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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혐의로 재판정에 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혐의로 재판정에 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 국가기록원

"결국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는 한쪽을 희생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총구를 겨누었던 고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이 두 달 뒤인 12월 8일 군사법원 2차 공판에서 밝힌 '범행동기'다. 1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재판장 이재권 부장판사)는 당시 그의 실제 발언과 재판 공식기록인 공판조서의 내용에 차이가 있다는 변호인단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재판 녹음테이프의 증거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입수해 최초 보도한 봉지욱 전 뉴스타파 기자에 따르면, 해당 테이프는 법원 직원이 몰래 녹음한 것으로 추정된다.

변호인단은 이 사건 핵심 쟁점 '내란목적'을 벗기는 데에 이 녹음테이프가 결정적인 자료라고 보고 있다. "전창렬 증인(당시 군검찰)이 출석해서 조사할 때 내란목적으로 기소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피고인 김재규가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고 수사과정에서 진술했다고 말했다"며 "2차 공판조서에서도 '피고인은 대통령을 한다고 했지요'라는 질문에 '아닙니다. 저는 혁명가입니다'라고만 돼있는데, 녹취록에는 군검찰에서도 그렇게 말한 사실이 없다고 한 취지로 나온다"고 했다.

46년 전 김재규의 말

군검찰 "이러한 것이 끝났을 때,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전되고 그러고 난 다음에, 물론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선, 상황에 따라선 '내가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김재규 "그렇지 않다. 저는 (조사과정에서도) 말씀드리고 했지만, 저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절대 목적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 제 목적이다. 그리고 저는 독재가 싫어서, 독재를 타도하려고 혁명한 사람이다. (중략) 혁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통령과 저를 희생할 수 있지만, 제가 대통령을 하려고 할 정도로 저의 도덕관이 타락해있지 않다. 제가 해야 될 일은 혁명을 해서 성공하게 되면, 새로운 민주정부가 성립될 적에 민주정부를 옹호해야 될 책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기 대통령이) 저 아니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결국 이 사건에서 피고인 김재규가 어떤 생각으로 박정희를 살해했는지가 중요하다"며 "공판조서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했다'고 간단히 나오는데, 사실 목적과 관련된 부분은 (공판조서에서) 거의 삭제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피고인이) 2차 공판 때 박정희 살해 동기를 발언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법정에는 46년 전 김재규 부장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1972년 10월 유신 이전까지는 우리 대한민국은 건국 이념대로 자유민주주의를 해왔다. 그러나 1972년 10월 유신과 더불어 이 나라에는 자유민주주의가 말살됐다. (중략) 우리는 공산주의와 대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더 철저한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장점을 싹 다 말살해버리고, 독재를 가지고 공산주의와 대결해선 이길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불리한 입장이다. (중략) 오늘날 우리나라가 독재를 함으로써 건국 이후 가장 한미 간의 관계가 나쁘다. 그래서 내가 볼 때는 미국이 영원히 한국을 버리지는 않겠지만, 유신체제가 없어질 때까지 한시적으로는, 정책적으로 한국을 버릴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중략) 미국의 정책이 바뀐다면 또다시 6.25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중략) 특히 미국은 한국으로 하여금 독재체제를 하지 말고 민주주의 체제로 하라는 선의의 권고, 충고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 한국 정부는 강경해졌다."

김재규 부장은 법정에서 10.26사건의 결정적 동기로 박정희 대통령의 부마항쟁 발포 명령을 꼽았다. 1979년 10월 18일 부산에 계엄령이 선포되자 그는 직접 헬기를 타고 이동해 일반 시민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목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을 뿐이고, 서로 주먹밥 등을 나눠먹는 장면을 목격했고, 이 상황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사태가 더 나빠지면 발포명령을 내리겠다'고 반응했고, 차지철 경호실장도 부추겼다고 알려진 내용 또한 법정에서 재생됐다.

"각하 말씀은, 이 말은 밖에 안 나갔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내가 직접 쏘라고 발포명령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셔서. 그래서 '자유당 말에는 최인규와 곽영주라는 사람이 발포명령해서 총살됐지, 대통령인 내가 발포명령을 내리면 누가 날 총살하겠냐' 이렇게 말했다. 그다음에 차지철이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이나 희생시켰는데, 우리 대한민국에서 100만, 200만이 희생되면 문제될 거 있냐'고, 이러한 얘기가 나왔다. (중략) 이렇게 건의를 해도, 건의하면 하는 만큼 반대로 효과가 자꾸 났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중앙정보부장으로) 부임할 때는, 이 순리적인 방법으로 유신체제를 바꿔놓을 절호의 기회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급기야 '이것은 불가능이다.' 이런 답으로 돌아가버렸다."

"대의 위해 내 목숨 하나 버려야 한다 생각"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이승만 대통령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여겼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비교해봤다.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분은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아는데 우리 박정희 대통령 각하 성격은 절대 물러설 줄 모른다. 그러니까 참 국민과 정부 사이에 반드시 큰 공방전이 벌어진다. 그렇게 되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상할 수밖에 없다. (중략) 자유민주주의를 해야 될 나라가 독재하는데, 원천적으로 정부가 독재를 한다는, 해선 안 될 일을 저질러 놓고 '자유민주주의 하라' '독재체제 반대'하는 사람을 처벌하니, 완전히 이것은 적반하장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이것은 방법이 없다. 그런데 대통령 각하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이것은 숙명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결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려면 한 쪽이 희생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 아닌가. (중략) 나는 대통령 참모인 동시에 대한민국 고급관료다. 이 나라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충성할 1차적 임무가 있지 않나. 결국 나의 명예, 지위고 목숨이고, 대통령 각하와의 관계에 있어서 의리도 소의(少義)에 속한다. 대의(大義)를 위해서 내 목숨 하나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버렸다."

이 변호사는 "(박정희의) 발포 명령이나 차지철이 말한 캄보디아 300만 이런 내용은 (공판)조서에 전혀 기재돼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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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공판조서의 작성 경위 등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작성자인 김아무개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김지완 검사는 "김아무개라는 사람이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발견했다"며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의 재심을 하고 있고, 변호인들께서도 공판조서가 엉터리로 작성됐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상황에서 이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법정서기일 테고, 마침 생존해 계시다. 그 어떤 증인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동의하며 내년 1월 28일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재권 부장판사는 "변호인들 입장은 '(과거) 공판조서는 위법한 증거이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부정되어야 하고, 녹음파일과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인정해서 그걸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판사들은 그동안 공판조서를 상당히 중시 여겨왔다. (기존 공판조서가 문제인지 따져보려면) 저희들 생각으로는 김아무개씨 증언까지 듣고 나서 최종적으로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다만 김씨 증인신문날 변론을 종결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자 검찰은 "구형에 관해서는 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며 양해를 부탁했다. 검찰은 그동안 군사독재 피해자들의 형사 재심에선 무죄를 구형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재규 부장 사건은 내란목적 여부는 물론 1979년 10.19 비상계엄 선포 등 쟁점이 다양하기 때문에 무죄 구형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태다. 한편 재판부는 10.26사건 목격자 심수봉씨가 불출석 의사를 밝힌 점 등을 감안해 증인 채택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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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박정희#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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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 (sost) 내방

오마이뉴스 사회부 법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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