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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산(白華山)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곳으로,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에 걸친 해발 1063미터의 명산이다. 겨울철 눈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하얀 천을 덮어 씌운 듯하다 하여 '백화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12일, 벗들과 백화산에 올랐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는 하나, 해발 1000미터 산골의 추위는 손이 얼얼하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만만치 않았다. 하늘 아래 첫 동네로 손꼽히는 분지리 안말 들머리에서 오르막을 치며 한참을 걷고 또 걷다 보니 백화산 꼭대기가 보였다.

백화산의 두 얼굴

백화산의 두 얼굴 북사면인 왼쪽은 상고대가 하얗게 피었고, 남사면인 오른쪽은 머지 않아 봄이 올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백화산의 두 얼굴북사면인 왼쪽은 상고대가 하얗게 피었고, 남사면인 오른쪽은 머지 않아 봄이 올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 신정섭

순간, 심장이 멎는 듯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백화산 봉우리는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산 몸뚱이는 하나인데 계절은 둘이었다. 아니, 어머니 계절이 아이 둘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북사면은 눈처럼 하얀 상고대가 피었고, 남사면은 벌써 봄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눈을 들어 백화산의 왼쪽을 보았다. 여기도 야누스의 얼굴이 있었다. 장쾌하게 펼쳐진 산등성이 너머 흰 눈이 끝나는 지점 뒤편으로 우뚝 솟은 주흘산(主屹山, 해발 1108m)이 보였다. '산 우뚝할 흘(屹)' 한자가 말해 주듯이, 주흘산은 '우두머리가 의연한 산'으로 문경새재의 주산으로 손색 없었다.

백화산 오르는 길 백화산 왼쪽으로 펼쳐진 야누스의 얼굴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상고대가 끝나는 지점 바로 뒤편으로 주흘산이 보인다.
백화산 오르는 길백화산 왼쪽으로 펼쳐진 야누스의 얼굴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상고대가 끝나는 지점 바로 뒤편으로 주흘산이 보인다. ⓒ 신정섭

고개를 들어 더 왼쪽을 바라보니, 백화산에서 황학산(黃鶴山, 해발 1111m)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로 소백산맥 줄기에 솟은 산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으로는 조령산(鳥嶺山), 가운데는 부봉, 그 오른쪽으로는 주흘산, 이제 야누스의 얼굴은 사라졌지만 파란 하늘 아래 그곳은 피안(彼岸)처럼 느껴졌다.

백화산 오르는 길, 지금이 어느 계절인지 자꾸 헷갈렸다. 왼편으로는 얼음과 눈꽃이 차가웠고, 오른쪽으로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살짝이나마 온기가 느껴졌다. 문득, 인생이 백화산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둡거나 밝고, 춥거나 따뜻하고, 슬프거나 기쁘고,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결국 한 몸에 있다는!

백화산 능선 너머 소백산맥 백화산에서 황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로 소백산맥 줄기에 솟은 산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부터 조령산(鳥嶺山), 부봉, 주흘산 모두 압권이다.
백화산 능선 너머 소백산맥백화산에서 황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로 소백산맥 줄기에 솟은 산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부터 조령산(鳥嶺山), 부봉, 주흘산 모두 압권이다. ⓒ 신정섭

"나의 행복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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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동계올림픽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획득하며 역대 최연소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딴 최가온 선수를 보라. 최 선수는 지난 13일(한국 시각) 첫 번째 경기에서 공중 세 바퀴를 도는 캡텐을 선보이다가 하프파이프의 가장자리에 걸려 머리부터 떨어지는 불운을 겪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3차 시도에서 자신의 우상 클로이 김을 넘어서며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를 두고 '투혼의 기적'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기적은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말한다. 고등학생 선수 최가온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렸을지 생각하면, 이건 기적이 아니라 피 나는 노력 끝에 피워 올린 꽃이다.

살다 보면 '왜 나한테만 이렇게 자꾸 나쁜 일이 생기는 거야?'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희로애락은 늘 함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끝까지 노력하는 자에게 불운과 실패는 봄 눈 녹듯이 사라지는 법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이 어느 소설에 쓴 말을 곱씹어 볼 일이다.

"나의 행복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너무 슬퍼서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불행인 줄 알고 내던졌었다."

#백화산#야누스#최가온#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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