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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무대 위와 아래, 보여주고 싶은 것과 감춰야 할 것이 확실히 대비되는 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 위를 꿈꾸며 사는 이들이 그 아래에서 숨죽이고 살아가지만 한숨 돌릴 여유마저 허락되지 않아 결국 질식할 것 같은 곳이다."

지난달 24, 29일 양일 동안 기자와 메일을 주고 받은 박해남 교수(계명대 사회학과)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현대 서울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탈취한 신군부는 군사독재 말기 대중 회유책이자 선진국 진입을 명목으로 시민의 눈을 서울올림픽으로 돌려 이미지 메이킹에 나섰다. 이는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도 회자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것일까.

서울올림픽을 하나의 거대한 공연의 관점으로, 우리 사회의 형성 과정을 내밀하게 들여다본 <1988년 서울, 극장 도시의 탄생>(휴머니스트)에서 그 답을 찾았다.

서울올림픽, 시민을 '근면한 배우'로 서울은 거대한 '무대장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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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쓴 박해남 교수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을 진압한 신군부가 자신들이 부당하게 손에 쥔 권력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서울올림픽을 이용했다. 즉, 서울을 세계에 잘 보이기 위해 기획했다는 것. 그러면서 박 교수는 홉스의 사회계약이론에 빗대 서울올림픽을 '공연계약'이라 칭했다.

연출자로 나선 군인들은 일종의 도시경관이라는 미명 아래 사회 계급질서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노점상의 요구는 묵살했고, 주거권을 요구하던 철거민의 요구는 제한적으로만 수용했다. 가난에 치를 떨던 이들에게는 아파트라는 현대적 주거공간을 제공하며, 이를 올림픽 무대장치를 위한 위한 '자선 스펙터클'로 연출했다. 훗날, 이는 최신식 아파트와 빈민의 임대주택이 뒤섞여 계급질서가 나뉘어 고착화되는 촌극을 낳았다.

게다가 시민들은 올림픽을 위해 '건전하고 근면한 배우'로 훈육됐고, 서울은 거대한 '무대장치'가 됐다. 그렇게 서울은 '외국인 시선'을 내면화해 과시와 연출이 일상화된 극장도시로 탈바꿈했고, 이는 곧 '88년 체제'의 산물이 됐다.

박 교수는 "2024년 겨울부터 경험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혼란이, 앞서 88년 체제가 가져온 사회적 갈등과 분열 앞에서 얼마나 나약하고 취약한지 보여준다"며 "오늘날, 여전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갈등과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당시 88년 체제를 톺아보며, 여러 불편한 질문과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해남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집필 계기는.

"이 책은 2018년 제출했던 박사학위 논문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수정, 보완한 것이다. 그 문제 의식은 2000년대 후반 우리가 목격한 '사회의 붕괴'에서 출발했다. IMF 체제 이후 수많은 정리해고라는 살풍경과 동시에 한쪽에는 '부자되세요'라는 TV CF가 상징하듯 부동산과 주식 열풍, <마시멜로 이야기>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등 자기계발과 투자를 권하는 책도 이 시기에 많이 출간됐다. 그 가운데 2011년 가을 <경향신문>이 발표했던 '3포 세대' 개념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럴 듯한 대학을 나와 정규직이 되고, 결혼해 가족을 꾸리는 것을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삶이라 규정지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 없다. 당시 한국 사회는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탄탄한 제도적 안전망 대신 정상적인 삶에 기초한 강박적인 규범과 습속으로 유지돼 왔다. 어느 정도 경제성장 효과가 걷힌 2000년대, 위기가 닥치자 보호막 하나 없던 한국사회는 곳곳에서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나. 이 한국 특유의 '사회'는 어떤 경로로 언제부터 형성된 것일까 추적했다. 제도적 안전망 논의가 아닌,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창출하는 장치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접근하다 보니 88서울올림픽을 주목하게 됐다."

- 가장 눈에 띈 것은.

"그동안 일컬었던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삶의 외양이 만들어지는 모멘텀을 찾을 수 있었다. 서울올림픽은 백화점과 공원, 미술관 등 정상적인 삶의 외양에 필요한 요소를 도시에 배치하는 계기가 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상인지에 대한 대대적인 캠페인과 동시에 시민에 대한 감시와 처벌도 일상화됐다는 사실이다. 드라마도 한몫했다. <우리는 중산층>(1991)과 <말로만 중산층>(1991~92)이 방영된 것도 올림픽 직후였다."

 올림픽을 앞두고 진행된 재개발(옥수동)
올림픽을 앞두고 진행된 재개발(옥수동) ⓒ 박해남

경제 등 파급효과? 그것만으로 오늘날의 서울의 이면 설명 못 해

- 책에서 지적하는 '극장도시'는 기존 '메가 이벤트'나 '국가 주도 개발'과 비교할 때 어떤 차이가 있나.

"1980년대 이후 많은 이들이 서울올림픽을 '군사독재 정권의 탈정치화 수단' '우민화 수단'으로 불렀다. 1980년 5월, 참극을 연출한 신군부가 영화와 성산업과 더불어 대중을 우민화하고 탈정치화하기 위해 연출한 일종의 사기극이자 기만술이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관점이 2010년대 중반에 이르자 균열이 생겼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그 파급효과는 수십 년에 이른다는 '메가 이벤트론'이 학계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후 연구자들의 시선은 자연히 올림픽이 가져온 변화와 남긴 것들로 향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서울올림픽이 우리 사회에 남긴 '비가시적이고, 일상적인 다양한 변화'를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

- 기존 학계와 다르게 접근한다는 건 그만큼 관점의 차이도 요구됐을 텐데.

"그렇다. 그래서 이번 집필을 기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갔던 것이다. 여러 사회학자, 인류학자의 '공연론'을 많이 참고했다. 이것이 서울올림픽의 기획부터 마무리의 커튼콜에 이르기까지 재해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의 사회 이론과 극장 국가의 공연적 의례를 통해 권력 작동 원리를 밝힌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의 문화 이론을 활용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어떻게 변화하고, 사람도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사회학자가 말하는 도시성(urbanity),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영위하는 '도시적 삶'의 특징을 포착하고 이것이 앞서 말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삶의 규범과 어떻게 매칭되는지 하나하나 살펴 분석했다."

- 그런 서울을, 개인적으로 어떤 공간이라 느껴왔나.

"서울을 극장도시라 생각한 것은 개인적인 체험과 경험도 반영돼 있다. 내게 서울은, 그동안 '정상적'인 아이템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공간이었다.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좁기만 한 원룸이나 고시원 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곳. 그곳에서 생기는 불안과 우울을 견디기 위해 한강이나 박물관, 미술관 등 그럴 듯한 공간을 찾아다녔다. 이것들이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생겨난 것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서울이야말로, 무대 위 아래가 명확한 도시, 보여주고 싶은 것과 감추고자 하는 것이 분명한 도시라고 봤다. 동시에, 대학, 직장, 주택, 중산층으로 이어지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의 경로도 가장 잘 드러난다. 그러한 삶이 서울에서 생겨나 전시되고, 세계적으로도 소개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박해남 교수는 "개방적으로 보여도, 참가 자격과 관객과 연출자, 배우도 명확하다. 서울올림픽 연출자(군인)이 원하는 무대를 만들어 냈고, 시민의 목소리는 철저히 억눌렀다. 현실은 달랐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해남 교수는 "개방적으로 보여도, 참가 자격과 관객과 연출자, 배우도 명확하다. 서울올림픽 연출자(군인)이 원하는 무대를 만들어 냈고, 시민의 목소리는 철저히 억눌렀다. 현실은 달랐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박해남

초대 받은 이들만의 서울... 웃지 못할 마당극이었다

- '88년 체제'가 '87년 체제'(6월 민주항쟁으로 탄생한 제6공화국의 헌정 및 정치 체제)가 남긴 공백이자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사회적 갈등의 근원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1987년 민주화가 정치적 주체성(권리)을 획득하는 통로를 열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이 왜 '공연 계약'과 '과시의 습속'을 기반으로 하는 '88년 체제'로 채워진 걸까.

"87년 체제로 이제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고, 거리에서 발언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주권자인 국민이 제 권리를 확보했다고 볼 수 없다. 거리와 광장의 주권이 반드시 골목과 집, 일터로 이어지는 일상의 주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서울올림픽을 '마당극'이 아닌, '마당놀이'라 봤다. 마당극이 경계 없는 소통의 공연이라면 마당놀이는 방송국이 기획한 초대 받은 자만을 위한 공연이다. 개방적으로 보여도, 참가 자격과 관객과 연출자, 배우도 명확하다. 서울올림픽 연출자(군인)이 원하는 무대를 만들어 냈고, 시민의 목소리는 철저히 억눌렀다. 현실은 달랐던 것이다."

- 그 공연에 초대받지 못한 다수의 시민은 시민이 될 수 없었다는 얘기 같다.

"수없이 단속 당했던 노점상들의 생존권 요구는 처음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주거권을 요구했던 철거민들 역시 매우 제한적으로 수용됐다. 그리고 올림픽이 만든 주인공이라 여긴 이들이 중산층 아파트에 입주해 한국 발전 서사를 자신의 발전 서사와 동일시하며 스스로 또 다른 연출자가 됐다. 올림픽 이후 이들은 자신만의 미장센에 맞춘 도시 연출을 위해 노점도, 임대 아파트도 도시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요구했다. 그랬기에, 도시에 대한 권리는, 모두의 기본권이 아닌, 경제력으로 구매해야 하는 '제한적 시민권'으로 변질됐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결국 87년의 광장 주권은 88체제의 극장도시에 막혀 일상의 주권, 내 집과 골목의 주권으로 확장되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 군사정권이 서울올릭픽을 통해 시민의 습관과 도시 풍경을 바꾸려 했다고 썼는데.

"그걸 잘 보여주는 게 '한강개발 프로젝트'다. 전 세계에 비춰질 마라톤 경기의 주무대 역시 올림픽대로였고, 도심의 작은 집과 야트막한 빌딩을 모아 블록 단위로 대규모 빌딩을 올린 도심재개발 사업 역시 올림픽이 가져온 프로젝트였다. 그 과정에서 잠시 눈을 돌리면 보이는 산등성이에 자리했던 수많은 무허가주택, 그곳에서 살던 이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지은 달동네 등도 갑자기 재개발 1순위가 됐다. 명목은 자율이라 하더라도, 무대 연출자들은 '가시권' 중심으로 재개발을 추진했다. 외국인 시선이 머무는 곳이라면 어디든 말이다. 또 다른 시선에 노출될 곳을 미리 파악해 아파트를 지어 올렸다."

*[인터뷰②] 편으로 이어집니다.

 이 책은 서울올림픽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서사를 하나의 '공연'으로 바라보며, 올림픽이 서울을 '극장도시'로 탈바꿈시킨 과정을 추적한다.
이 책은 서울올림픽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서사를 하나의 '공연'으로 바라보며, 올림픽이 서울을 '극장도시'로 탈바꿈시킨 과정을 추적한다. ⓒ 휴머니스트

1988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 - 서울올림픽이 만든 88년 체제의 등장과 커튼콜

박해남 (지은이), 휴머니스트(2025)


#박해남교수#1988년서울#극장도시의탄생#서울올림픽#군사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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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식 (seoulpal)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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