황석영 작가는 달라진 '그릇'에 인간이 아닌 비인간- 새와 나무의 이야기를 먼저 담았다. 생명의 가치를 붙들면서 갯벌과 팽나무를 지키는 인간의 일상을 소설의 마지막 내용으로 담았다.

이 소설은 나의 일상에 어떤 그릇이 될까. <할매>의 실제 주인공 하제마을 600년 팽나무를 지키는 팽팽문화제가 한 달에 한 번 하제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다음 팽팽문화제는 2월 21일 토요일 오후 2시다. 이곳을 나의 일상에 담아보는 것으로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제61회 팽팽문화제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를 지키는 팽팽문화제에서 문정현 신부가 말씀하고 계시다. 그는 <할매>의 주인공 유방지거 신부의 실제 모델이다.
제61회 팽팽문화제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를 지키는 팽팽문화제에서 문정현 신부가 말씀하고 계시다. 그는 <할매>의 주인공 유방지거 신부의 실제 모델이다. ⓒ 김규영

제62회 팽팽문화제 2026년 2월 21일 군산 하제마을에서 제62회 팽팽문화제가 열린다.
제62회 팽팽문화제2026년 2월 21일 군산 하제마을에서 제62회 팽팽문화제가 열린다. ⓒ 팽팽문화제

덧붙이는 글 | <할매> 리뷰 기사

<책 덮고 허탈한 마음, 하루살이 한 쌍이 붙들었다> https://omn.kr/2gmw0
< 새 한 마리가 되어 읽는 책, 첫문장을 곱씹어 보세요> https://omn.kr/2grmq


#황석영#할매#하제팽나무#민담리얼리즘#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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