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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27 09:28최종 업데이트 26.01.27 14:31

"능선 한 획, 바람 여백" 100대 명산 올라 쓴 '멋글씨'

[인터뷰] 청보리 김순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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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을 오르며 한글 멋글씨(캘리그라피)를 쓰는 작가가 있다.

'한글이 흐른다'라는 대표 글귀(해시태그)와 함께 자연과 한글의 만남을 기록하는 청보리 김순자 작가. 지난 24일 세종시 주요 행사에 참여하는 길에, 같은 지역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산과 한글, 그리고 예술로 흐르는 그의 생각과 삶이 이모저모 궁금했다.

김순자 작가는 1973년생으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서예를 배웠던 그는 디자인 작업에 직접 쓴 글씨를 접목하면서 자연스럽게 멋글씨의 세계로 들어섰다. 2013년경 멋글씨를 시작하여 '청보리'라는 호로 멋글씨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서예에서 멋글씨로, 그리고 산으로

한라산 정상에서 단독 한글 몸짓 공연을 한 김순자 작가 (2022년 3월 9일)
한라산 정상에서 단독 한글 몸짓 공연을 한 김순자 작가(2022년 3월 9일) ⓒ 민병수

"대전의 이화선 선생님께 캘리그라피를 처음 배웠어요. 이후 서예, 문인화 작가인 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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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 멋글씨 기행은 2021년 3월, 용봉산에서 시작됐다. "이왕 다니는 산을 인증하면서 우리 한글을 사람들과 소통하고 알리는 계기를 만들어 보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현재까지 약 83개 산을 인증했으며, 주로 남편과 함께 산행한다. 남편은 사진과 영상 촬영을 맡아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주고 있다. 산에서 어떤 글씨를 쓸지 처음에는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선택한 것은 산의 이름.

"산 이름을 쓰는 게 그 산을 나타낼 수 있고, 더 기억할 수 있어요. 산을 오르면서 그 이름의 느낌과 마음을 담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는 100대 명산이라는 숫자에 집중했던 초기와 달리, 이제는 산행의 의미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다니다 보니까 산에 오르는 게 기록이 아니라, 자연이 건네는 말을 한 획, 한 획 한글로 옮기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산의 능선이 획이 되고, 바람과 안개는 여백이 되고, 걸음마다 만나는 풍경이 한 글자 한 글자 숨이 되는 느낌이에요. 걷다 보면 글씨는 더 단단해지는데, 마음은 더 낮아지는 그런 느낌을 받곤 합니다."

'한글이 흐른다'

'산' 모양의 한글 멋글씨를 보여주고 있는 청보리 김순자 작가
'산' 모양의 한글 멋글씨를 보여주고 있는 청보리 김순자 작가 ⓒ 최형순

한글 몸짓 공연(퍼포먼스)을 하면서 작가의 대표 문구(시그니처)이자 꼬리표(해시태그)로 즐겨 쓰는 문구가 바로 '한글이 흐른다'이다. 이 작품은 현재 세종시 교육청 교육원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우수하고 아름다운 한글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에요.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이 많은 나라, 많은 사람들에게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작업으로는 '사라진 자음'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을 꼽았다.

"사라진 자음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우아한 소통을 나누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가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들, 효율성 때문에 버려진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듭니다."

사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옛 문헌에는 남아 았으니 '안 쓰는 글자'라고 해야 한다는 기자의 말에 김 작가는 '앗' 외마디 반응을 보였다. 김순자 작가는 세종시 나성동에 작업실을 두고 작가 활동, 강의, 그리고 각종 행사에서의 한글 몸짓 공연을 병행하고 있다.

한글 예술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다른 직업 없이 오롯이 한글로 사람들과 만나고, 작품으로 표현하고, 자연과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세종한글캘리그라피협회를 운영하며 회원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과 시대를 잇는 작업"

올해는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자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김순자 작가는 여러 계획을 준비 중이다.

"우선 세종한글캘리그라피협회 정기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가오는 삼일절을 맞아 독립운동가분들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담아오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이름을 담는 거예요."

특히 주목할 것은 세종대왕 어록 멋글씨 책 출간 계획이다.

"세종대왕 어록을 글씨로 담아 작년에 전시회도 했었는데, 이런 좋은 어록이 독본으로 나오면 좋겠다, 교과서 한 부분이라도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00대 명산 인증을 모두 마치면 특별전시도 꼭 하고 싶다는 그는 "한글에 온기를 담아 사람과 시대를 잇는 작업을 해나가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산의 능선이 획이 되고, 바람이 여백이 되는 곳에서 오늘도 청보리 김순자 작가는 한글을 쓴다. 그가 바란 대로 '한글이 흐른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대해 본다.

#한글멋글씨#캘리그라피#청보리김순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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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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