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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11 11:18최종 업데이트 25.12.11 15:46

미안한데 3만 원만 꿔 주세요

[아프지 않고, 오래, 함께!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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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서 2025년까지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부산·경남지역 해고노동자·인권활동가 건강돌봄지원사업은 총 424명에게 몸 검진, 치과진료, 심리 상담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2026년부터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지원 약정 기간이 종료되어 부산인권플랫폼파랑과 부산지역사회연대기금 <만원의 연대>가 공동모금을 통해 우리 모두의 힘으로 이 사업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여러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우리의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 만원의연대

"혹시 3만 원만 있으면 줘요. 아이 학교에 낼 게 있어서…"

마흔 초반쯤이었던 것 같다. 아내가 조심스레 얘기했다.

누구에게 부탁해 보지. 괜한 자존심 탓에 함께 활동하던 벗들에게는 돈 얘기를 꺼내지 못할 때였다. 평가, 평판 이런 걸 중요시 하던 때였다. 어떤 작은 오점이나 오류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름 투철해 보이는 운동가, 활동가가 되어보려고 애쓰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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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과는 한참 거리를 두고 살던 한 선배를 만났다. 고맙게도 오랜만이라며 고기를 사주었다. 소주도 두어 병 곁들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정치며, 정세며, 변혁적 운동과 관점에 대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한참 떠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계속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결국 그날 난 '3만 원' 이야기를 끝내 꺼내지 못했다. 세상이 어떻고, 세계가 어떻고, 인간들의 사는 모습이 어떻고 하는 거창한 얘기를 목청 세워 떠들다 갑자기 비 맞아 추레한 쥐처럼 "그런데 형, 3만 원만 꿔주면 안될까"라는 말을 도저히 꺼낼 용기가 없었다.

식당을 나와 헤어지려는 선배를 붙잡고 11월의 서울 합정역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더 주저리 주저리 사회운동 얘기를 꺼냈던 것도 어떻게든 3만 원 이야기를 해보려는 노력이었지만 실패였다. 주머니에는 동전 몇 잎이 남아 있었다. 구로공단(현 가산디지털산업단지)으로 가는 버스비는 간신이 될 듯했다. 선배를 보내고 난 후 조금은 슬펐고 비참했다.

2008년이었던가. 기륭전자여성비정규직 연대투쟁에 참여하고 있을 때 농성장으로 먼 부산에서 민중연극운동을 펼치고 있던 한 극단 동지들 십여 명이 몰려 와 현장 공연을 해주었다. 참 고마웠다. 또 먼 길 가야 하는데 공연비는 못 주더라도 밥과 술 한 잔은 내주는 게 같은 '딴따라'로서의 예의 아니겠는가. 그러나 계약해지 당시 법정최저임금 641,850원 받으며 일하다 부당하게 내쫒겨 1000일 넘게 거리농성 중이며, 마침 집단무기한 단식까지 하고 있던 기륭전자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부탁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공동대책위가 있었지만 역시 몸과 마음 내는 일 외에 무슨 기금 같은 것이 있지도 않았다. 물론 내 주머니엔 여전히 천 원짜리 지폐 몇 장뿐이었던 때였다.

언뜻 생각난 게 집 근처 단골 음식점이었다. 구로공단 인근에서 당시 기준으로 20여 년째 살다 보니 가끔 외상도 달아주는 집이 있었다. 감자탕 맛있는 집이 있으니 거기 가서 밥은 먹고 가자고 했다. 대신 조금은 걸어야 한다고 했다.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고 한 잔 술이 들어가니 금세 왁자지껄 동지애도 한 솥 가득 넘쳐났다. 민중가요 한 소절씩도 돌았다. 먼 길 와 준 동지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전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담배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집에 남아 있는 돈이 있는지.... 다행히 십수만 원이 남아 있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뛰어가니 아내가 돈을 쥐고 문 밖에 나와 있었다. 전 재산이었다. 함께 활동하던 아내는 단 한 번도 이런 일들 앞에서 의연함을 잃어 본 적이 없었다. 겉으로는 초연한 척하지만 속으로 얕고 좁아터진 건 늘 나였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그렇게 어찌저찌 살아왔다. 물론 어떤 운동 탓은 아니고 나의 경우는 철저한 게으름과 무능, 주변머리 없음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제 앞가림도 못하는 나를 어여삐 여기고 측은해 했던 여러 벗들과 고마운 분들 덕택이었다. 김현성 작사·작곡, 윤도현 노래인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한 대목처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 같이 /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대책없던 내 젊은 날들을 애써 지켜주셨던 모든 분들께 새삼 고맙고, 고맙다.

그렇게 게을렀던 나와 다르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진짜 일들로 여러 고난과 힘겨움을 겪던 수많은 이들을 지켜보고 만나게 되었다. 사회운동에 뜻을 둔 수많은 단체 활동가들의 빈곤한 삶이 그러했고, 국가폭력과 자본폭력으로 어느 순간 끌려가거나 해고되거나 가족을 잃은 이들의 삶이 그러했다. 어떤 이들은 고공으로 올라가 300일, 400일씩 내려오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끌려가 몇 개월, 몇 년씩 감옥살이를 해야 하기도 했다. 단식 20일, 30일은 기본이어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긴급한 사회적 투쟁에 몇 개월, 몇 년씩 집중하느라 본인의 건강이며, 생활이며는 챙길 수조차 없는 이들도 많았다. 긴 투쟁의 와중에 가족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이들도 많았다.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고, 생활은 바닥을 치고, 분노는 쌓여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진 희생자, 열사들도 많았다. 쌍용자동차 한 사업장에서만 서른여 명의 정리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목숨을 잃어야 하기도 했다. 그들의 눈물겨운 희생과 헌신을 딛고 한국 사회는 조금씩 변해 왔다.

부산지역사회연대기금 '만원의 연대'는 그런 우리를, 우리가 함께 지켜나가자는 소중한 뜻으로 2013년 세워졌다. 벌써 12년째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일하고 싸우는 사람들의 건강과 생활을 함께 지켜 왔다. 12년째 매달 힘겨운 이들을 찾아 연대기금을 전달해 왔는데 지금까지 건강과 심리상담 지원사업 등을 제외하고 6억 6천여만 원에 이르는 연대기금을 집행해 왔다. 한 달에 커피 2잔 값을 아껴 1만 원의 연대에 참여한 수백 명의 이름없는 연대자들이 이룬 기적 같은 일이었다. 참 고마운 일,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계기가 되었던 것은 2011년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희망버스였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중에서 열 다섯번 째의 희생자가 나왔을 무렵이었다.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가 다시 진행되면서 그 아픔이 반복되도록 하지 말자는 사회적 위기 의식과 각성 그리고 연대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던 연대버스 운동을 만들어 냈다. 수십 년째 해고자로 살아왔던 김진숙 지도위원이 동료들과 그 가족들의 사회적 죽음을 막겠다고 벌써 100여 일 넘게 고공농성을 하던 때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희망버스가 출발할 때마다 수만 명의 경찰을 투입해 막으려 했지만 근래 윤석열 내란의 주요종사자였던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이 한 말처럼 '중과부적'이었다. 14년 만에 재벌총수가 국회청문회에 불려 세워졌고, 20여 년 만에 한국의 노동자 시민들이 연합해 사회적으로 만연한 정리해고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벗이었던 김주익 지회장이 목을 걸어야 했던 85호 크레인 위에서 자신은 살아서 내려오고 싶다고 했다. 309일 만에 그 꿈을 이루던 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당시 희망버스 운동 과정에서 발생했던 여러 물리적 충돌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잠깐의 부산구치소 수감 생활과 8년에 이르는 긴 사법 탄압, 1000여만 원에 이르는 국가손해배상청구 등을 당하기도 했다. 더불어 이후 김진숙 지도위원의 명예복직을 위한 마지막 투쟁 과정에서 46일에 이르는 집단 무기한 단식까지 해야 했지만, 그 모든 시간에 감사할 뿐 어떤 후회도 없다.

그런 희망버스 운동을 거치며 일터와 삶터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앞장 서 싸우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연대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넓은 공감 속에 여러 연대운동이 생겨 났는데 그 대표적인 사회연대운동 중 하나가 부산지역 시민사회가 힘을 모은 만원의 연대 운동이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진행 당시 연대자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사회적파업연대기금(약칭, 사파연대)도 지금까지 소중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어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과정에 생겨난 '손잡고'도 여전히 소중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전북 남원 귀정사 경내 부근에 자리잡고 국가폭력 자본폭력의 피해자들과 저항하는 사람들의 무료연대쉼터로 기능하고 있는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도 희망버스에 참여했던 이들이 설립해 현재까지 소중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도저한 신자유주의 자본의 물결에 맞서 저항하고 꿈꾸는 모든 이들의 쉼터가 되고 있는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동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다. 모두 참 눈물겹고 아름다운 일들이다.

'만인의 연대'를 위하여 "1만 원만 내주실래요"

그중에서도 만원의 연대 운동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부산·경남 지역에서 사회연대운동의 소중한 교두보 역할을 해주는 터라 참 각별하다. 만원의 연대를 만인의 연대로 읽으며 창립하던 자리에 참석했던 게 어제 일 같은데 그게 벌써 12년째라니 참 세월 빠르다. 그 만원의 연대 운동에 이젠 좀더 많은 이들이 함께해주면 참 좋겠다. 현재도 꾸준히 매월 '싸우는 자들', '부당하게 빼앗긴 자들', '모든 생명과 공공의 존엄과 정의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들의 투쟁만이 아니라 건강을 지키는 일 또한 함께 챙기고 넓혀가려는데 기금이 조금 부족하다고 한다. 꿈꾸는 자들이 조금은 서럽거나 어렵지 않게, 그러다 아프지 않게 함께 힘을 모아주면 정말 좋겠다.

"미안한데 3만 원만 꿔 줘요." 마흔 살 무렵 나는 이 말을 끝내 못했지만, 오늘은 하고 싶다. 더 이상 눈물 흘리거나 아픈 이가 없기를 바라며, '만인의 연대'를 위하여 "1만 원만 내주실래요."

- <만원의 연대> 함께 하기 http://parang.or.kr/?p=7465
- 모금 기간: 2025.12.8. ~ 12.27.
- 모금 목표: 1500만 원
- 기부금영수증 발행 가능

#만원의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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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umokin) 내방

시인,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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