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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군이 아닌 엡스타인 파일을 풀어라!" 엡스타인 파일 공개를 촉구하는 시위자
"연방군이 아닌 엡스타인 파일을 풀어라!"엡스타인 파일 공개를 촉구하는 시위자 ⓒ 이순영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엡스타인 사건은 그저 단순히 한 억만장자의 미성년 성착취 범죄가 아니다. 정계 인사 성접대, 다단계 수법의 알선책(다른 여자를 데리고 오면 돈을 주는 방식)이 동원된 악질 중의 악질인 성범죄인데 권력과 돈이 얽혀 공범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피해 생존자들이 용기 내 목소리를 내어 법적 조치를 취했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국민을 위해 정의를 구현해야 할 법무부는 이 사건이 엡스타인의 단독 범죄가 아님을 알면서도 범죄를 은폐하고 있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렇게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체제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주는 엡스타인 사건은 미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다가 작년 11월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안'에 따라 법무부가 파일 공개를 시작하면서 11일(현지 시각) 미 법무부 팸 본디 장관의 청문회에서 이 사건이 핵심 쟁점 사항이 되었다. 4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청문회에서 책임 회피와 질문자에 대한 인신 공격으로 일관했던 본디 장관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20년 넷플릭스에 공개됐던 다큐멘터리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가 다시 넷플릭스 탑 10에 오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제프리 엡스타인 : 괴물이 된 억만장자 엡스타인 사건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최근 다시 넷플릭스 탑 10에 오르며 주목을 받고 있다.
제프리 엡스타인 : 괴물이 된 억만장자엡스타인 사건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최근 다시 넷플릭스 탑 10에 오르며 주목을 받고 있다. ⓒ 넷플릭스

엡스타인은 어떻게 억만장자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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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타인이 억만장자가 된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런데 타워스 금융회사 CEO로 월가의 거물급이었던 스티븐 호펜버그는 자신이 진행했던 폰지 사기(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다단계 사기 수법)에 엡스타인이 가담했다고 밝혔다. 호펜버그와 엡스타인의 만남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엡스타인은 유럽의 한 기업에 고용된 상태였다. 그 기업의 사장은 엡스타인이 월가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능력이 있고 엄청난 에너지가 있지만 도덕성이 엉망인 까닭에 유럽과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 미국인인 호펜버그에게 엡스타인을 소개해줬다. 당시 엡스타인은 지출 경비를 부풀려 돈을 챙기는 방식으로 이득을 취해 왔다.

호펜버그는 이러한 배경을 가진 엡스타인에게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엡스타인은 기업 범죄에 적격이었고 그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가짜 재무제표로 자사의 가치를 불려 새 투자자를 유인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주가 조작을 하고 불법으로 증권 거래를 해 부를 증식했다. 하지만 이는 법망에 걸리고 말았고 처벌은 호펜버그만 받았다. 호펜버그는 연방 법원에서 징역 20년을 받았지만 엡스타인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엡스타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행사해 호펜버그의 형량을 더 늘릴 인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후 엡스타인은 아베크롬비, 빅토리아 시크릿으로 유명한 리미티드 회사의 레슬리 웩스너를 만난다. 그렇게 그의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굴려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방식으로 관리했다. 하지만 엡스타인은 웩스너의 자금 4천 6백만 달러를 훔쳤다. 웩스너는 그를 교활하고 타락한 인간이라고 말하며 그와 가까이했던 것이 수치스럽다고 공개 석상에서 밝혔다. 그렇지만 엡스타인을 고소하진 않았다.

개인의 범죄가 사회의 망가진 시스템을 드러내다

엡스타인은 그의 연인 길레인 맥스웰과 함께 이성적 판단력 없는 어린 소녀들에게 마사지를 하면 200달러를 준다는 말로 유인했다. 특히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거나 가난한 아이들의 약점을 이용, 그 관계를 지속했다. 미 법무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엡스타인의 첫 피해자는 1994년 미시간주에 있는 세계적인 예술 명문 고등학교 인터라켄 여름 캠프에 참가했던 13세 소녀였다.

뉴욕 태생인 엡스타인은 뉴욕에서 자라고 그곳에서 활동했다. 1967년 인터라켄 여름 캠프에 참가했던 엡스타인은 억만장자가 된 후 인터라켄에 기부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한다. 이때 쉬는 시간을 이용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한 여학생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플로리다에서 온 것을 알자, 플로리다에 있는 마리라고 저택으로 초대를 한다. 그렇게 그녀는 엡스타인의 첫 희생자가 되었고 이후 뉴욕에 있는 엡스타인의 타운하우스, 뉴멕시코에 있는 목장 등에서 수년간 성적 학대를 당했다. 이 사건의 문건에는 그녀가 도널드 트럼프를 만난 내용도 담겨 있다(해당 문건 : https://upnorthlive.com/resources/pdf/3be6eac8-39d5-498e-84ba-cd519695c74c-DOJEpsteinFile.pdf#toolbar=0&navpanes=0&scrollbar=0).

이런 식으로 엡스타인과 그의 공범자들에게 성착취를 당한 피해자들은 1000명이 넘는다. 이들은 신체적·정신적 트라우마와 고통으로 피폐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자해를 했고, 마약에 빠졌다. 사건의 피해자이자 핵심 증인이었던 버지니아 주프레는 작년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도 피해 사건이 접수되자 엡스타인은 자신을 고소한 피해자에게 접촉해 그들을 위협하고 피해자의 변호를 맡은 변호인과 그 가족을 감시하고 위협했다. ​이 때문에 사건의 진행이 더뎠고 심지어 그가 기소된 다른 모든 주 검찰 및 연방 검찰의 혐의에서 면책권을 받기도 했다. 정부가 범죄자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미성년 소녀들을 외면한 채 권력과 부의 편에 서서 그가 법망을 피해갈 수 있도록 오랜 시간 도운 것이다.

결국 재판은 시작되기도 전에 합의에 의해 끝났다.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발언할 기회조차 박탈당했으며 정부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가해자의 형량을 낮추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엡스타인은 2008년 플로리다 주 법원에서 아동 매춘 알선, 매춘부 알선 혐의로 유죄 판결 받고 18개월 징역, 성범죄자 등록, 30여 명의 피해자에게 배상금 지불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 과정 역시 검찰은 엡스타인에게 불기소 합의를 부여한 사실을 피해자들한테 통보하지 않았다.
엡스타인과 트럼프의 연결점 한 시위자가 "타이레놀 연구는 엡스타인과 트럼프 사이에 불안한 연결점을 찾았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9월에 기자 회견을 열어 "임신 초기 타이레놀 복용하면 아이의 자폐증 위험이 커진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엡스타인 논의를 잠재우기 위한 의도라는 개인의 해석을 담고 있다.
엡스타인과 트럼프의 연결점한 시위자가 "타이레놀 연구는 엡스타인과 트럼프 사이에 불안한 연결점을 찾았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9월에 기자 회견을 열어 "임신 초기 타이레놀 복용하면 아이의 자폐증 위험이 커진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엡스타인 논의를 잠재우기 위한 의도라는 개인의 해석을 담고 있다. ⓒ 이순영

엡스타인에게 유죄 판결은 무의미해 보였다. 복역 기간에도 개인 병동에 수감, 주 6일 12시간 노역 방면이 허용되는 혜택을 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13개월을 복역한 뒤, 1년간 가택 연금 보호 관찰 중에도 전용기를 이용해 여행하는 것도 허용됐다. 그야말로 엡스타인 사건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실사판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엡스타인은 생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받은 처벌은 그 누구보다 엄중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뉴욕의 경우 미성년자 매춘부에게 성매매 알선은 벌금 100달러에 불과한 경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무단횡단에 준할 정도로 가벼운 것이라는 파렴치한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한다. 엡스타인의 이 발언은 부도덕이 어떻게 무도덕이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게 미성년 소년 성매매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엡스타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회로 복귀했다. 그러나 2019년 미투 운동(Me Too Movement : 성폭력 피해 사실을 사회적으로 고발)이 미 전역에 번졌을 무렵 그는 여러 건의 고소를 당했다. 뉴욕 경찰은 자택 수사를 통해 사진과 영상 증거물을 확보했고 엡스타인은 또다시 감옥에 수감된다. 그리고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엡스타인의 죽음으로 사건이 종결되지 않은 이유는 이 사건이 개인의 범죄 사실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닌 사회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스타인 파일 공개를 촉구하는 시민 작년 10월에 열린 대규모 반 트럼프 시위에서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라는 팻말을 들고 거리에 나선 시민
스타인 파일 공개를 촉구하는 시민작년 10월에 열린 대규모 반 트럼프 시위에서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라는 팻말을 들고 거리에 나선 시민 ⓒ 이순영

범죄자는 그의 신분과 권력에 상관없이 법의 비례의 원칙에 맞게 범죄 사실에 준하는 처벌을 받아야 하고 피해자는 국가로부터 법적 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엡스타인 사건은 미국의 법과 제도가 권력과 돈 앞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얼마나 심각하게 망가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엡스타인의 단독 범행이 아닌데도 엡스타인과 맥스웰 이외에 이들과 관련된 그 어떤 사람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엡스타인이 죽었다고 해서 이 사건이 종결된 것이 아니다.

엡스타인 파일,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작년 11월 하원 감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공개한 엡스타인 메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1년 4월 엡스타인이 길레인 맥스웰에게 보낸 메일에서 "(트럼프와) 내 집에서 함께 몇 시간을 보냈다"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아직 짖지 않은 개(신분이 드러나지 않은 것을 의미)는 트럼프라는 것을 알아두기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맥스웰은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또한 2015년 언론인 마이클 울프와 주고받은 메일에서는 트럼프한테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물을 예정인 CNN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답변을 준비해야 하느냐고 조언을 구한다. 이에 울프는 그가 스스로 걸려 들게 나두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한다. 이것이 엡스타인에게 귀중한 정치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란 판단에서였다. 울프는 만약 트럼프가 비행기(엡스타인의 성매매가 이뤄졌던 그의 개인섬에 가기 위한 전용기)를 탔거나 집에 간 적이 없다고 발뺌을 하면 이를 가지고 당신에게 이득이 될 방향으로 그를 걸려들게 하거나 그가 대선에서 이길 것 같으면 그를 구해주고 빚을 지게 만들 수 있다고 답했다.

2016년 엡스타인은 울프에게 "트럼프가 (피해) 소녀들을 알고 있었다. 길레인에게 그만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반면 엡스타인은 2010년 트럼프와 친분이 있냐는 인터뷰 질문에 그렇다고 밝히고, 그와 함께 미성년 소녀들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미국 수정헌법 제 5조를 언급하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엡스타인 파일은 공개됐고 이로써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이것이 민주당의 사기극이 될지 아니면 트럼프가 얼마나 더러운지 알고 있다며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은 나다"고 했던 엡스타인의 발언이 실현될지 두고 볼 일이다.

#엡스타인#제프리엡스타인#엡스타인파일#트럼프엡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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