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계천 위에 설치된 한원석 작가의 신작 <환월(還月)>폐헤드라이트 600개를 이어 붙여 만든 ‘달항아리’ 조형물이 2025 서울 빛초롱축제의 밤을 밝히고 있다. ⓒ 한원석
연말을 향해 가고 있는 요즘, 청계천을 걷던 시민들은 뜻밖의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차갑고 어두운 겨울 밤, 물 위로 거대한 흰빛의 '달'이 떠오른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 표면은 매끈하거나 완전하지 않다. 곳곳에 긁히고 깨지고, 다시 이어 붙인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 달은 바로 설치미술가 한원석이 폐차장에서 모은 폐헤드라이트 600개로 빚어낸 신작 '환월(還月, Re:moon)'이다.
서울시가 주최하는 '2025 서울 청계천 빛초롱축제'의 주요 작품으로 선정된 '환월'은, 청계고가 해체 이후 땅속에 묻힌 '죽은 빛'을 다시 길어 올려 달항아리 형태로 재탄생시킨 작업이다. 청계천 위에 떠오른 새로운 달은 도시의 밤에 또 하나의 의미를 밝힌다.
빛초롱축제는 12일부터 2026년 1월 4일까지 청계천 일대에서 '나의 빛, 우리의 꿈, 서울의 마법'을 주제로 열린다.
"2006년에 이어, 다시 돌아오니 감회가 깊다"
한원석 작가는 이미 2006년 청계천에 폐스피커로 만든 첨성대 작품을 설치한 바 있다. 이번 전시를 둔 11일 한원석 작가와 전화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청계천은 나에게 특별한 장소"라며 이렇게 말했다.
"2006년에 청계천에서 첨성대를 선보였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다시 작품을 놓게 돼 정말 기쁩니다. 작품을 준비하고 있던 중 주최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영국 전시용으로 만들던 '달' 작업이었는데, 한국의 달을 청계천에서 시민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는 한국과 영국에서의 '달'을 비교하며 흥미로운 문화적 차이도 덧붙였다. "동양에서 달은 기도하고 소망을 비는 존재죠.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합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늑대인간이 떠오르는 어둡고 이성적인 이미지도 있죠. 저는 한국적 정서의 '달'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왜 '달항아리'인가… "완전해 보이지만 결핍에서 오는 아름다움"
'환월'의 형상적 모티브는 조선 영·정조 시기에 제작된 백자대호(달항아리)다. 이 달항아리는 일제강점기 해외로 반출되었다가 2007년 경매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온 '환수 문화재'라는 점에서 '회복'의 서사를 담고 있다. 한 작가는 달항아리가 가진 불완전성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달항아리는 완전한 원처럼 보이지만, 사실 흙의 무게 때문에 기울고 흔들리는 형태입니다.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동양적 가치와 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서양의 정복·발전의 미학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입니다."
그는 폐헤드라이트와 폐고무를 이용해 달항아리를 만드는 작업을 두고 '가마에서 달을 빚는 일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번 작업했던 공간은 큰 굴뚝이 서 있는 오래된 공장 마당이었어요. 저는 그곳을 '가마터'라고 불러요. 폐고무와 폐헤드라이트를 흙처럼 다루며 달을 빚는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달항아리를 만든다는 부담도 컸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달항아리는 전문가들도 쉽게 만들기 어렵습니다. 위와 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여야 하고, 형태가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저도 여러 번 실패했어요. 그래서 더 긴장했고… 완성했을 때 항아리 전문가분들이 '잘 만들었다'고 해주셔서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버려진 빛의 환생… "죽은 빛을 다시 살려내는 일"
폐헤드라이트 600개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부서진 헤드라이트는 흙처럼 굴곡과 표정이 있어요. 작업하다 깨지고, 붙이고, 다시 깨지고… 그 반복 자체가 이 작품의 서사였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폐고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폐고무를 쓸 때마다, 공장이 하나의 '가마터'처럼 느껴졌어요. 현대의 폐기물로 전통 도자의 정신을 다시 빚는 느낌이랄까요." 그는 버려진 사물의 '두 번째 생'을 믿는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사라져가는 것은 사물의 기능만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입니다. 죽은 빛을 달로 되살리는 작업은 결국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과정입니다."
새로운 계획을 묻자, 그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이번 작업으로 달항아리의 매력에 완전히 빠졌습니다. 다음에는 검정 도자기처럼 보이는 '검은 달항아리'를 만들고 싶어요. 고무로 만드는 아주 깊고 어두운 달… 너무 어렵겠지만, 완성했을 때의 기쁨을 알고 있으니 도전하고 싶습니다."
청계천에 뜬 이 거대한 달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버려진 빛을 다시 불러내어 도시 한복판의 물 위에 띄운, 회복과 환생의 메시지다. 한 작가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헤드라이트 조각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이동과 삶을 비췄던 빛이었습니다. 시민들이 '환월'을 보며, 버려졌던 것들의 두 번째 생과 우리의 회복 가능성을 함께 떠올리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2025 서울 빛초롱축제
기간: 2025년 12월 12일~2026년 1월 4일
시간: 매일 18:00~22:00
장소: 청계천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