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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금주(1920.12~2021.12.)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 추모 음악극 포스터.
이금주(1920.12~2021.12.)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 추모 음악극 포스터.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일제에 남편을 빼앗긴 아픔을 딛고 평생을 일제 피해자 인권회복에 바친 이금주(1920.12~2021.12.)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의 삶과 투혼이 음악극으로 펼쳐진다.

광주의 전문 음악인 단체 '라르브르앙상블'(단장 김수연)은 오는 14일 오후 3시 전일빌딩245 다목적강당에서 이금주 추모 음악극 '어디에도 없는 나라'를 무대에 올린다.

이번 공연은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주관하는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회장 4주기 추모제를 맞아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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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남편이 일본 해군 군속(군무원)으로 끌려가 남태평양 타라와 섬에서 사망하면서 일제강제동원 피해 가족이 됐다.

그는 1988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를 결성한 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규합해가며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며 법정 투쟁에 나섰다.

1992년 일본정부를 상대로 도쿄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소송(1992), 관부재판(1994), B·C급 포로감시원 소송(1995), 나고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1999),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2003), 일한회담 문서공개 소송(2006) 등 일본에서만 7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 6월 23일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 삼보일배 시위. 휠체어에 앉은 이금주 회장이 보인다. 당시 그의 나이 91세. 이 회장이 일제 강제동원 문제로 일본 시위에 나선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다.
2010년 6월 23일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 삼보일배 시위. 휠체어에 앉은 이금주 회장이 보인다. 당시 그의 나이 91세. 이 회장이 일제 강제동원 문제로 일본 시위에 나선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다.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2010년 6월 23일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 선 이금주 회장(맨 앞). 미쓰비시를 상대로 사죄, 배상을 촉구하는 삼보일배 시위를 진행한 뒤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회장이 일제 강제동원 문제로 일본 시위에 나선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다. 당시 그의 나이 91세. 이 회장과 양금덕 할머니(오른쪽) 등 일본방문단은 13만 4162명의 항의 서명용지를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와 일본 정부에 각각 전달했다.
2010년 6월 23일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 선 이금주 회장(맨 앞). 미쓰비시를 상대로 사죄, 배상을 촉구하는 삼보일배 시위를 진행한 뒤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회장이 일제 강제동원 문제로 일본 시위에 나선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다. 당시 그의 나이 91세. 이 회장과 양금덕 할머니(오른쪽) 등 일본방문단은 13만 4162명의 항의 서명용지를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와 일본 정부에 각각 전달했다.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하지만 일본에서의 소송은 번번히 패소했고, 그는 모두 17차례 소송을 기각당하는 쓴맛을 봐야 했다. 그럼에도 강제동원 문제는 한일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고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한국 정부는 2004년 '강제동원특별법'을 제정하고' 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함으로써 진상규명에 나서게 됐다.

2018년에는 일본 소송에서 패소했던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사건이 한국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함으로써, 이 회장의 포기하지 않은 끈질긴 투쟁은 끝내 역사적인 승리로 남게 됐다.

대일 과거 청산 운동의 대모로 불리던 이 회장은 2021년 12월 12일 10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광주광역시는 지난 8월 광복 80주년 기념식에서 일제강제동원시민역사관 건립과 이금주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금주(1920~2021)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이 강제동원 피해자 권리 찾기 투쟁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가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 보관돼 있다.
이금주(1920~2021)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이 강제동원 피해자 권리 찾기 투쟁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가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 보관돼 있다.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라르브르 앙상블'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 회장의 생애와 정신을 예술로 되살리는 것이 시대적 의미를 지닌다고 보고 이번 추모 음악극을 기획했다.

김수연 단장은 "이번 추모 음악극은 단순한 추모 행사를 넘어, 한 여성의 끈질긴 투쟁과 그 과정 속에 남긴 기록이 어떻게 역사적 진실을 지켜내고 후대의 승리로 이어졌는지를 예술로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음악으로 마음을 전하자"는 이념 아래 창단된 라르브르 앙상블은 최근 우리 사회의 아픈 역사와 중심 인물들을 예술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에 주력해 왔다.

2024년 10월에는 일본 도쿄 미쓰비시 본사 앞 540차 금요행동에 결합해 자선 거리공연을 진행했고, 12월 31일에는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 연주를 진행하며 사회적 아픔을 예술로 위로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한편, 이번 이금주 회장 4주기 추모제를 맞아 도야마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호쿠리쿠연락회' 나카가와 미유키 사무국장, 재일동포 이양수 고려박물관(도쿄) 이사장 등 일본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관계자 4명도 광주를 찾는다.

최근 80년 만에 나고야 미쓰비시 옛 공장 터를 방문하고 돌아온 근로정신대 피해자 정신영(95) 할머니도 참석해 일본 방문 활동 소식도 전할 예정이다.

징용 피해자 추도식 다룬 일본 신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정신영(95·전남 나주) 할머니가 지난 7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도난카이 지진 희생자 추모제를 다룬 현지 신문을 보고 있다. 정 할머니는 14세이던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끌려갔다 해방 뒤 돌아온 강제동원 피해자로,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함께 80년 만에 다시 나고야를 찾아 징용 당시 지진에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당시 항공기제작 공장에서 지진으로 숨진 근로정신대 소녀는 6명으로 모두 전남 출신이다.
징용 피해자 추도식 다룬 일본 신문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정신영(95·전남 나주) 할머니가 지난 7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도난카이 지진 희생자 추모제를 다룬 현지 신문을 보고 있다. 정 할머니는 14세이던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끌려갔다 해방 뒤 돌아온 강제동원 피해자로,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함께 80년 만에 다시 나고야를 찾아 징용 당시 지진에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당시 항공기제작 공장에서 지진으로 숨진 근로정신대 소녀는 6명으로 모두 전남 출신이다.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금주#일제강제동원#징용#전일빌딩#강제동원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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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라본부 상근기자. 제보 및 기사에 대한 의견은 ssal198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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