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전·충남 국회의원 오찬 간담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대전·충남 지역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회동 이후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이를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정치권의 폭주'로 규정하는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같은 기류는 점차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8일 대전과 충남 지역 국회의원들을 만나 수도권 집중 문제 해결을 위해 대전·충남 통합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여기에 더해 "내년 지방선거에서 통합된 자치단체의 새로운 장을 뽑을 수 있도록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행정 조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대전·충남 시민사회는 물론 지역정가가 요동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는 19일 오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번 통합 추진 과정을 강하게 질타하며, 과거 지역 소외의 상징이었던 '충청도 핫바지론'을 다시 소환했다.
그는 "예부터 충청도를 '핫바지'라 야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라며 "그 말이 아직도 유효한가 싶다"고 밝혔다.
이어 "대전·충남 통합은 행정구역 조정 수준의 문제가 아닌 이 지역 주민의 삶의 조건, 재정 구조, 정치적 대표성, 지역 정체성까지 바꾸는 중대 결정"이라며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민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할 뿐이지, '통합하자'고 결정할 권한을 위임받은 적은 없다. 착각이다"라고 비판했다.
본래 솜바지를 뜻하는 '핫바지'는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당시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충청도가 핫바지냐"며 지역 소외감을 자극, 충청권 압승을 이끌어낸 정치적 키워드다. 이후 '충청도 핫바지'는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말로 지목돼 사실상 금기어가 됐다. 이를 진보 진영 교수가 다시 소환한 것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거대 양당과 중앙 권력이 지역 주민의 의사를 무시한 채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려 한다는 점을 꼬집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마카 수구리' 정치...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나"
박 교수는 민주당 의원들의 태도 변화도 정조준했다. 그동안 신중하거나 반대 입장을 보여왔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대통령의 통합 의지 표명 한마디에 일제히 찬성으로 돌아선 상황을 두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를 "전깃줄의 참새가 포수의 총 한 방에 '마카 수구리'(모두 엎드림을 뜻하는 경상도 방언) 하는 격'이라고 비유하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도 없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입장이 바뀌는 것이 과연 국민주권정부의 모습인가"라고 반문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순응하는 정치권의 모습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통합의 실익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박 교수는 "규모를 키우면 정말 경쟁력이 생기는가"라고 물으며, 통합이 가져올 대전으로의 집중 현상과 그로 인한 충남 외곽 지역의 소외 및 쇠퇴에 대한 대안이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대전·충남 통합이 신호탄이 돼 전국적인 행정통합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는 결국 "국민 세금을 동원해 초광역 인프라와 토건 사업을 밀어붙이고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오래된 토건국가의 레퍼토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주민 없는 통합, 숙의 없는 통합, 속도만 있는 통합은 통합이 아니라 폭주"라고 경고하며 "권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차분한 논의 과정을 밟을 것"을 촉구했다.
그는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로 문재인 정부 당시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사)지역재단 이사장, 충청남도 저출산고령화대책위원회 위원장,한국농업경제학회 회장, 희망제작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중앙 집권적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이 주체가 되는 '내발적 발전 전략'과 양적 성장(GDP) 중심의 국가 운영에서 탈피해 국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과 행복(GNH)을 중시하는 정책 전환을 촉구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